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5 ⏤ 워홀 4개월차 일기
어학원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귀가 욱신거리며 아프길래 각도를 잘 맞춰 카메라로 찍어보았다. 웬… 커다란 여드름? 아니 차라리 종기 같은 것이 귓구멍 안쪽에 생겨있었다.
홀리몰리.
여기서 어딘가 아픈 듯 하면 제일 먼저 움찔 겁부터 난다. (아직 지역보험이 없는 이슈;;) 식은땀 삐질 흘리면서 짜고, 지혈하고, 소독하고….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처치를 하고 하룻밤 지나고 나니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멀끔히 아물어 있었다. 같은 자리에 조그만 딱지를 남겨놓고선.
전날만 해도 혹시나 덧나면 어떡하나, 내가 손 쓸 수 없게 커지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잠깐 했었는데 말짱하게 회복된 귀를 보고 있자니 음. 역시 걱정할 일 하나 없군. 이런 생각이 든다.
겨울밤 뜨끈하게 히터가 틀어진 방 안에서 책을 읽으며 일기를 쓰다 보니 앞으로의 내 인생도 이렇게 흘러가겠거니 싶다. 비록 통장 잔고는 한 자릿수에, 당장 내일부터 면접을 보러 다녀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괜한 걱정은 사서 할 필요 없다. 하루하루 난관에 봉착하는 일은 생기더라도 삶은 어떻게든 굴러갈테니.
요새 칼라의 귀국을 앞두고 친구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당장의 직업, 커리어,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 같은 것들.
제이크는 음악이 하고 싶어서 취직을 했다고 한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프로듀싱을 했다고.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모모는 어차피 일을 해야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알렌은 브라질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훌쩍 밴쿠버로 떠나온 케이스다. 이런 사람도 있는 거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고. 역시나 삶에 정답은 없다.
칼라와 이런 얘기도 했다.
"따지자면 우린 정상궤도에서 잠깐 밖으로 이탈해있는 거지. 한국에서의 삶을 일시정지해두고. 그런 느낌이 들어. 언젠간 그 궤도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정상궤도로의 복귀. 전에 그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부터 4-5년간 홈스쿨링을 하다가 '가만보자. 그래도 한국에서 살려면 대학은 가야겠고. 대학에 가려면 입시 공부란 걸 좀 해봐야겠다'라는 의식의 흐름으로 재수학원에 등록했을 때였다.
학원에 들어가던 날 가장 처음으로 느낀 것은 안정감이었다. 빈틈없이 짜여진 시간표, 과목마다 배치된 경력직의 선생님들, 사감선생님(!), 꽉 찬 교실의 일원이 되는 것, 소속감, 하다못해 급식표까지도.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 일 년간 헤엄치기만 하면 된다는 숨 막히는 편안함. 초등학생 시절 이후로는 느껴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그 당시 일기에 이런 내용을 써놓았다.
<니모를 찾아서>에서 말린과 도리가 바다거북 떼를 따라 거센 조류 속으로 합류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세상의 조류라는 걸 느껴보는 것 같다고.
그리고 착실하게 대학교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된 지금. 어쩌다보니 나는 또 한번 호기롭게 궤도 밖으로 벗어나고 있다. 나 생각보다 모험을 즐기는 사람일지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한국 사회라는 메인스트림으로 돌아가야 할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하고 그렇다. 캐나다행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한국으로부터의 도피였기도 하니까. 아직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지 못했기도 하고.
잠자코 듣던 칼라 왈, 자기도 순순히 궤도만 따라걷는 인생은 아니었다면서. 장기휴학한 상태로 캐나다까지 온 거 보면 맞는 것 같지? 이런다. 긴 휴학 중에 이런저런 일들을 경험해보면서 깨달은 것이 ‘꼭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꼭 맞는 적성을 찾아서 대단한 걸 이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만의 뚜렷한 목표를 따라 커리어를 쌓아 성공한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어?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잖아. 직업은 그냥 돈을 버는 수단일 수도 있는 거고, 죽을 때까지 자기 적성이 뭔지 모를 수도 있지. 그래도 되는 것 같아."
듣고 보니 적성 발굴이란 것 자체도 하나의 사회 신화가 아닌가 싶다. 사회초년생일 때부터 옳은 방향으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조차도... 하지만 살다보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할 수도, 일하는 게 즐겁지 않을 수도 있잖아? 혹은 60살이 다 돼서야 드디어 적성이란 걸 찾을 수도?
언제든 헤맬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유예기간을 좀 주자. 마침 캐나다라는 더 넓은 무대에 섰으니까. 나에게 딱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냐.
내가 캐나다에 온 또다른 이유는 한국에서 살기 싫으면 외국에 나와 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온몸으로 실감하고 싶어서였다. 이전 글 참고.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 미션 컴플릿이다. 살아보니까 또 살아지더라고. 캐나다 별거 아니었음.
하지만 동시에 한국에선 미처 몰랐던 현실의 벽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surviving과 living은 다르다. 근근히 파트타임 잡을 이어가며 생존하는 것을 넘어서 이 곳에서 안정적으로 터를 잡고 살기 위해선 전문적인 커리어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여기서 다시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야 하는데⏤캐나다에서 나이는 결코 중요치 않다곤 하지만⏤문제는 내 지구력이다.
내게 그 오랜 시간동안 동력을 잃지 않고 버틸 만한 의지가 있나? 그 정도의 돈과 시간을 투자할 만큼 캐나다에서 살고 싶나? 언어/환경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맨땅박치기로 인생 2막을 시작할 만큼? 아직까지 그만한 확신은 없다. 하여간 이건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게 한국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들일테지. 첫번째 미션: 살아남기에 성공하고 어찌저찌 잘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이상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것. 그래야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훨씬 넓어지니까. 그냥 앉아서 고민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모든 게 서툴지만 그래도 몇 개월 타지에서 살아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조류의 안이든 밖이든, 또다른 궤도를 개척하는 중이든, 언젠간 다시 바다거북 무리 속으로 돌아가야 하든, 내 인생의 무대가 한국이든 캐나다든, 어찌 됐건 나는 나.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 인생은 이리저리 휘청이면서도 결국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