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잘 혼내는 상사

feat. 직장 내 괴롭힘

by 권도연

후배들이 큰 실수를 할 때면 처음엔 화가 난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업무에 대한 질책이 후배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분풀이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말을 고르고, 곱씹고, 고민한다.

틀린 부분을 어떻게 교정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되 잔소리로 느끼지 않게 말하는 스타일도 고민한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후배가 큰 실수를 했다.

거래처 10곳에 엉뚱한 첨부파일을 보낸 것이었다.

파일을 받은 담당자들로 인해 출근도 하기 전에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앞뒤로 꽉꽉 들어찬 지옥철을 비집고 내려 간이 의자에 앉아 수습하고 돌아서는데 화가 나는 거다.


진짜 뒷골이 당긴다...



하지만 걷는 내내 생각했다.

감정을 드러내진 말자고. 이미 그 녀석도 자기 잘못을 알고 있을 텐데 실수 교정만 해주자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상대로 후배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럴 땐 선배인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담부턴 메일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체크하자."

"네."


어랏 죄송하다고 안 하네.


"체크를 못했으면 나중에라도 보낸 메일함을 열어서 파일이 제대로 들어갔나 확인하세요."

"네."


후배의 짧은 대답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도 인간인지라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 놓고 또 노심초사다.


너무 단호하게 말했나.

괜찮겠지?


속으로 몇 번이고 되물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의 톤과 억양, 뉘앙스를 검열하는 건 어떤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나는,

직장 내 괴롭힘의 당사자이자

언어폭력의 피해자였다.






육아휴직에서 복귀하자마자 나는 지금까지의 경력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그것도 사내에서 '미친#', '돌아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그가 있는 곳이었다.


처음엔 믿었다, 나는 예외일 것이라고.

그에게 잘하면, 최선을 다하면 남들한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는 말이 많은 스타일이었다.

나는 말없이 앉아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가 말을 했다.

나는 듣지 못했다.


그러자 그가 소리쳤다.


"너 나 무시해?!!!!"


그게 시작이었다.


그는 매일매일 소리를 질렀다. 사무실에서, 복도에서 떠나가란 듯이 쌍욕을 퍼부었다.

퇴근을 해서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맴 돌았다. 매일매일 그가 나오는 악몽을 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 생각을 했다.



그는 상사에겐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사과에 찾아갔다. 믿을만한 선배에게 비밀보장을 약속받고 털어놓았다. 부끄럽게도 눈물을 쏟았다. '눈물은 여자의 무기', 이딴 말이 싫어 울지 않겠다는 처음의 다짐이 그때 무너졌다.


선배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분을 참지 못하는 나를 가만히 지켜봤다. 그리곤 나지막이 말했다.


"도와줄게."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다른 부서로 이동했다. 운이 좋게도 당시 인력 충원이 필요한 부서가 있었고, 나의 인사 이동은 '요청에 의한' 것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는, 다른 후배에게 폭언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너무도 무탈하다. 누군가는 또, 퇴사를 결심하고 잠을 못이루겠지만 그는 너무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가끔 회사 복도에서 그를 마주친다.

저 멀리 그의 실루엣이 보이면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친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면 고개를 돌린다.

직급이 낮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회사가 괴로운 것은, 마음에 드는 사람 하고만 지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그를 멋지게 비웃으며 탈출할 날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계속 상상한다. 상상만 한다.

직장인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



계급장 떼고 그에게 소리치는 상상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데 후배가 다가왔다.


"뭐 도와드릴 거 있을까요."


눈빛에 미안함과 장난기를 가득 담은 채다.

역시 넉살 좋은 녀석이다.


잘해보자 좀!!!


괜히 민망해져 소리를 질렀다.


난 상사 복은 없어도 후배 복은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상처 주지 않고 지적하는' 방법

'감정을 넣지 않고 혼을 내는' 방법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방법


팀장보다는 팀원이 익숙한 나는

이 모든 것이 너무 어렵기만 하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강해지되 무례하지 않고 친절하되 약하지 않으며 담대하되 남을 괴롭히지 않고 유머를 갖되 어리석지 않아야 한다.” – 짐 론 -



뭐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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