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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공생, 자본주의]

치과에서 울고 웃다.


“원장님, 이거 예전에 어디서 한 틀니인데예, 프라스틱 이빨이 하나씩 둘씩 빠집니더. 이거 빠진 이 낑구는데 얼만가예? 내사 마, 시간이 안납니더. 좌판 펼쳐두고 갈수도 없는기고.. 간다 간다 하면서 몬가네예.”

 작은 소도시에도 이런저런 치과 광고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울이나 광역시에서는 10년전부터 이런저런 의료 광고들이 들끓기 시작했지요. 버스에, 건물에, 현수막, 인터넷에.. 최첨단 치료를 표방하며 화려하고 늠름한 광고들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가족과 서울의 친구들조차도 저에게 전화가 와서 이건 어떤 의미야? 초특급 치료라는데? 엄청 싸다는데? 완전 신기술이라는데?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봅니다. 아마 물어본다는 것은 그 광고를 반신반의 한다는 뜻이겠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몸 어디가 아프면 제 친구 내, 외과의사들에게 물어봅니다. 이거 온통 광고하고 하는데 이거 믿어도 되는거야? 응 관우야, 그건 이러저러한거야.. 참고해라.


 아침에 출근할 때면, 치과 입구에 이리저리 붙어있는 음식점 전단지도 보고, 발에 밟히는 대출광고도 보면서, 이거 붙이고 던지는 분들도 참 고생이시다.. 그러면서 저도, ‘나도 이런거 던지고 붙이고 해야하나?’ 하는 생각에 잠길때도 많습니다. 이제 제 치과근처에서도 치과 광고가 흐르기 시작한 탓입니다. 평생을 경쟁사회에 길들여져서 살다보니, 남이 뭔가 할때 그냥 손놓고 있으면 뭔가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들 때가 있습니다. 아직 마음수양이 한 참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어이.. 오늘 오셨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노점상 할머니의 손과 예쁜 버선입니다.  이 엄동설한에 길위에서 업무를 보시는 분의 발을 덮어주고 있으니 고맙지 않을리가요. 아침에 출근할 때 좌판에서 저랑 인사하고, 저는 따뜻한 진료실에서 진료를 보고, 할머니는 단속을피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시면서 제가 야간진료를 마치고 들어갈때까지 냉동실같은 길 위에 앉아계십니다. 다시 야간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어둠속에서 인사를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무릎은 관절수술을 하였고, 허리는 척추수술을 하였고, 눈은 백내장수술을 하셨답니다. 그러고나니 천만원 이상의 진료비가 지출되고, 틀니를 수리할 돈이 부족하시다네요. “원장님, 내가 여기서 길에 다니는 사람한테 원장님 치과 소개 잘 해드리고 있구마!, 내 틀니 손좀 봐 주이소, 수리가 될까 모르지만예!” 저 멀리서 저를 봐도 자기 이를 가리키면서 이렇게 늘 손짓을 하시더니, 오늘에야 기어이 오셨습니다. 


 늘 자식한테 손벌리기 싫으시다고 저 추운 길위에 종일 앉아계십니다. 사실 그 따뜻하다고 말로만 듣던 밍크코트를 입는 분들은 추운 길에 하루에 10분도 안나가시죠. 솜잠바를 두겹 세겹 입으신 노점의 할머니분들이 오히려 필요한 것이 오리털 잠바이고, 밍크코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추우세요?” “추워예. 그걸 말이라고 합니꺼!” 참 세상에 이런 바보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마 저는 ‘안 추워예. 우린 추위에 다 적응이 된 사람입니더’ 라는 말을 듣고, 미안한 마음없이 따뜻한 병원으로 들어가고 싶었는가 봅니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저도 무한 경쟁 의료광고시대에 나도 광고를 할까 조사를 해 봅니다. 누군가는 찾아와서 아파트 거울광고는 얼마, 엘리베이터 광고는 효과가 있다. "아닙니다 원장님. 요즘은 인터넷 바이럴 마케팅이 유행입니다. 너무 좋았다는 글을 계속 올려주면 됩니다." 아니야 형, 병원 앞에서 물티슈나 이런거 나눠주는게 낫대요... 


중요한 손님과 점심을 먹습니다. 전화벨이 계속 울립니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네.. 관우님 맞으시죠? 이번에 좋은 보험상품이 있어서요! 소개좀 드리려구요!”

“네.. 뭐죠? (문득 텔레마케터의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이고, 자살충동이 가장 많은 직업이라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듣고나서 끊어야겠다..)"

”네.. 생활하시다 보면 이가 아픈 경우가 있잖아요? 치과 치료보험입니다! 큰 도움이 되실거에요!“

”네..저..제가 치과의사인데요..(이제 끊어주시겠지..)“

”네.. 고객님, 그렇군요! 그러면, 부모님이 갑자기 아프시면, 치료비가 부담이 되시잖아요? 그래서 부모님을 위한 보험상품이 좋은게 있습니다!!“

”네.. 저희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셔서요..(이제 끊어주시겠지..)“

”네.. 고객님, 그렇군요! 그렇다면 본인의 암보험 상품이 좋은게 있습니다!!“

"......"


 누가 이 전화하시는 텔레마케터 분과 저를, 전화선이라는 링 위에 올려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텔레마케터 분은 왜 이 유쾌하지 않은 전화를 걸어야만하고, 저는 왜 이 껄끄러운 전화를 꾹꾹 참으며, 그래 이 분도, 나도, 우린 이 추운 겨울을 건너기 위해 가족들과 지낼 따뜻한 방을 지키기위한 서로의 업무를 보는 것 뿐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야하는지.. 이럴 땐 추운 겨울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원장님! 후딱 고쳐주이소! 내 껀 좀 더 빨리 해주시라예. 틀니 없이 우예 장사를 할낍니꺼? 발음이 안되예! 암튼 고맙심더, 지가 길에 앉아서 이 치꽈 소문 많이 내고 있심미더. 원장님 내게 고마워하셔야해예!! 틀니 손 좀 잘 봐 주이소!! 참말로. ”

 때로는 뭔가 팔아드리고 싶은데, 나랑은 맞지 않는 물건들만 놓고 좌판에 계시는 모습을 보면, 이를 어쩌나.. 싶은 마음이 많습니다. 광고해 드리기도 어렵네요. 거리를 거닐면서, 저 멀리까지 다니는 버스에 광고판을 붙이고, 저 머리위 건물 위에 드높이 광고판을 휘날리는 병원들을 보면 참 수완이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렇게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씻기지 않은 피곤함을 온몸에 휘감고서 하는, 허세담긴 한마디가 더 살가운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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