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미아리 교회
# 아빠를 만나다
준식이는 아빠의 얼굴을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가족을 그려야 하는 미술시간이 어린나이에도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이 모두 손을 잡고있어야 하는건지 아빠의 얼굴은 웃고 있어야 하는지 가끔 짝꿍이 그린 가족 그림을 흉내내곤했다
국민학교 4학년때 처음으로 보온밥통에 도시락을 싸가게 되었다.3학년때까진 오전수업만 했었는데 4학년부터는 오후수업이 있어 점심시간에 먹을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준식이는 소풍가듯 설레이는 마음으로 까만색 도시락 가방을 들고 몸시도 뿌듯해하며 짝꿍 김윤희와 1년보다도 긴 오전 수업을 들었다.
검은콩자반과 멸치 볶음. 따듯한 된장국이 들어 있는 도시락통이었다. 쏘세지에 캐찹을 바란건 어린 마음에도 사치인걸 금새 깨달았다.
반장 녀석에겐 쏘세지는 여러 반찬중에 하나였는데 하며 부러워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준식이의 밥통도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맛나게 비웠다.
처음 도시락을 싸 갔던 그날이 아마도 준식이가 선명하게 아빠의 얼굴을 본 날이었다.
검은 피부와 내 얼굴을 덮고도 남을 큼지막한 거친 손바닥 조금은 벗겨진 앞이마 넓은 등판과 다부진 몸통.
처음 학교에 도시락을 싸간날.
콩자반과 멸치와 된장국이 들어 있었고
쏘세지 반찬을 맛있게 먹던 반장 녀석이 부러웠던 그 날
아빠는 매일 같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사람인듯
두꺼비 그림이 그려진 소주 반주에 식사를하고 있었다.
동네골목에서 또래 친구들과 오징어게임을 한바탕 하고 집에 돌아온터라 준식이는 꽤제제한 몰골이었다.
오랜만에 본 아빠에게 인사를 해야할지 따져 물어야 할지 몰랐다. 안겨보고 안아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으흠.. 밥무라"
까마득한 날에 들었던 아빠. 아버지의 목소리...밥을 청하던 그 음성을 뒤로 하고 준식이는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와 버렸다.
기억속에 잔상으로만 남았던 아빠를 본 순간 어찌 할바를 모르고 골목으로 뛰쳐 나갔다.
몇몇 친구들이 밥을 먹고 나온건지 여태 놀고 있었던건지
얼음땡 놀이를 하고있었다.
아빠는 왜 온건지 앞으로 계속 있으실까하는 생각을하며 얼음땡 놀이에 빠져 뛰어다니는 친구들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준식이 니 밥 안먹고 뭐하노? 얼릉가 밥 묵자"
따뜻한 엄마 손을 잡고 가던 초저녁날. 그 짦은 거리를 걸어가며 이번에 아빠를 보면 품안에 안겨보리라 준식이는 다짐했다. 아빠에게 안기는 일이 다짐해가며 해야 될일인지 매주 아빠랑 손잡고 목욕탕을 가고 아빠가 사주는 바나나 우유를 마시고 오는 정문이 녀석에겐 상상도 안 할 일이었다
집에 도착했을땐 아까 눈이 마주쳤던 소주병에 두꺼비 녀석들 두마리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아빠. 아버지는 없었다. 아마 원래 없었나 보다.
뿌옇게 흩뿌려진 아빠의 기억은 늘 신화처럼 그 기억들 사이에 있었고 오늘의 아빠도 하얗게 띄워져있었다.
"아빠는 갔다 어여 밥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