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혁신 선두를 지켜낸 방법
한 영화에서 이런 대사를 본 적이 있다.
신이 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되니 아무것도 뺏어가지 말라고.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의 본질에는 변화가 있다. 여태까지 노력해서 일궈낸 결과물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익숙한 터전에서 벗어나 '다음'으로 옮겨 갈 용기가 필요하다. 이 묘한 아이러니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기업 세계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이를 현명하게 극복해 온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엔비디아다. 그 일화를 모아봤다.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이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정체 상태, 즉 기업이 현재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사업에만 집중하고 싶은 필연적인 욕구로 인해 수년 이상 상업적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낮은, 좀 더 모험적인 혁신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할 위험을 경고했다.
엔비디아의 일대기를 다룬 책 <The Nvidia Way>에서 젠슨 황은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자주 언급한다. 뛰어난 혁신으로 빠르게 성장한 대기업이 더 모험적인 혁신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면서 또 다른 혁신 기업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는 내용이다. 이 패턴을 더 면밀하게 조사한 사례가 있다.
웨스트와 베탕쿠르가 찾은 법칙에 따르면, 도시의 크기가 두 배 커지면 도시의 생산성은 인구 1인당 15% 증가한다.... 물론 범죄와 질병처럼 안 좋은 측면도 같이 증가했지만 말이다. 더욱이 이렇게 추가적으로 큰 생산성과 성과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 기반 시설, 자원은 반대로 15% 감소했다.
이런 발견에 들떠서 인간 사회의 다른 시스템들도 조사하기로 결심한 웨스트와 베탕쿠르는 우선 기업들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회사 23,000곳을 조사하고 이들은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기업의 경우에는 크기가 커질수록 도시와 정반대의 결과에 이른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직원 1인당 수익은 기업이 커질수록 감소했다. 웨스트는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조직 체계도 커지면서 효율을 높이기는커녕 억제한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더 심각한 사실은 기업의 평균 수명이 40~50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기업이 침체기에 있을 때 가장 먼저 연구 개발 부서부터 줄이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는 "이런 발상이 기업을 죽인다"라고 진술했다. 도시는 유기적이기 때문에 더 생산적인 데 반해, 기업은 학습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인위적으로 만든 조직체이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규모가 커지면서 학습이 정체된 대기업은 다음 혁신이 일어날 기회를 놓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가진 게 많아질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유지하는 데에만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젠슨 황이 그토록 경계하던 혁신기업의 딜레마는 결국 다음을 위해 지금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결단하는 능력에 달려 있던 것이다.
엔비디아 리서치의 데뷔를 앞두고 뤼브케와 몰나르가 나눴던 대화는 엔비디아가 어떤 회사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2006년 뤼브케는 엔비디아의 신설 조직인 엔비디아 리서치의 첫 구성원으로 합류했다. 입사 첫 주에 그는 엔비디아의 시스템 아키텍트이자 오랜 친구인 스티브 몰나르와 점심을 함께 먹으며, 엔비디아에서 연구 조직이 무슨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어쩌면, 특허 개발에 목표를 둔 조직으로 구성해야 할까? 몰나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엔비디아가 IP(지적재산권) 성벽을 쌓는 회사라는 생각은 안 들어. 이 회사의 강점은 그냥 남들보다 앞서서 뛰는 데 있거든."
그렇다. 엔비디아는 여태까지 개발한 기술들을 지켜내는 것보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다음 기술을 고민하는 회사다. 이들의 미래지향적인 문화는 조직 구조에도 반영되어 있다.
젠슨이 엔비디아 직원들을 영업, 엔지니어링, 운영 등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룹으로 조직하자, 이들은 사업 부서나 부문으로 나뉘지 않고 인재가 한 군데 모여 있는 풀처럼 취급됐다. 이를 통해 적절한 기술을 가진 직원들을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프로젝트에 배치할 수 있었다. 이것은 미국 기업에 항상 존재하는 문제인 상시 고용 불안정성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엔비디아는 사람들을 계속 해고하고 다시 채용하는 짓을 하지 않아요." 글로벌 필드 운영 책임자인 제이 푸리는 말했다. "이미 있는 사람들을 활용해서 새로운 임무에 맞게 재배치하죠."
엔비디아의 관리자들은 영역싸움을 하려는 의식이나 휘하 직원을 '소유'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직원들이 다양한 업무 그룹 사이를 이동하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훈련받았다. 덕분에 대기업에서 가장 큰 마찰의 원인 중 하나를 줄일 수 있었다.
거느리고 있는 구성원 수에 따라 관리자들의 힘이 나뉘는 관료주의 문제가 발생하자, 젠슨 황은 사내 조직을 새롭게 개편했다. 직원들이 한 부서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업무 그룹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즉 고인 물이 계속 흐르도록 했다. 모든 엔비디아 직원들이 쌓아온 것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우선순위에 따라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문화는 엔비디아가 혁신 선두 주자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내 우위를 지키려는 노력이 없으면 누군가가 쉽게 가로챌 수 있지 않냐고. 젠슨 황이 만들어 낸 'Rough Justice(대략적인 정의)'라는 표현이 답이 될 것 같다.
엔비디아는 파트너사에 이른바 '해결사 팀'을 파견하여 파트너사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모든 작업을 수행하게 했다. ... 엔비디아는 젠슨 황의 'rough justice' 모델에 따랐으므로 단순히 파트너사들의 기존 공정의 효율성을 향상하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한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칩 설계 생산 속도를 더 빠르게 해서 기존의 제품 개발 주기인 2년 주기를 AI 칩에서는 1년 주기로 단축하려 했다.
제프 피셔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접근법에 "마법은 없다." 그냥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근면한 노력과 철저한 효율성 추구가 전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는 중요한 사업 영역에 투자하기 위해 재정적 자원을 사용하는 일에 주저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다른 회사의 사업을 지원하는 일이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시장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다른 수많은 회사들의 도움 없이는 고객들에게 제품을 전달할 수 없다. 우리만 잘 나 봤자 다른 곳에서 병목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재정적인 부담을 껴안고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일까지 자처하며 생태계 전체를 부양하려 한 것이다. 그래야 최종적으로는 우리한테 이득이니까.
엔비디아의 이야기는 선두를 지키는 데 있어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1. 온전히 보존하지 말고 '유용할까?'를 기준으로 계속 바꿔나가라. 고인 물은 썩는다.
2. 마법은 없다. 근면하게 남들보다 앞서서 뛰어라.
3. 멀리 내다보고 적극 투자해라. 주변을 돕는 것도 좋다. 당장을 희생해도 결국은 도움 되는 걸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