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한적하던 학사시스템 사이트가 어제 굉장히 붐비었다.
성적 게시일이었기 때문이다.
휴학생인 나는 팔자 좋게 친구들이 공유하는 성적을 바라보던 중, 문득 몇 개월 전의 내가 학점에 대해 논했던 소신 발언들이 기억났다. 학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굳은 믿음 아래, 학점 관리에 다소 소홀했다. 지금도 학점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나, 그때와는 사뭇 의견을 달리한다.
학점은 중요할까, 중요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학점은 '정형화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원 관리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자신이 가진 배경지식, 이해력과 암기력, 시간이라는 자원을 잘 파악하고 조율해서 정형화된 문제(시험과 프로젝트, 보고서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들을 잘 해결할수록 학점은 높아진다. 자원 '관리 능력'을 살피는 종합적인 지표이므로, 각 자원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자원 관리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역량들은 많다. 인문학적인 교양, 좋은 멘토, 자신만의 문제 정의, 언어 능력 등 정량적인 평가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커리어, 대인 관계 등 삶의 다방면에서 자원 관리 능력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갖는 다른 자질도 많다.
하지만 그런 자질들은 부수적으로 여겨질 때가 매우 많다. 가장 큰 이유는 정량적인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정량적인 평가가 쉬운' 자원 관리 능력을 키우도록 교육받았다. 익숙하고, 비교적 얻기가 쉽다. 즉 '일단은 학점부터 높이고 보자'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 다른 중요한 역량에 투자하는 것을 회피하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가 몇 개월 전 나의 생각이 멈춰 있는 구간이다.
그런데, 자원 관리 능력은 우습게 볼 역량이 아니다. 오히려 각 자원의 보유량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압도적인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특정 자원을 더 많이 가진 사람보다 각 자원을 조화롭게 이용하고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높은 효용을 내지 않을까? 꼭 학문적인 영역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보편적인 잠재력 및 문제 해결 능력과 직결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능력도 없으면서 다른 '얻기 더 어려운' 역량들을 갖춘다는 것은 자기 기만에 가깝다.
따라서 '학점 말고도 중요한 게 많으니 학점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도 '일단은 학점부터 높이고 보자'만큼 안일한 회피성 태도에 불과하다. 사실 학점과 직결된 자원 관리 능력이 다른 역량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밑천에 큰 도움을 줄 확률이 높다.
결론은, 학점 말고도 중요한 것은 많지만 학점만큼 쉬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학점이 생각보다 낮다고 해서 너무 초조해 할 필요도 없다. 모든 역량을 골고루 같이 끌어올리려면 당연히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학점이 대변하는 자신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실이 그렇다면 안목 있는 사람들은 분명 알아볼 것이다.
학점만이 자신의 고점인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되고, 자기 기만에 빠져 가장 기본적인 것을 얕보지도 말자.
어렵지만 다 챙겨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