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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덜 완벽한 봉사자]

- 입춘대길. 그리고 인생을 바친다는 것 -


 약을 포장합니다. 이 약으로는 아이의 귀에서 나오는 고름을 막고, 그 다음 약으로는 열병에 걸린 아이를 낫게 하고.. 하면서 한국의 젊은 처자가 약을 포장합니다. 하루에 몇천개를 포장한다니,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개인의 사비를 들여 해외의료봉사를 나가시는 산부인과선생님의 가방에 차곡차곡 약이 쌓여갑니다. 이번이 열번째 나가는 해외 의료봉사라네요. 대기업의 후원으로 가면, 아무래도 대기업 홍보때문에 제약이 있어서 개인의 사비로 한다지만, 제가보기엔 너무 융통성이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산부인과 원장님 의료봉사 사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꿈은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성인이 되어가지만, 실제로 그런 삶을 살기란 참 쉽지 않습니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려운 세상 아니던가..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달려가기 바쁩니다. 그러던 중에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뵐 때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고마운 마음까지 듭니다.  


두루두루 살펴보면, 남을 돕는 분들은 저보다 더 많이 가지신 분도 아니고, 몸이 더 편안한 분들도 아닌 걸 보면, 저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의 적토마 처럼, 누가 등에 타던 그냥 힘껏 달리는 그저 빠르고, 생각없는 경주마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좋은 마음으로, 정의로운 마음으로, 사랑이 충만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나중에 정치하려고 미리 다져놓는거 아니야?” “무슨 속셈이 있는게지 순수하게 저렇게 한다는게 말이 되니?” “아니, 자기 주변이나 잘 챙기지 오지랖넓게 무슨 일을 저렇게 벌리고 다니는거야?” 수도 없는 비난의 화살들이 돌고 돌아 당사자에게도 돌아옵니다.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또다시 상처를 받는 일도 흔합니다. 역사적으로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심리에 위축되어 있는,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정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이상하고 오지랖 넓은 일이 된 한국사회가 되었습니다.


산부인과 원장님 의료봉사 사진입니다.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고집불통인 경우도 많습니다. 도대체 둥글둥글한 이야기가 안될 때도 많습니다. 저도 이내 답답해 하다가도, 그래, 저런 고집이 있으니 저렇게 끝까지 자신의 소신대로 인생을 사시는게지.. 하는 결론으로 생각을 마칩니다. 혹시 오해하실까 덧붙이자면, 이런 의료봉사를 나가시는 의사선생님들은 오히려 경제적으로 그다지 넉넉하지 않으신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나눠주려고 마음먹고 사시는 분들의 창고가 늘 꽉 차있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게 아닐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


 인도와 네팔에 의료봉사를 가면, 이제는 그 매번 가는 작은 동네에 소문이 나서, 길게 줄을 선답니다. 이 약 한봉지를 받기 위함이라네요. 새벽부터와서 기다리는 환자들에게 약을주다가 시간이 마감되고 체력이 떨어져도, 차마 그 약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돌아가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 하루에 500명이 넘는 환자를 보실 때도 있었다고 하네요. 오가는 비행기삯, 준비해가는 수없이 많은 약값, 병원 문을 닫아서 갖는 손해, 게다가 인도와 네팔에서 한국말을 통역하는 사람을 찾아 통역비를 지급하는 것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습니다. 어렵사리 구한, 말도 잘 통하지 않아 어설픈 통역과 함께 하는 진료란, 보기에 좋아 봉사이지, 그야말로 신체적으로는 고행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사람도, 

심지어는 역사적 위인들도, 

나름의 인간적인 결함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게 없으면 어디 사람인가요. 그냥 우리는 직접 만나보지 못했으니, 머릿속에서 저 사람은 완전 무결한 사람일거야.. 라고 생각하고 존경하고 하는 것 같습니다.


 유명하고 좋은 평판의 사람이지만 들어가보면 다들 크고작은 흠이 있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살려고 하는가’‘ 그저 자신의 이익만 도모할 것인가, 아니면 ’이타적 행위를 할 의지가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을 생각합니다. 제가 누구를 평가할 위치도 되지 않고, 저 역시 한없이 부족한 사람입니다만, 어떻게든 한 사람의 단점만을 잡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장점을 보고 이타적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는 것이 그래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을 바친다는 것’


저는 저 약을 들고 가시는 몇분의 의롭고 이타적인 분들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련한 인간입니다. 그저 진료실에서만이라도 좋은 진료를 위해 애를 쓰는 것으로 저의 소임을 다해야겠습니다.


“입춘대길“


”원장님! 입춘대길 꼭 12시 58분에 붙이셔야해요! 알았죠?“


결국 좋은 일도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고, 사람이 주고 사람이 받는 것입니다. 저 아픈 고통에 시달리는 네팔과 인도의 아이들에게는 봉사를 나가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아픈 사람들에게 “입춘대길“ 을 실현 시켜주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저앉아 기다리며 복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저 약을 포장하는 처자의 손에서 [입춘대길]이 시작되는 것이고, 수만개의 약봉지를 들고가는 사람들 손에 [입춘대길]이 들려서 가는 것이겠지요. 점포에 앉아서, 진료실에서 앉아서 [입춘대길]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행복하고 길한 일들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되돌아봅니다.

산부인과 원장님 의료봉사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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