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왕세자비 그 자체가 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
감독: 파블로 라라인
주연: 크리스틴 스튜어트
나의 별점: ★★★☆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타는 영화들은 어느새 ‘재연’이라는 키워드와 함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역사적이거나 기념비적인 인물에 대한 묘사, 어쩌면 더 나아가 빙의라는 경지에 이르러 영화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다. 남우주연상에서는 <다키스트 아워>의 게리 올드먼이 윈스턴 처칠으로,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말렉이 프레디 머큐리로 보여주었고, 여우주연상에서는 <더 페이버릿>에서 올리비아 콜먼, 그리고 <주디>의 르네 젤위거가 있었다. 올해 이러한 키워드를 계승할 것으로 보이는 영화는 어느새 전 세계에서 26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으로 나오는 <스펜서>이다.
<스펜서>는 역사적인 순간과 인물의 감정 묘사를 강점으로 하는 영화감독인 파블로 라라인의 작품으로, 91년 크리스마스 별장에서 다이애나비가 겪는 상황을 그려낸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영화 속의 모습은 위태롭게 느껴진다. 엄숙한 왕실 분위기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 보이는 그녀의 행보와, 그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관객을 함께 무겁게 짓누른다. 영화 역시도 이러한 감정을 종용하듯 서스펜스에 어울릴 법한 음악들과 함께 어둡고 차가운 색감을 영상 전반에 깔아두고 영화 곳곳에 배치된 상징들이 다이애나를 대변한다.
이와 같은 서사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목’이다. 목과 관련된 키워드는 진주목걸이와 앤 불린인데, 먼저 진주목걸이는 찰스 왕세자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누구나 탐낼법한 장신구로 그려진다. 하지만 다이애나에게는 내연녀의 선물과 같은 제품으로서 달갑지 않은 선물이다. 감독은 목걸이를 그녀에게 억지로 채워진 목줄처럼 은유하는데, 이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다이애나는 식사 중 목걸이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마치 목걸이가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것으로 느낀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그녀는 목걸이를 차기를 꺼려한다.
두 번째 키워드인 앤 불린의 경우 다이애나의 가문인 스펜서 가문의 먼 조상 중 한명으로서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자신의 새로운 결혼을 위해 누명을 씌워 참수한 여인이다. 이는 찰스가 본인의 내연녀가 있음에도 다이애나를 문제의 대상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게 만든 상황과 연관된다. 다이애나는 그렇게 영화 내내 앤 불린의 환영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다. 그러나 결말에서 그녀는 앤 불린과는 달리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에게 목줄이나 다름없던 목걸이를 끊어내면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위와 같은 내러티브에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는 작업에서는 아쉽게도 부족한 부분들이 존재했다. 이야기 자체가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이라는 짧은 시간만을 두고 진행되기에 어째서 그녀가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배경지식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의문점을 품을 만했다. 또한 그녀가 다시 ‘스펜서’라는 이름으로 돌아가는, 즉 본인을 옥죄던 왕가의 사슬을 풀어 던지는 과정이 다소 부실하게 다가왔다. 이는 어쩌면 그녀가 받는 압박이라는 부분에 강조된 서사와 이를 위해 너무 남발된 상징들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허수하비, 진주목걸이, 스펜서 저택, 앤 불린, 꿩 등의 다이애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다양한 상징들이 의미가 중첩되는 부분이 있음에도 남발 되는 느낌이 오히려 각 상징들의 중요도를 반감시키는 효과를 주었다.
앞서 말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스펜서>가 충분히 서사를 잘 표현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빙의나 다름없는 연기력에 있다. 처음에 존재하던 캐스팅 논란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의 연기는 다이애나 왕세자비 그 자체로, 행위의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감정적인 동화로 보인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다이애나의 행동에 설득 당하고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영화 스스로는 좋은 점이 있음에도 가지고 있는 한계에 봉착할 수 있었으나, 주연 배우의 연기가 그 틈을 넘어갈 수 있는 활로를 열어주었다. 극찬을 남길 수밖에 없는 그녀의 연기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우리는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한 줄 평: 옥죄는 왕실의 권위에 목을 내어준 앤 여왕(Lady Died, Anne)과, 옥죄는 목줄을 풀어 던진 다이애나 왕세자비(Lady Diana)의 대비. 가히 경지에 오른 연기가 보는 이마저 숨 막히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