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회사는 기싸움의 연속

by 권도연

중간 관리자가 되면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일을 맡게 된다.


그것은 일명 기싸움.

공식적인 용어로는 업무 협조

비공식적인 용어로는 업무 가르마 타기

더 비공식적인 용어로는 핑퐁 게임.


회사 일이란 게

이건 마케팅 업무

이건 데이터분석팀 업무

이건 기획실 업무

하고 나뉘면 편하겠다마는


남의 돈을 받는 이 돈 안 되는 머리 노동의 대부분은

경계도 불명확, 책임소재도 희미하다.

여기에 지시하는 사람의 의도까지 불명확하면

이건 뭐 뒷 목 잡아야 함.





부서의 장이

대표의 지시로 불려 가 일감을 그득히 받아왔다.


나는 대번에 (평소 성격대로) 물었다.


이거 저희일 아니잖아요.


하지만 인정 욕구에 목마르고 펜 한 번 잡지 않는 나으 상사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응수한다.


여기에 니 일 내 일이 어딨노.



있지요 왜 없나요.

내 손이 하면 내 일

니 손이 안 하면 그것도 내 일.

그니까 니 일이 다 내 일이에요.





더블 모니터 가득히 펼쳐진 숫자들과 글자들을 마주하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머릿속을 정리하기 전에 우선 키보드부터 두드리고 보는 업무 스타일의 나는,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결론을 쓰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는 중이다.


결국 빈 공간을 남기고

이제 좀 허리를 펴 볼까 일어나는데

전화가 울린다.


일 하나가 끝나면 일 하나가 추가되는

무한루프 콤파니(company) 매직.


"어~ 김팀자앙~ 나 마케팅팀의 박 팀장인데요~ 거... 그 소비자 분석한 자료 있죠? 그것 좀 정리해서 건네받으라고 우리 부서장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럼

바로 난 파블로의 개처럼 방어본능이 발동하지.


"저 들은 바 없는데요."


그러자 박 팀장 웃으며 응수한다.


"거... 말했다던대."

"것보다 팀장님. 저희 그 자료 없어요."

"쓰읍.. 거..있다던대."


상사를 파는 넘한텐 상사를 팔아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저희 자료 외부 반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누가요?"

"누구긴요. 저희 부서장님요."

"..."

"요청하시려면 공식적인 절차를 밟던가 아님 기획팀에 말씀하셔야 할 듯해요."


말로 방어하기


그렇다.

난 이미 박팀장의 행간을 읽은 것이었다.

이건 순전히 짬밥으로 얻은 감이다, 감.


이 능글맞은 박 팀장 같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필요한 자료가 생기면

상사의 권위를 이용해 정보를 얻어내려 한다. 그의 레이더망에는 나 같은 수줍음 많고 순해 보이고 자알 구슬리면 턱 하니 고기라도 몇 점 얹어줄 것 같은 '만만한' 사람이 잡히게 마련.

그때 레이더 망에 떠다니는

상사, 명령, 지시라는 단어가 들어간,

먹으면 죽고 안 먹으면 더 죽을 거 같은 무서운 떡밥을 물면 그 길로 죽는 거다. 일하다 과로로 죽든가, 위장병에 속 쓰려 죽든가.


그러니 그 떡밥을

한 두 번 주둥이로 툭툭 건드려봐야 한다.

이거 먹을만한가 아닌가.

먹을 수 있는가 아닌가.

그것도 아니면 난 먹지 않을 용기나 빽이 있는가.

것도 아니면 실력.






점심을 먹고 배를 두드리며 들어오는

나으 상사님을 찾아갔다.


"시키신 일 중간 보고 드리겠습니다... (보고 후) 아 아까 마케팅팀에서 00 자료 요청하길래 보안 문제로 어렵다 얘기했습니다. 중요 자료는 아니지만 혹시 잘못 나갔다가 부서장님 곤란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박팀장의 떡밥은 아무도 모르게

물에 떠내려갔다...





직장에서 일만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한 명 이상의 인간이 모인 곳에서

신경쓰고 머리 굴려야 할 일

너무 많다.

매일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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