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방식이 참 다양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에든 철학이 있고, 철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철학이 또 뭐,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은근히 의미하기도 한다.
그저 철학자들을 등장시켜 운동(구체적으로는 사이클)을 시키고, 그 가운데서 철학적 사유를 펼치게 하는 책이 아니다. 운동이 단순한 소재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스포츠의 생동감 넘치는 장면들을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깃드는, 혹은 스포츠와는 별 상관은 없지만 철학자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저자의 경력 때문이다. 현역 프로 사이클 선수이자, 철학 석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는.
‘투르 드 프랑스’가 어느 정도나 프랑스, 내지는 유럽에서 인기가 있는지 잘 모른다. 각 국가마다 호들갑 떨고,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인기가 있는 스포츠 종목이 다르다. 배드민턴과 같은 종목은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는 최고의 인기 종목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각광받지 못하는 럭비를 정말 좋아하는 국가도 있다. 투르 드 프랑스가 열리기 전부터 프랑스가 들썩 거린다는 소문으로 짐작이야 하지만, 지구 반대쪽의 우리가 그 열기를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은 그 인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현역 프로 사이클 선수인 기욤 마르탱이 이 대회에서 상당히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 놀라고, 그래서 나아가 그가 쓴 이 책에 그 대회의 장면들이 생동감 넘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많은 철학자를 등장시킨다. 스스로 벨로조프(Velosophe), 즉 사이클 선수이자 철학자를 합성한 신조어를 만들어 자신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투르 드 프랑스의 출발선에 선 역사 속의 철학자들을 일컫고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 팀에는 아낙사고라스, 디오게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아우렐리우스 등도 포함된다)를 비롯해서, 마르크스, 하버마스, 아인슈타인, 칸트, 프로이트와 같은 독일 팀이 있고, 그 밖에도 스피노자, 사르트르와 같은 철학자도 등장한다. 그 밖에도 무척 많지만, 특히 주목해야 할 철학자는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은 니체다.
니체와 현대 스포츠와의 관계는 바로 기욤 마르탱의 석사 학위 주제였다. 그러니 더욱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애정을 두고 쓸 수 있는 이유가 중요하다. 로마 제국 시절 기독교의 승리 이후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고, 정신의 우위가 공고화 해지는 과정이 데카르트(물론 그도 벨로조프다)를 거쳐, 쿠베르탱의 올림픽 창설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쿠베르탱의 올림픽 정신에는 스포츠의 가치를 드높이는 요소가 있지만, 그래도 고대 그리스의 ‘칼로스 카가토스(Kalos kagathos)’와 같이 ‘아름답고, 선한’ 신체에 대한 찬사, 즉 신체와 정신의 합일은 찾아볼 수 없다. 기욤 마르탱이 보기에 바로 니체야말로 그런 신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차 없이 비판하고, 신체의 의미를 새로이 한 철학자라는 것이다.
2부가 약 3주에 걸친 투르 드 프랑스가 이어지는 과정을 하루하루 쫓아가며 벨로조프의 활약상을 쓰는 데 반해(거의 완전히 픽션이지만, 투르 드 프랑스의 루트만큼은 논픽션이다), 1부에서는 그 준비 과정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에세이 형식으로 번갈아가며 쓰고 있다. 말하자면 머리가 빈 운동선수라는 선입견을 깨고, 철학자로서 프로 스포츠 선수일 수 있음을, 혹은 반대로 프로 스포츠 선수이지만 철학적 사고를 할 뿐만 아니라 이처럼 철학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고도 물론 기욤 마르탱이 아웃라이어(outlier)로 여기고, 스포츠 선수에 대한 선입견을 여전히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스포츠와 철학이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욤 마르탱은 철학자들의 철학을 굳이 설명하지 않고 있다. 철학자들의 용어와 입장을 비틀고 있다. 그들이 쓴 단어를 스포츠의 맥락에 쓰기도 하고, 책 제목을 변형하기도 하고, 그들이 쓴 유명한 문구를 조금 비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것을 이해할 정도가 되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는 것 같다. 이해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넘어가면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다만 우리말 번역본에는 옮긴이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 각주들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철학 공부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도, 철학 공부를 했다. 굳이 용어를 외우고, 어떤 철학자가 어떤 철학을 했는지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철학 공부다. 운동을 오래 하면 저절로 몸에 배듯, 그런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