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런 퇴치법(2)

by 권도연

<출처: 권력의 원리의미 중, 줄리 마틸라나, 티치아나 카시아로>


즉, 힘의 재조정으로 힘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는

- 내가 가진 자원의 가치를 높여 상대방의 눈에 들도록 하고(유인 attraction)


-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줄여버리며(통합 consolidation)


- 그 사람의 대체제를 찾으며(확대 expansion)


- 상대에 대한 관심 및 중요도를 내 선에서 깨끗이 정리하는 것(철회 withdrawal)이다.







태윤은 늦은 저녁 여의도의 유명 일식집을 찾았다. 약속 시간보다 일부러 2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그만큼 태윤에게는 오늘 자리가 매우 중요했다.


친소 관계가 그리 깊지 않은 선배에게 자신의 고민을 어떻게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털어놓아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무작정 도와달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전후 사정을 다 설명할지. 태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어쩌면 오늘이 앞으로 태윤의 직장 생활의 미래를 결정하는 날이 될 수도 있었다.


"어 안녕!"


10년 전보다 더 화려해지고 밝아진 선배가

태윤 앞에 섰다.


김민지.


고등학교 선배이자 방송반 동아리 선배.

언론고시 실패 후 어렵사리 입사한 지금의 회사에서 태윤은 민지를 만났다. 당시 민지는 국회 대관 업무 담당자였고 태윤은 늦깎이 직원이었다.

선후배 대면식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태윤은 사람 좋고 일 잘하는 민지가 좋았고 민지는 수줍어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깍듯한 태윤이 좋았다.

둘은 동창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나 달리기라는 공통 취미를 발견하며 더 가까워졌다. 둘은 아주 자주 맥주를 마셨고 아주 자주 한강변을 뛰었다. 부동산 광풍이 불 땐 같이 머리를 맞대고 임장도 갔다.



당시 태윤은 입사동기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민지는 그런 태윤의 고민을 알아봐 주고 연애 상담을 해줬다.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태윤은, 강하고 단단해 보이는 민지가 마냥 부럽고 좋았다.


태윤은 결혼을 했고, 쌍둥이 아이를 낳았다. 태윤이 밤낮으로 육아에 빠져 저녁 모임에 소홀한 동안 민지와의 관계도 멀어졌다. 그러나 어느 날 건너 듣게 된 소식은 놀라웠다. 늘 자기 계발에 충실했던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독한 마음으로 행정고시에 뛰어들었고 그 이듬해에 아주 훌륭한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감사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너 이 자식. 애 아빠 됐다고 연락도 없더니. 아주 섭섭했어!!!"


민지는 장난스럽게 눈을 흘기며 태윤에게 웃어 보였다.

그 바람에 잔뜩 긴장했던 태윤의 어깨가 스르륵 풀렸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태윤의 가슴에 따뜻하게 스쳤다.



"그래, 그냥 보고 싶어서 만나자는 건 아닐 테고. 뭐야. 뭘 도와주면 돼?"



눈치가 빠른 민지였다.

다짜고짜 도와주겠다니. 태윤은 그런 민지를 말없이 바라봤다.


"미안해요 선배."

"뭔데? 너 고민 있지. 너 심각할 때마다 생기는 주름이 있는데 그거 정말 깊다야. 뭔데. 뭘 해주면 되는데?"


민지는 소위 마당발로 유명했다. 남초 분야였던 대관 업무에 발탁된 것도 그녀의 사교성 덕분이었다. 민지는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국회 보좌관들과 어울렸다. 심지어 어느 한 국회의원은 민지에게 보좌관 자리를 제안하기까지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그녀를 통하기만 하면 청와대에도 닿는다는 말까지 돌았다.



태윤이 팀장의 갖은 구박과 괴롭힘의 돌파구로 민지를 떠올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혹시 선배. **사로 아시는 분 있어요?"

"거기? 있지. 왜."

"저 그 분하고 자리 좀 만들어주실 수 있어요?"

"뭐가 필요한데?"

"인맥이요. 선배의 인맥."



태윤은 그간 있었던 팀장의 횡포를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의 고압적인 태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가스 라이팅, 갖은 욕설과 군기잡기식 명령 등. 그리고 팀장이 **사로 이직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도 말했다.



"그런 사람이면 이직이 쉽지 않겠는데."

"평판 조사할 거잖아요. 근데 들어보니 그쪽 관계자랑 이미 입을 맞췄다는 거 같아요."

"음.. 인사 결정권자의 귀에 그 인간의 실체가 들어가는 게 중요하겠구나."

"네. 그것보다 전요 선배. 그 사람이 이직하냐 못하냐 하는 건 제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제가.. 그 인간의 인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시그널만이라도 주고 싶어요. 절 함부로 대하면 안 되는 사람이란 걸 알려 주고 싶어요. "






태윤은 그날 이후 민지를 따라 **사의 임원들과 몇 차례 어울렸다. 그들과 함께 골프를 치고 밥을 먹었다.

민지는 태윤을 능력 있는 후배로 소개했다.

임원들은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태윤을 좋아했다.

태윤은 그들에게 최신 부동산 정보를 알려주었다. 데이터 분석가답게 취미처럼 모아 둔 각종 정보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며칠 후 태윤은 보란 듯 카톡 프로필을 바꿨다.

푸르른 잔디 위에서 골프채에 기대 환하게 웃는 태윤 그리고 임원들의 사진이 태윤의 카톡에 걸렸다.


평생 카톡 프로필에 싱거운 나무 사진이나 바다 사진만 걸려있던 태윤의 메인이 바뀐 것이었다. 타인에게 관심 많고 인정이 고픈 태윤의 팀장에게는 그것이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요즘 골프 치나 봐?!"


오전 회의가 끝나고 나가려는데 팀장이 태윤을 불러 세웠다.

태윤은 속으로 외쳤다. 입질이다!



"네. 가끔요."

"거기.. **사 상무님 하고는 어떻게 알아?"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거야.... 아니. 그냥. 알지 뭐. 우리 업계에 그분 모르는 사람이 있나."


태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시큰둥하게 웃어 보였다.

팀장은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

한참을 망설이던 팀장이 조심스럽게 태윤에게 다가왔다.




"저기 오늘 점약 있어?"




자신을 죽도록 괴롭혔던 팀장이었다.

태윤은 징그럽게 웃는 팀장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네. 선약이 있습니다."


공은 태윤의 손으로 들들어왔다.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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