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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27. 2023

스페인독감을 배경으로 한 일본 근대소설과 글

기쿠치 간 外, 『간단한 죽음』

주로 스페인독감이 등장하는 일본 근대 소설, 혹은 글을 모았다.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었던 스페인독감은 아시아 동쪽 끝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크게 번졌었다(일제 치하의 한반도에서는 ‘무오년 독감’이라 불렸다). 그러니 당시 소설이나 여타 글에 이 질병이 소재, 혹은 배경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봐도 알 수 있듯, 당시에는 스페인독감, 또는 스페니쉬 인플루엔자라는 명칭은 잘 쓰지 않았고, 대개는 유행성 감모(感冒)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아직은 감기와 독감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고, 전염의 경로도 대충만 파악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 근대 소설에서 그린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과 겹친다. 실제로 기쿠친 간의 <마스크>,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도상>(『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에선 <길 위에서>이란 제목으로)이란 작품은 두 책에 모두 실려 있다. 내가 읽기로는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이 먼저지만, 우리나라 출간 시점으로 보면 『간단한 죽음』이 1년 이상 먼저다. 그리고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은 대학 번역 강의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으로 볼 때 번역의 수준은 조금 차이가 있다. 그리고 『간단한 죽음』이 스페인독감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반면, 『일본 근대 문호가 그린 감염병』은 스페인독감뿐 아니라 결핵, 한센병, 매독 등 다른 감염질환도 소재에 포함시키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이처럼 많은 작가들이 스페인독감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작품을 쓴 것을 보면 당시 일본 사회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소설만이 아니라 편지라든가 일기 같은 글도 포함하고 있는데, 작가들도 스페인독감으로 곤욕을 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금은 아쉬운 점은, 스페인독감과 관련해서 그 증상이라든가, 경과 등이 자세히 묘사된 작품이 별로 없고, 또한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도 조금은 피상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대체로는 개별적인 질병 치레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예외라면 기쿠친 간의 <마스크> 정도가 아닐까 싶고, 역시 기쿠치 간의 <신처럼 나약한>에서 스페인독감에 걸린 환자에 대한 묘사가 그나마 사실적이다.


“‘아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유키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평소 발그레하던 가와노의 얼굴에는,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검푸른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입술은 보랏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84쪽)


여러 소설과 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골라보라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편지에 들어있는 한 문장이다.

”가슴 속 삭풍 기침이 되었구나.“ (105쪽)


또 하나는 구니키다 고쿠시의 <감기 한 다발>에서 스페인독감(스페니쉬 인플루엔자)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을 쓴 부분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같은 저승사자라도 콜레라나 페스트와는 달리 인플루엔자라고 하면 왠지 그 손은 가늘고 휠 듯하며, 얇은 비단을 통해서 보는 보석의 아련한 빛조차 느껴지게 하지 않는가?“ (260쪽)


당시 일본인들이 다 그렇게 여기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지금의 생각과도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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