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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국시 할머니의 생신

치과 진료실에서 웃고 울다.


(오늘은 국시할머니의 생신이셨습니다.)

 
겨울 밤. 늦은 시각. 가로등 밑에서 얼어붙은 폐지를 정리하시던 국수배달할머니를 가끔 마주칩니다. 그리고는 생각합니다. 


언제 한 번, 대접해드릴 기회가 있을까?





 오늘 새벽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피곤하게 아침에 깨어, 출근하면서도 ‘아.. 빵집사장님이랑 예전에 말씀나누었는데, 오늘 내가 들러서 케잌을 하나 사가지고 가야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 둘째아이는 감기로 어린이집을 가지 못해 집에서 쉬고, 첫째아이는 유치원까지 제가 태워줘야하는데 화장실이 급하다고 계속 늑장을 부리다가 겨우 시간에 맞춰 배웅하고 나니, 그만 생신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습니다. 그러던 중, 출근을 하고, 바삐 진료를 보는 와중에 빵집사장님이 치과 대기실에 할머니를 위한 케잌을 선물로 두고 가셨다는 직원의 알림이 옵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거든요. 도움을 주신거죠.

‘아.. 그래 맞아.’


“전화로 국시배달할머니에게 국수하나 주문하고요, 다같이 우리가 노래하고 촛불켜고 합시다. 할머니 오시면 잘들 합시다. 알겠죠?”


 오늘이 바로 치과로 늘 수고해주시는 국수배달 할머님의 생신이십니다. 항상 아침이면 새벽부터 박스 등의 폐지를 주워 머리에 이고 다니시다가, 식사시간에는 국수집사장님이 만든 국수를 여기저기 배달하십니다. 어두워진 시간. 퇴근 후에는 제가 야간진료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뵈면, 역시나 열심히 또 폐지를 줍고 계십니다. 몸소 성실한 생활로 제게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분입니다. 얼핏 뵙는 모습에서,  스티브 잡스의 한시간짜리 강연을 듣는 것보다 배울게 많아요. 하루종일 따뜻한 병원에서 환자분과 씨름하다가 내 정성도 몰라준다며 투덜대며 밤늦게 퇴근하는 제 눈에 국시할머니가 보일때면, 찬 얼음물에 세수를 한 듯 정신이 번쩍 납니다. 나도 참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구나..

 서둘러 환자분 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좀 당겨서 마쳤습니다. 치과진료실 입구에서 국시할머니가 들어오자, 애교있는 한 직원이 국수 한그릇을 들고 배달 오신 국시할머니를 모시고 상담실로 들어옵니다.

“에구.. 왜 이러는거에요?”


“오늘 할머니 생신이시잖아요.”


“에구.. 이를 어째..”


 성함도 잘 모르는 국시할머니의 국수집은 세평이 안될정도로 작습니다. 우리치과 옆 건물이죠. 그래도 저 혼자서 점심에 일을 할때, “할머니, 죄송하지만, 한그릇만.. 안될까요?” 라고 말씀드리기를 11년, 저도 참 뻔뻔하게 시킨적이 여러번 있습니다. 4천원 국수를 한그릇만 배달시키기란 죄송스럽지만, 가운을 입고 식당까지 나가기 곤란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일축하 합니다~. ~~~ 사랑하는 할머니~ 생일축하합니다.~~”

 
 우리 직원들 모두와 크게 불러드리니, 어느덧 할머니의 작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주름을 타고 흐릅니다. 그냥 기분좋으시라고 해드린건데, 저도, 직원들도 눈물이 글썽합니다.

“에이~. 할머니, 이게 도대체 몇년만에 드시는 케잌이에요?”


제가 너스레를 떱니다.


“나? 케잌요? 원장님? 저는 65년만에 처음이에요.. 촌에서 자라서 그런게 어딨어요. 어릴적엔..”


 장모님께 나중에 여쭈어보니,

“김서방, 그시절 촌에서는 그냥 미역국이나 먹었지, 케잌은 아마 없었을꺼야. 나이들어서 자식이 챙겨주면 모를까..”


 양말이나 살 수 있을 정도의 자그마한 상품권을 억지로 밀어넣어드리고, 입에 맞지 않아, 들고가셔도 드시지도 않을 것 같은 케잌을 손에 들려드리면서, 저도 직원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또 배웠지요. 어쩌면, 치과의사라는 허울좋은 껍데기가 좀 더 할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게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카드라도 직원들과 다같이 써서 넣어드릴 걸, 제 생각이 짧았네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저라는 사람과, 따뜻하고 오지랖이 넓으신 빵집사장님, 그리고 우리치과직원들이 모여서, 한 할머니의 65년 인생에 처음으로 받아보는 생일케잌과 노래를 드리고 나니, 하루가 뿌듯합니다. 언제부터 나 관우에게 따뜻한 방과, 따뜻한 온수물과, 매년의 생일 케잌과 하루 세끼의 식사가 당연한 것이었던가. 눈물고인 할머니 앞에서 부끄러워집니다.

 “에이구, 원장님,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서 원장님이 인사해도 내가 안받아줄끼라. 이기 무슨일이고..”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조금씩 흐릅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간다지만, 우울한 성격의 저는, 한국인의 평균연령만큼 살 수 있다면, 이제 30년, 내년이면 29년 정도 내가 맑은 정신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구나. 아마도 20년 정도가 체력적으로 피곤하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국시할머니 덕분에 일생동안 1000명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자는 제 버킷리스트에 또 한 명을 추가 할 수가 있어서 저는 오늘 소득이 큽니다. 저에게 스스로 위선적인 사람이라고 말하니 어딘가 후련해지는 느낌마저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자그마한 이벤트를 하는 것도 좀 뻔뻔해야하고, 그걸 또 사진을 찍어서 글을 올리는 것은 더욱 뻔뻔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라는 것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의도와 좋은 결과를 낳는 일이라면,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저는 가끔 시도해볼까 합니다. 선순환의 시작이 되는 일을 한다고 저를 다독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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