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된 친절과 관심

애거서 크리스티, 《깨어진 거울》

by ENA

거울이 양쪽으로 깨졌다.

‘내게 저주가 내렸다.’고

레이디 살럿이 외쳤다.


헤더 배드콕과 얘기를 나누다 그의 어깨너머를 바라보던 마리나 그레그를 보며 밴트 부인은 테니슨의 시를 떠올렸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시에서 소설의 제목을 가져왔다.


제인 마플 양은 영국의 작은 시골 마을 세이트 메리 미드에서 뜨개질로 소일하며 평온하게 보내면서도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꿰고 있는 할머니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하는 능력이 놀랍다. 여기서도 마플 양은 그저 주위 인물이 가져오는 정보들만을 이용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를 추론해 낸다.


결론을 아는 상태에서 추리소설을 읽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그녀의 소설을 다룬 책에서, 혹은 감염질환을 다룬 책에서 이 소설에 대해 몇 차례 읽었다. 이 소설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꼭 한 번은 읽어봐야겠기에 펴 들었지만(풍진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매우 맹탕 같은 소설로 읽게 되는 건 아닌지 염려했다.


그건 기우였다. 그냥 해설로만 읽었을 때의 간략한 상황 말고도 그 결론에 이르는 다양한 상황이 상당히 풍부하게 담겨 있다. 사실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그 상황에 있던 사람들이 과거와 관련해서 의심스러운 정황들이 있다. 만약 소설의 결론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면, 그런 정황들로 독자인 나의 의심의 눈초리도 자꾸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했을 것 같다. 또한 그런 독자의 순진한 의심을 작가는 되받아칠 것을 예상할 것이기도 했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읽는 맛도 있다.


마플 양이 추론하는 방식이 재미있는 건, 그녀가 직접 현장을 보지 않고도 사람의 본성을 파악함으로써 사건의 본질로 파악해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마플 양이 의사인 헤이독과 나눈 대화에서 보면 그렇다. 그녀는 살인 현장에 있던 20명 정도 되는 사람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관찰력이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당연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봤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가? 마플 양은 세 가지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한 가지는 보고도 자기가 뭘 봤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 즉 눈은 사용하지만 뇌는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다(바보). 두 번째 가능성은, 장면을 봤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 신경 쓰지도 않았을 경우로, 그 짓을 저지른 사람은 위험한 도박을 한 셈이다(도박꾼). 세 번째 가능성은, 일어난 일을 보고서도 입을 다문 경우다. 그리고 이 세 번째 경우라면 추가로 살인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견한다. 마플 양의 예견은 현실이 되고 만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추리지만, 보통의 사람은 이 중 한 가지에 몰두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보편적인 데서 다양한 가능성을 폭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특수한 데만 파거나, 혹은 스스로 생각한 한 가지 가능성에만 몰입해 버리는 것이다. 마플의 조용한 추리는 그래서 평범하면서도 매우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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