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올해로서 직장 생활 11년 차가 되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유난히도 직장 속 타인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상사 복 없는 사람'
'후배 복 없는 사람'
인사철마다 나에게 따라붙던 말들에 이제는 익숙해질 지경까지 되었다.
심지어 나는 승진 평가에서도 사내에서 유명한 빌런 덕분에 평가 점수 '0'점 이라는 대 진기록을 세우기까지했다. 그는 고작 한 달 동안 나의 사수였는데, 하필 인사팀의 사수가 그에게 평가지를 보냈고, 또 하필 그는 기분이 나쁘던 시기에 화풀이 대상을 찾다가 내 평가지를 발견하고서는 칼춤을 추듯 최하위 점수 칸에 엑스 자를 그려넣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책임을 떠 넘기는 상사 밑에서 잘못을 덮어 쓰기도 했고
발 뺌하는 후배 옆에서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기도 했다.
나는 그저 그들을 배려했고, 잘 지내려 노력했으며,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을 뿐이었다.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때서야 나는 나의 전공을 떠올렸다.
"Von nun an werden Sie eine andere Sicht auf die Menschen haben."
2004년, 독일 Bochum 대학에서 사회 심리학을 강의하던 교수가 심리학 전공생들을 보며 한 말은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뜻이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에게는 사람을 보는 다른 관점이 생길 거야."
무슨 제3의 눈이 생기는.. 뭐 그런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 넘치도록 흐르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남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처음 대학교에 원서를 쓸 당시, 사회과학부를 선택하면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겠노라 다짐했지만
결국 나의 전공이 심리학이 된 것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심리학도 2학년이었을 때 나는, 심리학을 '철학의 한 부분'으로만 생각했다.
심리학도 3학년이었을 때 나는, 심리학을 '인간의 태생이나 기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심리학도 독일 교환학생이었을 때 나는, 심리학을 '인간의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심리학도 4학년 졸업반이던 나는, 심리학에 대한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리며 졸업 논문을 썼다.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학문'이었다.
내가 어떤 인간이고, 상대가 어떤 인간인지를 파악해 상대가 공격하면 방어하고, 상대를 이겨야 한다면 공격의 방법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것이었다.
나침반을 꺼내 내가 서 있는 위치와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에서 나를 가장 숨막히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일도, 시스템도 아닌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울기만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분노했다. 그랬더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상대의 행동 하나 하나, 말투 하나 하나에 심장과 근육들이 반응했다.
24시간 중 수면 시간을 제외한 절반 이상의 '나의 삶'을,
원하지 않는, (심지어 싫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말을 섞고, 밥을 먹고, 숨을 쉬어야 한다는 자체가 나에겐 곤욕이었다.
선택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적응해야했다.
그 때부터 나는 이 '오피스의 사람'들을 분석했다.
특히 팀원 전체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팀의 환경 분위기 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했다. 무려 입사한 지 10년이나 지나서야 내 주머니에 있던 나침반의 존재가치를 깨달은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이해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도 알고 보면 그저 불쌍한 사람일 뿐이라고 억지스런 긍정의 힘을 믿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이해하면 문제 상황을 마주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옛 선인들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적은 알아야 피할 수 있다.
모르면, 당한다.
타인에 대한 공부는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무기였다.
또라이 혹은 이상한 사람, 어려운 사람, 불편한 사람이라 칭해지는 그들을 피할 수 없다면, 그들 스스로가 변화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는 관점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옳았다. 이는 관계의 어긋남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한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들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참지 않는다. 화나 분노, 억울함을 내뱉기 전에 아니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는 나의 내면 속 '피해의식'부터 버렸다.
버리는 방법은 간단했다.
'저 인간에게는 저 인간만의 사정이 있다'
'이해'가 아니다. 저들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은 게 아니라 그저 내 눈 앞에 사정이 있는 인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의 내면 속에는 피해의식이 아닌, 무력감이 아닌 '그러거나말거나'의 정신이 피어오른다. 내 관점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상처도 없었다.
그것이 내가 배운 사회생활이었다.
여의도동 1번지 이곳에서 배운 정치이기도 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