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무역전쟁 - 어쩌면 혁신은 결핍을 먹으며 자란다
막아야 한다. 틀어막아야 한다. 막지 않으면 따라잡힌다. 그런데, 빈틈없이 막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트럼프의 새로운 관세 정책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역시나 중국을 대상으로 유별나게 공격적인 관세를 부여했다. 2022년부터 있었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트럼프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한, 미국은 중국의 숨통을 끝까지 틀어막을 셈인 듯하다.
여기 얽혀 있는 정치적, 지정학적, 민족적, 경제적, 윤리적인 문제를 모두 차치하더라도,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저렇게 막는다고 정말로 막힐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은, 즉 결핍이 있는 환경이 오히려 혁신의 거름이 되었던 몇 가지 사례들을 되짚어보며 미국이 오만의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는 글이다.
과거 도시에는 그 지역 그 시대에서 사용 가능한 구조적 기술이 하나밖에 없었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지금처럼 교통과 유통망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기에 지극히 제한적인, 가까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주변에 나무가 많은 경우에는 나무로, 돌산이 가까우면 돌로, 이도 저도 없으면 흙으로 빚어 구운 벽돌로 도시 내 대부분의 건물을 지었다.
구조 기술적인 면에서 본다면 성당이나 궁궐 같은 특별한 건축물만 가끔 큰 스케일로 구축했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인간의 노동력으로만 지어야 했기에 휴먼 스케일의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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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구축 기술적, 건축 재료적 제약들이 도시 DNA의 통일성과 조화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선 이후 크레인과 철골 구조의 도움으로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쉽게 휴먼 스케일을 넘어선 대형화로 진행 가능해졌다. 지나치게 커져 버린 건축물들 사이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시작했고, 빠른 자동차가 이동하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옆으로 비켜나게 되고 더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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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재료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현대 도시는 전 세계에서 수입되어 오는 재료들이 난무하다. 따라서 통일성과 컨텍스트가 부재한 카오스적인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 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中
로마의 피렌체나 그리스의 산토리니처럼 건축 기술이나 재료의 제약이 오히려 그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어줄 때가 있다. 현대적인 도시 뉴욕 또한 섬이라는 정해진 땅 안에 많은 인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맥락이 수많은 고층빌딩을 낳았고, 그 도시의 매력이 되었다. 즉, 결핍은 맥락을 형성하고 맥락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데 있어 강력한 배경이 되어준다.
예술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라이트 형제의 일화를 살펴보자.
야심 찬 목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 서로 돕겠다고 자청하는 전문가들, 풍부한 자금.
1900년대 초반, 성공에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춘 새뮤얼 피어폰트 랭글리(Samuel Pierpont Langley)는 인류 최초로 비행기 조종사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스미스소니언협회 고위 관료이자 저명한 수학과 교수였고, 하버드 대학교에 재직했던 인물이다. 앤드류 카네기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과 같이 유명한 정재계 인사와도 친분이 있었다. 미 육군성은 랭글리의 프로젝트에 5만 달러를 지원했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금액이었다.
랭글리는 재능과 기술이 뛰어난 당대 최고 인재들과 함께 드림팀을 결성했다. 팀은 최고의 자원을 갖췄고, 언론은 그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쫓아다녔다. 전 국민이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쏟았고, 하루빨리 성공 기사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꾸린 드림팀과 풍부한 자원으로 보아 성공은 보장된 듯했다.
하지만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띄운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바로 랭글리와 몇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비행기를 발명하는 데 열중하던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였다.
형제의 열정이 대단했던 나머지 고향 오하이오주 데이턴 주민 몇몇은 그들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함께 팀을 이뤄 열정적으로 헌신했다. 랭글리와 달리 라이트 형제에게 지원금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에겐 정부 보조금도, 고위층 인맥도 없었다. 팀원 가운데 석사나 박사 학위는커녕 대학 문턱을 밟아본 사람도 없었다. 형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초라한 자전거 가게에 모여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1903년 12월 17일, 라이트 형제는 마침내 인류 최초로 하늘을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자금이나 교육 수준도 앞선 랭글리는 실패하고, 라이트 형제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저 운의 문제는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와 랭글리는 모두 동기가 확실했다. 양쪽 다 열심히 했고 과학적 사고도 뛰어났다. 그들은 같은 목표를 추구했다. 하지만 주변에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꿀 기술을 개발하도록 팀을 이끈 진정한 리더는 라이트 형제였다.
- 사이먼 시넥 <Start with Why> 中
랭글리의 엘리트 팀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라이트 형제였다. 이 일화를 소개한 책의 저자 사이먼 시넥은 'why', 즉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발명에 대한 대의명분에서 모든 일을 시작한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라이트 형제가 갖고 있던 'why'는 그들의 결핍이 형성한 맥락 덕분에 뚜렷이 존재할 수 있었다고. 만약 라이트 형제가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모든 조건에서 더할 나위 없었다면 그들의 대의명분은 훨씬 약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결핍이 갖는 힘을 자주 간과하고는 한다. 히틀러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은 마치 기차의 연착을 참아내듯 이 독일의 공습을 견뎌냈다. 짜증 나기는 해도 전체적으로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실제로 철도는 대공습 기간에도 계속 운행되었고, 히틀러의 전술은 내수 경제에 거의 흠집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영국의 군수품 수급에 훨씬 더 큰 손해를 기친 것은 1941년 4월의 부활절 월요일이었는데, 당시 모두가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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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정신적 황폐화 문제는 어떨까? 전문가들이 우려한 대로 수백만 명이 정신적 충격의 피해자가 되었을까?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환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끔찍한 슬픔을 겪었다. 하지만 정신병동은 텅 비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대중의 정신건강이 실제로 향상되었다. 알코올중독이 줄어들었고, 자살하는 사람도 평상시보다 적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많은 영국인들이 대공습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다. 그 당시 모든 사람이 서로를 도왔으며, 아무도 정치적 입장이나 빈부 여부에 상관하지 않았다.
이후 영국의 한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영국 사회는 많은 면에서 대공습으로 인해 강해졌다. 히틀러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中
영국의 군수품 공급망에 큰 타격을 입히고 정신적인 히스테리를 일으켜 스스로 붕괴하도록 하는 것이 대공습(the Blitz)의 목적이었다. 런던에만 8만 개의 폭탄이 떨어졌는데도 영국은 스스로 붕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연대하기 시작했다는 연구뿐이었다. 결핍을 유발하고 그 결핍으로 인해 약해지기를 바란 의도적인 공격이 있을지라도 결핍이 형성하는 맥락은 매우 강력하다.
결핍으로 인한 붕괴를 의도한 공격? 지금 미국이 중국에 가하고 있는 견제와 어딘가 닮아 보인다. 실제로 중국은 AI 개발에 심각한 결핍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그 결핍으로 인한 맥락은 벌써 DeepSeek라는 혁신을 낳았다.
미국의 GPU 공급 제재로 인해, 중국은 더 이상 기존 방식대로 대규모 모델을 학습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DeepSeek는 연산량을 혁신적으로 줄이는 경량화 기법을 찾아냈다.
Perplexity의 창업자 아라빈드 스리니바스(Aravind Srinivas)는 DeepSeek에 대한 CNBC 인터뷰(BZCF|미국 충격에 빠뜨린 중국 딥시크)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단 중국은 미국과 비교해 불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가장 먼저 미국의 좋은 하드웨어를 얻을 수 없죠. 그렇게 성능이 떨어지는 GPU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쓰는 세대 이전 버전을 쓰고 있을 거예요. 성능이 좋은 모델은 일반적으로 연산량도 크기에, 하드웨어의 열세는 곧 엄청난 장애물이죠.
하지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입니다. 불리한 상황 속에서 우회로를 찾으려 하다 보니, 기존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모델을 만든 거죠. 미국은 좋은 하드웨어로 훨씬 더 좋은 모델을 만들고, 중국에게는 사실상 아무것도 주지 않은 셈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뭐라도 만들어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니라면, 언제든 더 나은 결과를 만들 가능성은 열려 있죠.
놀라운 건 그들이 해결책을 찾은 것도 모자라, 오히려 미국 것보다 더 나은 걸 만들어낸 겁니다. 게다가 그 모든 결과물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니, 우리도 그 기술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그런 엄청난 모델을 만든 노하우와 인재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큰 강점이 될 겁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미국이 우수한 하드웨어로 모델의 규모를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동안, 중국 연구소 딥시크는 결핍을 양분 삼아 혁신을 만들어냈다. 학습 비용과 토큰 비용이 생명인 현재의 AI 시장에서 중국은 어마어마한 비용 절감 혁신을 이루어냈다. 인공지능을 학습할 자원이 부족하다는 맥락 속에서 결국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다.
고일수록 썩는다. 이는 인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진리다. 그 어떤 호황을 누린 제국조차도 이 진리를 피해 가지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어쩐지 요즘 미국이 흐르는 거대한 강보다는 닫혀 있는 호수를 자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유용한 혁신이란, 막힌 틈새로 새어나온 작은 숨결 속에서 자라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