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가? | 2023.11.15
요새 중학생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빠삐용>을 다시 읽는 중이다.
주인공 이브가 지구를 떠날 10만 명을 수용할 우주선에 대해서 밀폐생태학자 아드리앵과 함께 논의하는 장면에서 이런 대화가 나온다.
⌜10만명이요?⌟
⌜기체를 아주 크게 만들 겁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휴식 공간도 있을 거고요. 다닥다닥 붙어서 여행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사람들이 미쳐 버리고 말 겁니다. 통조림 통 안에서 천 년이라니! 어항 안에 들어 있는 선생님의 물고기들과 다름없는 신세가 되는 거죠. 훨씬 비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지내려면 지구를 떠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 프로젝트에는 약간의… 믿음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잘하면 1세대 탑승객 사이에는 <프로젝트에 대한 믿음>이 공유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다음 세대까지 전해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책장을 넘기다보니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내가 거대한 우주선 안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지구란 행성은 그저 윗 세대의 기억이나 시각자료로만 남아있을 테고 나의 세계는 우주선이 될 것이다. 더 넓은 공간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더 넓은 공간에 대한 욕심도 없을 것이다. 그보단 우주선 안의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겠지. 식량 배급이라거나, 구성원 간의 서열이라거나, 정치라거나…. 우주선 밖의 세상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거다.
영화 <설국열차>의 요나가 바로 그런 환경 속의 인물이다.
열차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열차 밖으로 나가겠단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조금 틀어서 이런 질문도 해본다. 만약에, 인류가 정말로 화성에 정착한다면? 지구 외의 또 다른 생명체 거주 가능 행성을 발견한다면? 무수히 많은 SF 영화에서 그리는 것처럼, 긴 시간이 흘러 지구 말고도 수많은 행성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다면?
그들에게 선조격이 될 나는 마치 <진격의 거인> 속 마을 사람들처럼, 평생 자신이 지구(혹은 열차, 혹은 섬, 혹은 우주선)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힌 채 살았던 줄도 모르고, 그 외의 가능성은 상상조차 못한 채로 살다 죽은 세대가 되겠지?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리적으론 지구와 열차, 우주선이지만 학문과 진리의 문제에서는 암흑 물질이라거나, 우주의 구조라거나, 나는 이름도 제대로 구사하기 힘든 우주론의 광대한 지식 전반이 되겠지. 인류는 내가 존재하는 그 몇십 년 사이에 어디까지 알아내게 될까? 우주의 진리를 깨우치지 못한 채 제한된 지식의 세계에서 고작 백 년도 안되게 살다 가는 나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 사람의 짧은 생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은 곧 이런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에 대한 종교적인 가치관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뭘 위해 사는 거냐고'?
동숲처럼 퀘스트 하나씩 깨고, 집 사고, 차 사고… 성공이라는 최종 퀘스트까지 가기 위해서?
루저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 언젠간 돈을 엄청나게 벌어서 "캬~ 이게 행복이지!" 하기 위해서?
먼 훗날 누군가에게 난 이렇게 살아왔노라고 이야길 들려주기 위해서 지금을 살아가는 건가?
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야되지? 한번 사는 인생이니까? 이건 말이 되는군.
얼마 전에 일본 워홀을 앞둔 친구 나연이랑 영상 통화를 하다가 (한 명은 먹방, 한 명은 머리 말리다가) 갑자기 우리의 앞길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했다. 내가 지금껏 고민해오던 것들을 공유하고 나연이의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얘길 나누다보면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뭉쳐져있던 생각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정리가 된다.
어학원에서 발표를 하다가 "That's why we need to talk to others."라고 결론을 지었던 적이 있다. 발표 주제였던 '가스라이팅'에 대항해 우리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었긴 하다만, 말하자면 결국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 서로의 가치에 대한 이야길 하고, 거기서 내가 택할 방식에 대한 힌트 얻기.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사람들 나름의 생각과 추가적인 질문들, 잠시 쉬어가는 결론을 발견하기.
칼라를 처음 만났던 수업 시간에 걔가 난데없이 물어왔던 게 기억난다. 네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각자의 가치관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캐나다에 막 도착한 새내기였고, 그런 거 고민하고 있지 않았다.
"글쎄….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
라고 막 던졌었는데… 그게 작년 10월이었고, 지금은 해가 바뀌어 어느덧 1월. 이제 나는 그 당시 칼라랑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우리는 뭘 위해 살아야 하나?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난 백 살로 죽었는데, 죽기 바로 직전 도라에몽이 나타나 스물다섯 살의 너로 되돌려 주겠다고 한 거라면? 이 두 번째 삶,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 이미 한번 살아봤고, 이건 스페어 라이프니까. 망해도 괜찮지 뭐. 인생에 몇 안되는 후회되는 순간들의 기로에서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다. 놓친 인연 잡아보기 뭐 이런 거. 백 살의 눈으로 보면 지금의 고통이 가소로워진다고.
이런저런 고민들 때문일까, 요새는 남의 인생을 읽는 게 재밌다. 이십대 중반에 1억 모은 썰 이런 거 말고, 인생의 이런저런 굴곡을 거쳐간 사람들이 남긴 글이 그런 것이다. 나와 비슷한 가닥의 고민을 했던 이들의 생각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않을까 싶다.
얼마 전에 읽은 <지지 않는다는 말>이란 책에서 저자가 몇 번을 반복해 강조하는 가치는 이런 것들이다⏤'이 순간을 경험하는 것',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내는 것'. 그러니까 온종일 집안에만 있기에는 이 시간들이 너무 아깝다는 거.
“달리고 싶지 않아서 달리지 않은 건 언제가 마지막인가?”
지금까지의 삶 전체가 달리고 싶지 않아서 달리지 않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축하한다. 그렇다면 자기 의지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달리고 싶을 때 달리기만 하면 된다. 조만간 날씨가 풀리고 기온이 올라가면 나무에는 꽃이 피고 잎이 돋아날 것이다. 태양은 점점 일찍, 더 높게 떠오를 것이다. 바람은 따뜻하게 우리 몸을 감쌀 것이다. 그런 어느 날이면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고 온몸으로 바람을 맞다가 문득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달리고 싶지 않아서 달리지 않은 삶을 성공적으로 살았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달려 보기를.
칼라, 인생의 목표가 뭐냐는 너의 질문에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도 찾지 못했다. 아마 앞으로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일단 살자. 인생은 그 답을 찾는 저마다의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