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고를 쓰자!

제임스 R. 해거티,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by ENA

돌이켜보니 최근에 부고(obituary)를 참 많이 읽었다. 책을 쓰면서 과학자의 삶을 알아내기 위해서 가장 많이 이용한 게 바로 부고였다. 주로는 과학 저널에 실린 것들이었다. 만약 수고로이 앞서 간 이들에 대해 쓴 글이 없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이야 이겠지만은 과학자의 생애를 파악하는 데 꽤 곤란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부고 전문기자라고 해서 최윤필 기자의 《가만한 당신》과 같은 류의 책을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부제로 “~가 전하는 삶의 죽음의 의미”라 했으니, 많은 사람의 부고를 쓰면서 깨닫게 된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혹은 원제 “Yours Truly”, 즉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를 보면 또 다른 상상도 가능했다. 굳이 어떤 내용인지 속을 뒤적여 보지 않고 대충 예상하고 책을 읽을 적이 있는데, 이번이 그런 때였다.


물론 저자가 쓴 부고,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부고의 요약들이 적지 않게 담겨 있고, 그런 부고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삶과 죽음의 의미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 내 예상이 전혀 엉뚱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장 주된 의도는 그게 아니다. 그건 바로 “나의 부고를 직접 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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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야기하는 자신의 부고를 직접 써보자는 까닭은 여러 가지다. 우선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다. 최근에 여럿이 모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MBTI에 관한 질문에 답을 해보는 짓을 했는데, 나는 아주 많은 문항에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답했을 것과 상반되게 체크하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란 적이 있다. 그게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지만, 진짜 나의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컸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 성격도 그렇지만, 나의 과거를 제대로 얘기할 수 있는 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어떤 일이 있었을 때, 내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정말 나밖에 모른다. 또 내 인생에서 어떤 것을 남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지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밖에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부고는 내가 써야 한다.


그리고 내가 나의 부고를 쓰면서 나는 나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다.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을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해 왔는지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다. 만약에 어떤 목표가 없었다면 지금에라도 작은 목표라도 세울 수 있으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언가 부족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소설로 쓰면 몇 권 분량이 나올 거라고 하는 이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의 인생은 소설로 쓰이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의 인생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유일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유명인이든,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든 다를 수 없다. 할 이야기가 없다고? 그렇지 않다. 내가 태어날 때, 자랄 때, 누군가를 사랑할 때, 무엇에 대해 슬퍼할 때, 무엇을 이루고 기뻐할 때, 낙담할 때, 분노할 때가 누구든 있었다. 무언가 조그만 성과를 낸 것도 있을 수 있으며, 차마 말 못 할 실수를 저지른 것도 있다. 부고의 분량이 어떻게 되었든, 나는 나의 부고를 쓸 자격이 있다.


저자는 그렇게 자신의 부고를 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은 자신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보면서 정말로 나의 과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가끔씩 생각나던 과거도 있지만, 까마득히 잊었던 것들도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도 떠오르고, 그 녀석과 함께 한 일뿐만 아니라 다투었던 일들, 그리고 조금 커서 만나 해후한 일들... 그런 일들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할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내 부고에 굳이 들어갈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소중한 추억임에는 분명하다. 중학교 1학년 전학 간 날의 기억, 고등학교 시절 시화전을 하던 기억, 대학교 시절 최루탄 난무하던 거리에 섰던 기억... 그리고 내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했는지, 그리고 지금 그걸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만약 별 일이 없다면 아직 적지 않게 남은 인생 동안 그걸 위해 충분히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도 여기게 되었다. 나의 부고를 쓰기 전인 데도, 그것을 생각하니 이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기고, 또 나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 쓸 수도 있지만, 녹음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부탁해 답변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새뮤얼 피프스처럼 일기로 남길 수도 있다. 어떤 형식이든, 어떤 분량이든 나의 인생을 기록하는 것, 저자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떠나는 날 내가 남긴 나의 부고는 나에게도, 내가 남겨 놓은 사람들에게도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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