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낀 직급'의 역지사지

by 권도연

4일간의 짧은 연휴가 끝났다.

누가 우릴 보고 음력설을 쇠는 민족이라 했던가. 토, 일을 제외한 단 이틀 간의 '설날'은 하루 해도 정말 짧았다.

하지만 설날을 더욱 짧게 만든 건 이른바 '대목' 시즌을 맞이한 회사 카톡이다.




없는 것 없는 무도짤



일명 '팀 단톡 방'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카톡 카톡 카톡 까가가가가톡




"그것 좀 진동으로 바꾸면 안 돼?"


급기야 남편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노니? 구정에도 일하는 마누라 불쌍하지도 않냐."

"아니, 불쌍한데.. 그것 좀 진동으로 해놓으면 안 되냐고. 진동으로 해놔도 카톡 오면 알잖아."

"놓칠까 봐 그러지. 소리라도 나면 금방 알지만 진동은 와도 잘 모르잖아. "

"놓치면 어때. 1시간 늦게 본다고 일이 안된다든? 왜 이렇게 노예근성이야~"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연휴의 일처리는 1분 1초, 시급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었다.

아니 설마 그랬다 하더라도, 법적으로 보장되어있는 '빨간 날' 아닌가 말이다.

나는 노동 3 법의 보호를 받는 근로자이자, 개인의 삶과 선택을 중요시 하는 자유주의 국가의 일원이다!


그래서 바로 알림 모드를 진동으로 바꿔놓았다.


드르르륵. 득득득 드드듣드드드드드드득


몸으로 소리 내기 시전 하시는 갤럭시폰님.

그래도 나는. 굴복하지 않고,

확인하지 않을 것이었다!


10초가 지났다.

30초,, 1분.. 2분...


안 보고 있는 게 더 초조했다. 죄지은 사람처럼 심장이 쿵쾅거린다. 눈은 다른 델 보고 있으나 신경은 온통 폰에 쏠렸다.


참는다. 참을 거다. 좀 이따가 볼 거다.


그러곤 속으로 상상했다.



'1'이 지워지지 않는 카톡을 보며 아 지금은 연휴지! 하며 급 깨달음을 얻는 상사의 얼굴을.

육아 중에 엄청 바쁘겠구나... 내가 지금 한 가정을 파탄내고 아이와 부모의 스킨십을 방해하는 것일 수도 있어! 하는 상사의 반성을.



기분 좋은 상상. 출처 : https://m.blog.daum.net/haru2117/73


하지만 새가슴에, InFJ, 쫄보는 5분을 넘기지 못했다.

카톡을 열었다.

14. (읽지 않은 카톡 14개)

뭘 이렇게 많이 보냈나 싶어 열어보니 문장이 아닌 단어 단어 '끊어쳐 보내기' 기술을 선보인 상사 카톡이다.


그때서야 나는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아주 편안히 대답했다.


"네, 월요일에 처리하겠습니다."







연휴의 마지막 날.

또 카톡이 왔다. 이번엔 타 부서 연락이다.

업무 협조차 자료를 요구하는데 마침 그 파일이 다운로드 기간이 만료되어 열리질 않는 거다.

문득, 그 파일을 작업한 후배가 생각났다. 파일 원본이 그에게는 있을 것 같았다. 카톡을 열었다. 아주 잠깐 망설였다...


"00님, 혹시 *** 파일 노트북에 있음? 있음 나 공유 부탁."


기다렸다 그의 답을.

1분이 지나고, 5분, 10분, 15분이 되도록 핸드폰을 들여다봤지만 '1'은 지워지지 않았다.

답답했다. 몇 번이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췄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면서 중얼대는데 남편이 그런다.



"뭐 군기가 빠졌다고?"

"내가?"☆

"그래, 지금 네가 그랬어. 자식이 군기가 빠졌네. 자기 입에서 군기 타령이라니. 완전 충격이네."


휴식을 방해하는 상사의 카톡에 일부러 늦게 읽기 기술까지 시전 해놓고, 후배한테는 카톡 늦게 읽는다고 기강 해이 어쩌고를 했다는 거다. 내가.


선배보다 후배가 많은 직급이 되면서 나도 변한 것이었다 그들처럼. 욕하면서 배운다더니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해야 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상사이기도, 부하직원이기도 한 내 처지다.

직장생활의 기본이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팀장인 나는 상사의 처지도 생각해야 했고,

후배의 처지에서도 생각해야 했다.



'낀 직급'의 사회생활은

이래서 피곤한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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