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까짓 공놀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공놀이에 정말 많은 사람이 열광한다. 나도 그중 하나다. 올해는 더욱 그랬고, 앞으로도 기대가 크다. 30년 가까이를 기다렸으니 오죽 하겠는가.
야구는 독특한 스포츠다(라고 생각한다). 분명 단체 경기이고, 승패가 팀의 기록으로 남는다. 그러나 모든 대결은 1:1의 개인 사이에 벌어지고, 그 결과가 단순히 그 1:1로 맞붙는 투수와 타자의 능력만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 오만 가지 개인의 기록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가지고 평가한다. 아마도 가장 많은 기록이 만들어지는 스포츠가 아닐까 싶다. 대결과 대결 사이에는 언제나 단절의 시간이 있는 것도 그렇다. 그 시간 동안 감독도 그렇고, 선수도 그렇지만, 관중과 팬도 스스로 상상하고, 작전을 짤 수 있다(혹은 나처럼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단히 이성적인 관객을 두고 있으면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가장 열광하는 관객을 두고 있는 스포츠다.
정말로 많은 종류의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는 스포츠이면서, 누구든 이 종목의 스포츠가 심리적인 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도 한다. 한 시즌을 통틀어서도 그렇고, 어느 한 경기에서도 그렇고, 어느 한 시점에서도 대결의 결과는 선수 개인의 실력도 분명 중요하지만, 선수의 심리가 무척 큰 역할을 한다고 믿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어디 그렇지 않은 스포츠가 있으랴만은 야구만큼 심리를 많이 얘기하는 것도 없다. 가장 대표적으로, 투수와 타자가 바로 한 구의 승부에서 어떤 공을 던질 것인지를 예측하고, 그것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부터가 그렇다. 승부의 시작이 그렇게 예측과 대응의 고도의 수싸움으로 시작하는데, 어떻게 이 스포츠가 심리학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중계를 보면서 해설가의 말을 듣다보면 좀 난감할 때가 있다. 당연한 얘기가 많다. 긴장해야 하는 상황이라느니, 아니면 긴장을 풀어야 한다느니, 위축되었다느니, 혹은 기세가 올랐다느니 등등, 요즘 기록이 좋으니 이번에도 좋을 거라고 예측된다느니, 혹은 현재 슬럼프이니 어떻다느니 등등. 어쩌면 누구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얘기를 하는 해설가들이 정말 많다. 물론 그들은 자신의 선수 시절의 경험에서 나온 말을 하는 것이지만, 그냥 일반적인 심리학, 어떤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하는 심리학이 아니라, 그냥 그럴 것이려니 하는, 매우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할 때가 많다. 말하자면 통속 심리학이다.
그런데 그 통속 심리학이 잘 맞으면 괜찮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 야구 해설가들이 반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준비해 놓는 멘트가 있다. 그냥 개인적인 심리학이었으니, 이번에도 그런 심리학을 내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야구 중계를 보면서 무음 상태로 해놓는다.)
마이크 스태들러는 인지심리학자다. 야구 선수를 꿈꿨지만, 그럴 만한 운동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팬이 되기로 했다. 그러면서 야구에 관한 온갖 논문과 데이터를 모았고, 그것을 분석했다. 말하자면 통속 심리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와 실험을 통한 심리학인 셈이다. 그렇게 했을 때 나오는 답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것과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했다. 타자가 시속 150km가 넘는 공을 치는 데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지? 투수는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던질 수 있는지, 외야수는 어떻게 공의 낙하 지점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지, 연속 안타와 슬럼프는 실력과 관계가 있는지, 아니면 우연인지, 어떤 조건을 가진 선수가 나중에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인지(나아가 그런 판단이 이미 가능한 것인지), 클러치 능력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인지, FA로이드라는 게 과연 있는 것인지 등등. (‘야구의 심리학’이라고 했지만, 앞부분은 ‘야구의 물리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는 우리의 예상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은 아직도 잘 해결되지 않는 게 많다고 얘기한다. 타자가 공을 치는 것도, 투수가 정확하게 공을 던지는 것도, 야수가 공을 잡는 것도 매우 이례적인 능력인데, 선수들은 그걸 일상적으로 해낸다. 연속 안타라는 게 매우 우연적인 상황이며 확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그리 의미를 두지 않아야 되는 것 같지만,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는 도무지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클러치 능력은 또 어떤가? 그런 건 없다는 게 적지 않은 연구의 결과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없는 것도 아니며, 우리는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가진 선수를 본다. 아무리 그게 인지 착각일지라도 우리는 그런 선수를 본다고 진정으로 믿는다.
그깟 공놀이지만, 공 하나를 놓고 던지고, 치고, 받고, 달리고, 슬라이딩을 하고, 작전을 짜고, 환호하고, 좌절하고... 그게 야구다.
* 야구의 심리학이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듯, 야구의 물리학도 가능하고, 야구의 경제학, 야구의 철학 등등 많은 학문을 야구에 가져다 쓸 수 있다. 아, 그런데... 야구의 미생물학은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