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원했던 꿈은 이뤄진다. 근데 꿈이 다소 소인배인

워홀 2년 6개월차 일기

by 가가

마지막 글이 작년에 써놨던 토막글을 옮겨 쓴 거였는데 그 뒤로 또 1년이란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버렸다.


23년 9월부터 26년 3월까지, 세 번의 겨울을 막 넘긴 지금 시점에서 나의 좌충우돌 워홀 기행의 중간 정리를 한 번 해보려 한다.






간절하게 원했던 꿈들은 결국 하나씩 이뤄진다는 말이 요새 자주 떠오른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서, 상상하는 것들은 언젠간 현실로 다가와줄 거라는 이야기. 내 인생은 과거의 내가 그려온 꿈의 크기만큼 커진다는 그 말을... 너무 작은 꿈을 꾼 뒤에 알게 된 게 아닌지.


작년 말에 우연히 워홀 초반에 쓴 메모를 봤는데, 내가 캐나다에서 해보고 싶다고 써놓은 것들을 하나 빼고 다 이뤘다.


친구들과 해변 피크닉 가기, 하우스 파티 초대 받기, 클럽에서 밤새 놀아보기 (진성 너드인 게 티나는 부분), 분기별로 클래식 콘서트 가기, 동부 여행가기, 누군가와 평화로운 낮잠자기, 가정집에서 티타임 가지기, 오피스잡에서 일해보기, 외국인 남친 사귀기 등등. 딱 하나 못 이룬 건 혼자 여행 가기 였는데, 언젠간 한번 도전해봐야지 싶다.






각설하고, 지난 2년의 시간을 대충 훑어보자면...


2024년 1월. 어학원을 졸업하자마자 통장이 텅장이 됐다. 일주일 간의 레쥬메 드롭 기간을 거쳐 나의 드림잡,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에 덜컥 취업.


워홀러들의 로망답게, 카페에서 일하고는 싶었으나 아주 로컬로 가기엔 겁이 났었는데, 마침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어 손님 90%가 로컬인, 한국 브랜드 베이커리 카페에서 일하게 됐다.





안그래도 껌껌하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겨울날에 따끈한 빵 냄새 맡으면서 커피를 내리는 일상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당시 일기에서 발췌해보자면:


2024/02/10

제목: 베이커리에서 일하게 되다니~ 초럭키

커피 만드는 것도 재밌고 빵 진열하고 파는 것도 재밌음
단순 반복 노동이 아니라 은근 신경쓸 게 많아서 일도 안질리고 (아직까지는)
계속 빵 냄새 커피 냄새 맡으면서 일하는 것도 좋고
이제 슬슬 단골손님 생기는 것도 좋고
청소는 좀 힘들지만… 2월은 마감도 주에 한번 뿐이라 럭키~
도넛이랑 케이크 예쁘게 진열해놓고 파는 것도 좋고
로컬 손님들이 와서 디저트 구경하면서 감탄하는 거 보면 뿌듯함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도넛 하나씩 담아줄 때도 완전 쾌감 지려~
빵집 타이쿤 하는 것 같음



단골 리스트를 차곡차곡 쌓아가며, 사람 대하는 스킬도 거기서 많이 늘었다. 그 상태로 1년 순삭. 직원들과도 모두 친해져서 함께 사계절을 한 바퀴 보내고 나니 어느새 두번째 겨울이 와있었다.


이대론 안되~!!! 라는 생각으로 딱 입사 365일 채우던 날에 무작정 퇴사. 이젠 카페가 내 comfort zone이다 못해 안방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에 우선 사직서부터 내버렸다.


그리고 몰아친 2025년 초 겨울.


잠시 방황을 하며...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자 애쓴 시간이 한 달 반 정도 있었는데 그 때가 내 짧은 해외살이 중에서도 멘탈이 가장 바닥이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정작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니 너무 어렵고 그동안 뭘했나 싶고 멘탈이 흔들흔들... 암튼 이래저래 힘들었는데 결국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젠 다 지나간 일이라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도 않고, 이런 적도 있었지 하는 우여곡절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또 글로 써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시 화창한 봄.


이제 뭐하지? 이제 정말로 뭐라도 해야할 시점에 덜컥, 큰 생각없이 지원했던 영사관의 임시 행정직에 붙었다. 그때가 막 대통령 선거를 급하게 진행할 때쯤이라서, 3개월 정도 영사관 밥을 먹으며 너무 재미있게 일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연이어 개최된 G7 정상회담을 보조하러 캘거리까지 날아갔다온 건 지금 생각해도 진기명기한 경험. (호텔 헤드쿼터에 박혀 20시간 정도 일하고, 대통령님과 셀카도 찍음)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때의 경험이 좋게 작용해 지금의 직장도 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카페에서 일할 때는 오피스잡이 부러웠는데 어쩌다보니 영사관에서 일하게 됐고. (호기롭게 지원한 사무직 면접에 광탈하고 나서, 친구와 다운타운을 걸어다니면서 "이렇게 사무실이 많은데 우리를 써주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이런 한탄을 했던 게 기억난다.)


영사관에서 만난 Y라는 친구는 이민공사에서 일하면서, 그 길로 영주권까지 직행한 케이스였다. 그게 너무 멋있어 보여 나도 그처럼 전문성이 있는 사무직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내 전공과 관련된 업종에서 팀장까지 맡게 됐다. (이건 정말 내 계획에 없었던 일. 이 사건에 대해서도 나중에 써볼 예정.)


한국을 떠나오면서 “거기 가서 뭐할 거야?” 라는 질문에 막연하게 이런 데서 일해보고 싶다고 대답했던 회사 중 한 곳이 지금의 내 직장인데, 모로 가도, 좀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 하고 싶다고 말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이렇게 모든 일이 우연을 가장하여 내가 원하던 대로 흘러갈 때마다 좀 아쉬운 점은, 터무니 없더라도 좀 큰 꿈을 꿨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내 고질적인 문제점은 실패하는 게 무서워서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라, 이제와서는 그 겁쟁이스러웠던 면모가 가장 후회가 된다.


아니면 '물들노젓이 아니라. 노를 먼저 젓고 있어야 물이 들어올 때 치고 나갈 수 있다' 하는 누군가의 명언처럼, 어찌됐던 막연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정해져 있었기에 ‘기회가 왔을 때 민첩하게 잡기’가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은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바로 길었던 솔로 기간을 청산하고 무려 캐나다에서, 내가 그리던 것 같은 파트너를 만나게 된 것.


'그리던 것 같다'는 말은 외적인 면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내가 n년 전 메모장에 써두었던 나의 이상형 목록에 부합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게 무슨 cringe한 짓인가 싶지만, 당시에 한 유튜버가 "이상형을 노트북에 적어보세요. 아주아주 구체적으로요. 그럼 언젠가는 꼭 그런 사람을 만나게 돼요. 제가 보장합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한번 속는 셈 치고 해보자 적어놨던 것이다.






한 달 전쯤... 지금 직장 때문에 한참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내가 해보고 싶던 일이라고 했지 일해보니 좋다고는 안했음) 남자친구가 너는 객관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으며, 심지어 잘 해내고 있으니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며 반은 북돋움, 반은 타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인 것이다.





이렇게 글로써 과거를 반추해보니 확실히 내 삶은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


설사 내가 계획한 방향이 아닐지라도, 어쩔 때는 행운이 함께 하며 어쩔 때는 고비가 닥치더라도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며 안정화된다. 지금 당장은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날은 열불이 나 속으로 다 죽자... 를 연발하게 되지만, 이 모든 것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다.


1년 전에 하던 고민을 더 이상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또 1년이 지나고 보면 그땐 내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있을지, 어디서 뭘 하고 살고 있을지 기대되고 설렌다. (죽으란 법은 없으니깐. 어떻게든 어떤 모습으로든 살고 있을 것이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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