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는 원래 서로 달리 발표한 세 단편(<초봄>,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종말>)을 하나로 묶어 출판한 작품이다(부제가 “크눌프 삶의 세 이야기”다)
모두 크눌프라는 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세 단편이 독립적인 형식을 띠고 있지만, 크눌프라는 인물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 말고도 인격 자체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한 인물에 대해 여러 면모를 다룬다고 해야 옳고, 헤르만 헤세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퇴원한 크눌프가 무두장이 친구 로트푸스 집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벌어진 일이다. 무두장이 부인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대신 이웃 집의 하녀이자 동향 출신인 처녀와 하룻밤을 즐긴다. 그러나 그는 머물지 않고 방랑을 떠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첫 번째나 세 번째 이야기와는 좀 이질적이다. 어떤 스토리보다는 화자와 크눌프가 나눈《 대화이며, 그 대화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어떤 사건을 통해 크눌프의 삶이나 성격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 그의 말로 그의 생각을 직접 보여준다. 크눌프는 자신이 방랑을 떠나게 된 이유를 털어놓는다. 사랑하는 여인과 친구에게 상처받고 평범한 삶을 살 이유를 잃게 된다. 대신 삶의 허무를 짙게 느끼며 방랑을 하게 되었다고 토로한다. 그리고 그런 대화를 나눈 다음 날 아침, 그는 역시 떠나고 없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크눌프는 병에 걸렸다. 폐결핵이다. 고향을 찾아 떠난 그는 도중에 어린 시절의 친구이자 의사가 된 마홀트를 만난다. 마홀트는 크눌프가 병에 걸린 것을 알아차리고 요양원으로 데려가고, 또 대화를 통해 그가 학창 시절 갑자기 학교를 떠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사랑 때문이었고,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랑에 배신 당했던 것이다. 고향에서 젊은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첫눈이 내리는 날,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며 삶의 마지막을 보낸다.
크눌프는 방랑자다. 어느 한 곳에 머물지 않을 뿐 아니라 삶 자체가 자유롭다. 그러나 방랑의 원인일 수도 있고,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의 방랑에는 아픔이 있다. 사랑에 배신당하고, 어린 아들과 헤어져 입양을 보내고, 부모에게도 죄책감이 많다. 헤르만 헤세는 이런 크눌프를 아꼈고, 자신과 상당히 동일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젊은 시절 헤르만 헤세가 크눌프와 같은 삶을 희구했는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자유로운 삶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죽음까지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마지막, 자신의 삶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하느님과의 대화(물론 환각일 터이지만)라는 사실은 헤르만 헤세가 삶이 가지는 가치를 어떤 데서 찾고자 했는지를 알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