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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뇌사, 그 가족, 그리고 치과]

- 뇌사. 그리고 식물상태의 인간  -


 재작년 즈음에 한 모녀가 진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원장님, 엄마 치과치료 좀 하려구요. 잘부탁드립니다...



어? 그래요? 근데 보니까말이에요, 구강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아이구. 어머니 진작에 좀 나오시지.. 뭐.. 이제라도 잘 치료하시면 됩니다.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6개월에 한 번은 나오세요... 제가 아무리 잘 해드려도 깨끗이 닦는 것을 매일 하지 못하시면 다시 엉망이 되는거 잊지마시구요.

 때때로 도저히 간단한 설명으로는 설득이 안되겠다 싶은 경우에는 치과 한 구석 자그마한 상담테이블로 같이 자리를 옮깁니다. 구구절절 설명도 드리고, 지금 안 지키시면 나중에 정말 고생하신다. 임플란트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이런 저런 설명을 드립니다. 어딘지 겸연쩍어 하시는 표정과 함께 멀리서 따님이 슬그머니 상담실로 들어옵니다. 아마도 어머니를 두고 핀잔을 주는 듯한 모습이 좀 제가봐도 모양이 좋지 않지만, 어쨌든 잘 관리하고 앞으로 40년은 더 쓸 수도 있는 치아인지라, 이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골고루 상해있는 것이 저도 참 답답했습니다.


 “그... 저.. 저희 어머니가요.. 도저히 이를 닦을 수 없는 상황이셨어요.. ”


보다못한 딸이 한마디 합니다.


“그래도 닦으셨어야죠. 이를 닦는데 20분이 걸립니까. 한시간이 걸립니까. 관심이 있으시면 할 수 있는거에요. 그냥 잠시 관심을 기울이면 되는데 그게 안되시는 거니까 고치셔야죠. 어쨌든 계속 먹고는 사셔야잖아요. 따님이라도 좀 잔소리를 해 주세요. 제가 붙어서 계속 잔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요.. ”


 어머니는 연신 부담되는 치료비용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이십니다. 그냥 한 두개만 치료하면 안될까요? 원장님.. 일단 부러진 이 치아만..


 “원장님, 사실 제 어머니가요.. 병원에서 병수발을 들고 계시거든요. 제 언니가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어요. 벌써 16년 째네요. 그동안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시고, 그저 오시는 분이 선물로 들고오는 두유만 계속 드시고, 자기 몸 관리를 전혀 않으셨어요. 그래서 이가 저렇게 썩으신거에요. 너무 뭐라고 하지 마세요.”


“.........”


“몇년 전에 언니가 눈을 처음으로 떴어요. 그런데 의식은 아마도 없는 것 같아요. 아무 반응은 하지 못합니다. 엄마가 그동안 참 힘드셨어요. 치료를 잘 좀 해주세요. 우리엄마.”


“네.. 언니한테 눈을 깜박여봐.. 하고 말하면 반응이 없어요?”


“네.. 아무 반응은 없어요..”


시계 초침 가는 소리가 크게들립니다. 잠시의 침묵에 서로가 어색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를 닦으라는 말이나 내뱉는 치과의사라니 참....’ 소녀시절에 누워서 이제는 서른이 넘는 성인이 되어버린 딸을 둔 어머니에게 차마 양치 이야기를 더 할 수가 없습니다. 침대위에서 성장하는 하나의 인생이라니요.. 이런저런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일단 치료를 시작하십시다.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벌써 3년째 오시지를 않으시네요. 다른 치과에서라도 치료를 좀 진행하셨으면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어제도 치아가 문제가 있다는 말을 2011년에 진단해 드리고, 이제 2015년에 내원을 다시 시작하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왜 이제서야 오셨어요? 아.. 원장님.. 그게 시간이 잘 안나서요..


 이런 분들을 뵐 때면 가끔 그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짊어지고 가기엔 어깨의 짐이 너무 무거우신것 같습니다. 현대의학이 그 누워있는 언니는 살리고, 곁에 있는 어머니는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뇌사는 기계의 도움없이는 호흡할 수 없는 상황이고, 식물인간은 자발적 호흡운동이 가능한 상황으로 서로 다릅니다. 식물인간은 스스로 10년 이상도 누워있을 수가 있습니다. 한 해에 우리나라에서 뇌사자의 발생이 2천명이 넘어간다니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심장이 멎어야 죽음인지, 의식이 없으면 사망인지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다시 깨어나는 경우의 사람은 식물상태의 인간을 뇌사로 오진한 것이지, 뇌사 진단이 맞는 경우에는 다시 소생할 확률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뇌사와 식물상태의 인간은 주변의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혹독한 시간임에 분명합니다. 나의 어머니가 심장이 멎은 후에, 어머니 귀에 대고 한참동안이나 우리 형제들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의식불명의 언니분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점심을 먹으러 나섰더니 차가운 바람이 붑니다. 그나마 걸어다닐 수 있으니 이렇게 찬 바람도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 해 봅니다. 이제는 얼굴도 어렴풋이 잊혀져가는 그 언니의 어머니에게, 남은 생의 날들에 축복이 장마비처럼 길고 두텁게 쏟아지는 때가 반드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누워있는 채로 성인이 되고, 노화가 진행되는 그 언니분도, 심장이 뛰는 동안은 아름답고 좋은 꿈을 길게 꾸었으면 합니다.

피곤한 일상과 충분치 못한 치과치료로 인해 치아가 하나도 없게된 어르신의 잇몸을 본 뜬 석고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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