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7.13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에게 나를 인정받으려 애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대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존재함은 상대방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는데, 이미 결말을 알고 있었음에도 엔딩신⏤브랜드가 블랙홀에서 살아남아 홀로 외딴 행성에 착륙하는 장면⏤에서 새삼스럽게 생각이 많아졌다.
'나홀로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이런 상상을 안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무인도? 너무도 흔한 소재라 한번도 피부로 다가온 적은 없다. 그러나 <인터스텔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는 줄거리상 앞서 우주 탐험을 나갔던 아홉 명의 우주조종사들처럼 내 남은 평생을 외계 행성에서 혼자 보내야 한다면… 그땐 정말 어떨까 싶었다. 그 외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미지의 공포이지 않을까.
그제서야 만 박사가 주인공 일행을 만났을 때 왜 그렇게 아이처럼 엉엉 울었나 알 것도 같다. 내가 아무리 이 행성에 대한 보고를 남겨도 그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방법이 없고, 수신이 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도, 답변을 받을 수도 없다. 죽는 그 순간까지 아무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건 인정욕구라는 걸 넘어서, 나란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릴 수 없다는 데서 오는 막연한 공포와 불안감일 것 같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속담이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책을 쓰는 이유도, 수백만 권의 자서전이 출판되고 인터넷 어딘가에 에세이를 남기는 이유도 결국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봐달라고, 내 삶을 누구에게든 보여주고 반응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래야지만 내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 되니까. 아무와도 교류하지 못하고 홀로 사라지기가 싫은 것이다.
따지자면 난 소셜미디어 중독인 것 같다. 적어도 하루에 두세 번은 SNS에 접속하고, 스토리와 게시글 올리는 것을 즐겨한단 점에서 그렇다.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소셜미디어 중독의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고, 전 세계 인구 중 약 2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다는 최근의 연구 결과만 봐도 그렇다.
'과시는 결핍'이라고 했다. 그걸 알게 된 후로 찔리는 게 너무 많아서 <과시하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삼아보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캐나다라는 타지에 나와있는 지금, 한국에선 경험할 수 없는 나의 일상과 이벤트를 show off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나뿐 아니라 소셜미디어 활동에 목을 매는 모든 사람들이 대부분 어떤 것의 결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 된 것도 그러한 인식의 영향이다.
하지만 소셜미디어가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살아있음을 어떻게 보여주지?
어떻게・누구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고, 산다는 행위에 동기를 부여 받을 수 있지?
누군가는 커리어와 좋은 수입이라고 하겠지만, 그건 롱텀의 모티베이션이다. 내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상호소통할 파트너도 없다. 있다 해도, 모든 일상을 속속들이 공유할 수도 없거니와 사이드 이펙트가 너무 많다. 그러니까 소셜미디어에서 간편하게 내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숏텀의 동기부여를 받고자 하는 거다. 당장 오늘 하루 재미있게 보냈고, 친구들을 만났고, 멋있는 곳에 놀러갔다왔다는 걸 보여준다.
속세를 떠나고 해탈하여 자연인으로 살 게 아니라면,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내 삶을 공유하고 (자랑이든, 가르침이든, 고해든, 구연이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소셜미디어라고 다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제는 기술이 있으니 굳이 동굴벽에 그림을 새기거나, 종이에 펜으로 적어 출판사에 투고하지 않아도 될 뿐.
소셜미디어를 아예 안하는, 즉 <아무 결핍이 없어 뵈는> 친구들을 보면 반은 신기하고, 반은 동경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어디서 인생의 동기를 얻어? 매일매일 어디서 행복을 얻어?'
'네 얘기를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 너가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돼?'
내가 소셜미디어를 안했던 시절에 어떻게 살았던가? 생각해보면 조금 특수하긴 하다. 학교도 안다녔고,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 읽고 도시락 까먹고 서너 시쯤이면 집에 와서 운동하고 악기 레슨 받고, 주말엔 대청소하고 아빠한테 기타 좀 배우다가 포기하고 산책하고 같이 저녁 먹고.
애초에 그때는 커리어나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한 개도 없었고 (해봤자 나중에 무슨 공부를 해볼지 고민하는 정도. 대학 입시 같은 건 생각도 안함) 당시엔 친구도 없었어서 내 일상을 누군가에게 공유해야 할 필요성도 못느꼈다. 그냥 매일매일이 소소하게 지나가는 하루들이었다.
그때가 더 행복했나? 하고 질문해보면… 잘 모르겠다. 확실히 고민이 없었으니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금은 먹고 살 것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고, 언제까지 그렇게만 살 수는 없었던 노릇이니까. 소셜미디어를 안한 탓에 더 행복했다거나, 지금 내가 소셜미디어를 하기 때문에 더 불행하다거나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확실한 것 하나⏤어엿한 소셜미디어 헤비유저가 된 지금의 나는 소위 나보다 ‘잘 나가는’, 커리어적으로 승승장구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채 행복하게 사는 어떤… 접시 구간의 친구들을 보면 종종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조바심이 생기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다.
김치전 구간은… 잠깐은 고통받더라도 결국은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이긴다. 간장종지 안의 친구들은 그저 일상을 공유해주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기쁘다. 사실 그 친구들은 그런 가치에 크게 관심이 없는 친구들이기도 하고.
무튼간 <소셜미디어에 자기자랑 금지.>를 다짐하자니 그럼 업로드할 것이 하나도 없겠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겐 오늘 점심에 샌드위치를 먹은 것도 자랑이고, 강아지 사진 올리는 것도 자랑일 것인데(매우 좋은 자랑).
부끄럽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나의 결핍은 친구 관계였던 것 같다. 친구를 많이, 잘 사귀고 있는 걸 보여주고 싶어하니까. 성인이 되고나서⏤특히 회사를 다니고부터 나서 '인간 관계는 양보다 질'이라는 것을 머리론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기도. 홀로 똑 타지에 떨어져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언제든 간장종지 친구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미소가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는 걸로 봐서, 어쩌면 내 인생에 필요한 친구는 딱 다섯 명 정도였는지도 몰라.
이전 글에서 고민했던 인생의 목표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어쩌면 우리 인생의 목표는 드래곤볼 찾듯이 내 인생의 친구 몇 명을 찾기 위한 긴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과 경험을 나누고 인생을 나누는 것일 수도.
일전에 한동안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게 너무 귀찮아서 하루 이틀에 한 번 정도만 연락하고 아무도 안만나고 칩거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수록 혼자 땅굴 파는 게 더 심해졌었다. 사실 그 친구들은 언제든 나한테 손 내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사실 예전 일기에서 발췌해 쓰다보니 이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아무튼 이렇게 쓰여있는 거 보니 사람이 많이 우울했긴 했었나보다 싶다.)
요새 특히 드는 생각은 인간관계를 넓게 가질 필요는 없고, 과시할 필요는 더더욱 없으며, 대신에 한 사람 한 사람 대할 때 진심으로 대할 것. 나혼자 목 매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being cool한 척 할 때도 있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나 싶다. 나 혼자 좋아하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냥 네가 좋아 친구야. 네 앞에선 솔직하게 너저분해질 수 있어.
하여간 난 확신할 수 있다. 오늘 인스타그램이 돌연 사라진다면 내 생활은 많이 바뀔 것이다.
보여주기 식의 모든 허례허식을 그만두겠지. 그 말인즉슨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소셜미디어를 위한 (말하자면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나를 보여줌으로써 내가 존재함을 입증한다. 나의 행동을 증명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타인의 평가가 곧 나의, 나 자신에 대한 평가가 된다.
소셜미디어를 안하는 사람들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행동할까? 신 앞에서 당당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사회에서 인정받지 않아도 나를 인정해줄 존재가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공개된 공간에 내 흔적을 남기고 반응을 받지 않아도 내가 가치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때로는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가 된다.
나는 신앙도 깊지 않고 단순하고 자극 역치도 낮고 자존감도 높지 않은 인간이라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글 앞머리에 장황히 역설한 것처럼 인간은 소통을 하고 기록을 남겨야 하는 동물이니까.
그렇게 나와의 타협을 하되, 대신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반응에 일희일비하거나, 쇼잉오프에 집착하지 말자. 내가 행복하면 돼. 중요한 건 그것 뿐이야.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불행해보여도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 행복해보여도 실제로 내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이 그렇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하루종일 하늘이 맑아 기분이 좋았다. 이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