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정말로 군기가 필요할까?

질서에 정말 필요한 것

by 김우혁

이곳에서는 아이유의 팔레트를 들으며 눈을 뜬다.


그 누구도 밥을 적당히 가져가라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지적받았을 때 투덜대며 불평하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지 않는다. 나다 싶으면 그냥 한다. 자격지심으로 무장한 뾰족한 말은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나긋나긋하지만 힘이 실려 있다.


일어나자마자 곤두서는 신경을 애써 잠재우는 데 급급했던 훈련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같은 군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어째서인지 훨씬 더 잘 돌아간다.




이곳에서는 간부든 병사든 기본적으로 서로를 신뢰한다. 신뢰를 한 번 주면, 받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불신으로 가득한 폭탄 돌리기 대신 기꺼이 해 주고 또 기꺼이 돌려준다. 이 주고받고의 선순환이 병사들에게는 자유를, 간부들에게는 질서를 안겨준다. 그래서 흔히 군기라고 부르는,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통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형식적이고 낡은 문화라 여겼던 군대의 모든 규율들 - 특히 흔히 말하는 ‘이등병으로서의 자세’ - 을 아주 기분 좋게,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었다.


큰 목소리, 빠릿빠릿한 행동, 상급자 예절, 잡다한 궂은일들 같은 것들이 마땅히 상급자들 또는 동기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충분히 납득되었다. 하물며 간부들이 사용하는 헬스장과 화장실을 청소하면서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애초에 군기란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아마도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전술적인 지시를 이행하지 않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강압적인 위계가 없으면 말을 듣지 않으니, 절박한 상황에서도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몸에 배도록 한다. 그렇다. 이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속부터 단단히 다져진 신뢰 없이 얇은 겉껍질만 강제로 이어 붙이는 식의 군기가 과연 전쟁터에서 유효할까? 이건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 보였으나 그 형편없는 민낯에 실망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결국 밑천을 잘 다질 수 있어야 하고, 군대라는 집단에서 밑천은 기본적인 신뢰와 존경이다. 일방적인 강제가 아닌, 양방향으로 저절로 우러나오게끔 하는 리더십이 모두에게 요구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러한 정신적 문화가 잘 뒷받침되어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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