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은 | 밴쿠버 일기장

2023.9.28 일기

by 가가


'차별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걸까?

상대의 피부색이 무엇이든, 눈코입이 어떻게 생겼든, 무슨 옷을 입고 있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1977년, 캐나다 인권법이 제정되었다. 캐나다 최초의 인권법이자 차별금지법이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50년이 다 되어가도록 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은 즉 ‘차별하지 않는 것’이 마치 사람을 때리지 않는 것, 도둑질하지 않는 것처럼 굳이 힘을 들여 지키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대중의 의식 속에 녹아들어 있는 태도라는 말일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로서의 캐나다는 어떨까? 한국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외적인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한다. 애초에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긴 탓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만 모나거나 조금만 튀어도 쉽게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되며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그게 무례한 거란 사실조차 깨닫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대중적이고 큰 흐름에 자신을 맞추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진로나 학업은 말할 것도 없고, 피부톤에 대한 집착, 주름, 지방, 내 모든 신체를 픽셀 단위로 조각 내어 평가하고, 개선시키려 노력하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몸조차 잠식해버린다.


하지만 인종이 다양해지는 순간부터 한국인의 외형 특징, 한국인의 미모의 기준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동양인은 동양인대로, 서양인은 서양인대로, 흑인 동양인 백인 다 다르게 생겼는데 누구의 기준으로 외모를 나누고 판단한단 말인가? (물론 미디어 산업구조상 여전히 백인 기준의 미적 가치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그 이야긴 잠시 제쳐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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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에 정착한지 벌써 몇 주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느끼고 있는 것이 그런 것들이다.


여기선 당장 다운타운만 나가봐도 사람들의 생김새가 너무 다양하고 희한한 사람도 너무너무 많아서, 이것도 적응이 되니 이제는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든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은 더 이상 나의 관심을 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여기선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한국처럼 ‘의식적으로 포용하는 것’과는 아예 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비단 외적인 것을 넘어서 한국식 성공의 기준이라던지 하는 한국의 정서적 가치들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룸메랑 거실에서 콜라를 한 캔씩 까놓고 두런두런 이야기했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가가 님은 모험형이세요? 안정 추구형이세요?

한국에선 안정 추구해야죠. 근데 캐나다까지와서 안정 추구하는 건 진짜 바보짓이에요.
한국은 국가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으니까 젊었을 때부터 내가 나를 책임지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되잖아요.

근데 여기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나라가 나를 책임져주거든요.
그러니까 굳이 안정을 추구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거 미련없이 해보고, 여유롭게 느긋하게 살고...
굳이 다른 사람들이랑 경쟁 안해도 되고.

여기 사람들 정치 하나도 몰라요. 캐나다 정치인보다 미국 대통령에 더 관심이 많을걸요.



아 캐내디언 부럽네.


내가 더 넓은 세상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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