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호로비츠가 말하는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까, 잘하는 일을 해야 할까?
세대를 초월하는 질문이다. 사람마다 답도 제각각이다.
a16z의 창업자로 널리 알려진 벤 호로비츠는 201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연설에서 '열정을 좇지 말라'고 대담하게 조언했다. 공식적인 제목은 <Do Not Follow Your Passion and the World is Not Going to Hell in a Handbasket and the Class of 2015 is Not Required to Save It>이다.
'천직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라고 주장한 이나모리 가즈오가 이 연설을 들었다면 크게 공감했을 것 같다. 실제로 연결되는 부분이 매우 많으니, 이나모리의 주장을 다룬 이전 글(천직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을 함께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열정을 따르지 마세요. 이 말 듣고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성공한 사람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하면 아마 대부분이 이렇게 말할 거거든요.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해요.” 그래서 세상의 일반적인 결론은 이렇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한다.”
그런데, 우리는 엔지니어잖아요. 생각을 한번 뒤집어볼 수도 있어요.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한 걸까요? 아니면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 그 일을 좋아하게 된 걸까요? 성공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는 데, 그냥 성공을 좋아하는 걸 수도 있죠. 멋지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해서 성공한 걸까, 성공한 일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과 닮아 있다. 이런 유형의 논쟁은 핵심을 놓치기가 쉽다. 뭐가 먼저든, 이 둘은 한 데 엮여서 강력한 선순환을 이룬다. 즉 이 순환을 일단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엔비디아의 응용 딥러닝 연구 담당 부사장 브라이언 카탄자로가 증언한다.
엔비디아는 DLSS에 들어간 AI를 이 기술이 사용될 각 게임 화면에 일일이 맞춰 세부조정하고 학습시켜야 했는데, 이는 매우 고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이었다.
그렇지만 엔비디아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시간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고 반복적으로 개선하며 시장의 수요가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일의 가치를 배운 바 있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는 '일단 내가 먼저 만들기'로 해결해야 해요". 브라이언 카탄자로는 말했다. "수백만 가정에 환상적인 AI 기술을 보급하려면 누군가 먼저 만들어야 하죠."
- <엔비디아 레볼루션> 中
일단 내가 먼저 만들려면, 좋아하지 않아도, 또는 단기간에 성공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일단 해야 한다. 매우 고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열정도 성공도 아닌,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 빼고 다 재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 또한 평소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분야의 책을 시험 기간에 유독 재밌게 읽은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나아가 모처럼 여유로울 때 즐기는 게임은 본업과 무관하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것은 열정일까? 아니라면, 진짜 열정과는 어떻게 다른가? 정말 좋아해서 느끼는 열정, 희소해서 느끼는 재미, 일시적인 압박이나 좌절로부터 도피하면서 느끼는 해방감을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는가?
그럼 어떤 게 진짜일까요? 그걸 알려면,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봐야 해요. 열정이라는 건, 첫째로 우선순위를 정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내가 더 열정적인 건 수학일까, 공학일까? 역사일까, 문학일까? 아니면 비디오 게임일까, K-POP일까? 어떻게 알 수 있죠? 이런 결정은 정말 어려워요. 그에 비해 “내가 뭘 잘하나?”는 훨씬 더 명확합니다. 수학과 글쓰기 중 뭘 더 잘하나요? 이건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오죠.
둘째, 지금 21살인 여러분이 열정을 느끼는 게 40살이 될 때도 그대로일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건 연애 상대를 고를 때도 그렇고, 직업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열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상황에 크게 의존한다. 벤 호로비츠는 이러한 모호성을 지적하며, 주관적인 열정보다는 객관적인 재능이 더 믿을 만한 나침반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의견에 개인적인 경험을 더 보태겠다. 적성 탐색에 전념했던 휴학 기간을 돌아보면, 강한 흥미를 느낀 것 중 대다수는 새롭게 접한 것이었다.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왜 여태 모르고 있었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논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새로운 것은 재밌다.
둘째, 열정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범위에 제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커리어를 설계할 여지가 많은 어린 시절일수록 아는 것이 너무 적어 열정의 지반이 부실하다. 따라서 믿고 좇기에는 열정의 잠재적 유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나는 벤 호로비츠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겁니다. 열정을 따르는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에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죠. 돈, 명예, 물건, 칭찬…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가져가는가가 아니라, 세상에 무엇을 기여하는가예요. 그래서 제 권유는 이겁니다. “열정을 따르지 말고, 기여를 따르세요.”
'열정을 따르는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다'는 말은 곧 개인이 열정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다, 즉 주관적이라는 말이다.
내가 진짜 잘하는 걸 찾아서, 그걸 세상에 기여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게 하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세요. 그게 정말 따라야 할 방향입니다.
호로비츠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열정은 줏대가 없으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잘하는 일'을 찾아 세상에 기여해라. 잘하는 일을 하면 '일단 내가 먼저 만드는' 과정이 더 수월해진다. 따라서 선순환이 시작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선순환이 시작되면, 일에 애정이 생기고, 열정이 생긴다. 더 잘해진다. 세상에 기여를 하니 사회적 보상도 따라온다. 그러면 지속할 수 있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열정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쯤 되면 열정을 좇아도 된다. 새로운 선순환을 더 쉽게 만들어 낼 자본과 신뢰가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열정을 좇지 말라고 해서 좌절할 필요 없다. 먼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을 뿐이다. 열정을 좇기 위해서는 열정을 좇지 않을 줄 알아야 한다. 열정에는 줏대가 없으니, 내 줏대를 먼저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