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런 퇴치법(1)

by 권도연
힘이란 오직 관계 안에서만 존재한다. 관계를 벗어나면 힘이 세고 약하다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요컨대 힘이란 관계의 당사자가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인 셈이다. 그래서 힘 자체로만 놓고 보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행사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권력의 원리 中-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아진 시점이 되자 간간이 찾아오는 후배들이 생겨났다.

그들의 고민은 대부분 결이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한 마디로 '직장 내 괴롭힘의 당사자이자 경험자였던 선배이니 자신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심리적 의존과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나온 상담 요청 같은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늘 실망감만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맞닥뜨린 빌런들로 인해 받은 상처나 고민의 크기가 얼마나 깊고 쓰라린지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그 빌런들에 맞서 싸우거나 불합리한 상황을 타개하려 적극적으로 노력했다기보다

인사팀을 찾아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어디든 여기 아니면 다른 데를 보내달라'라고 매달리기까지 했으니

추천할 만한 해결책이란 나에게 없는 셈이었다.


해본 사라만 아는 인사팀서 눈물 쏟기



거기에 그마저도 '감히 인사팀을 찾아가 자신을 고자질했다'는 것이 빌런 귀에 들어가

인사 평가로 보복을 당하는 수순에 이르렀으니 추천은커녕 하지 말아야 할 '금기 사항'으로 체크해줘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의 슬프고도 억울하고 분노한 이야기들을 가만가만 들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으로 내 본분을 다하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배. 저 그만둡니다. 제가 왜 그 정신병자 밑에서 제 인생을 낭비해야 하나요. 어딜 가든 지옥은 있지만 좀 더 나은 지옥이겠죠."


돌봐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반, 부럽고도 부러운 마음 반을 가득 담아 나는 그 후배에게 손 잘 털고 떠나란 의미의 로즐린 핸드워시를 택배로 보내주며 말했다.


"방법을 찾았구나."

"선배도 방법을 찾으세요. 언젠가 그 사람을 또 만나지 않겠어요? 그 사람이 만들어 낸 소문, 말들 귀를 막는다고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찾을 거야 방법."

"꼭요. 찾게 되시면 저도 좀 알려주시고요."

"응"

"보란 듯 퇴사하게 돼서 너무나 행복해요. 보란 듯 잘 살 거예요."


그래. 보란 듯 살아보자.

보란 듯 잘 살다는 건, 나 혼자 잘 살고 있다고 정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빌런에게 받은만큼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씩은 갚고 있다는 뜻이겠지.

춘추전국시대의 오자서는 17년이나 걸려서 손무에게 복수를 했다니까 그깟 몇 년 따위.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권위도 없이 권력만을 남용해 휘두른 자 권력의 맛을 볼터였다.







누군가에게 힘을 행사하려면 상대방이 가치 있게 여기는 뭔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돈일 수도, 지식일 수도 있고, 조직 내 네트워크(인맥)일 수도 있다. 아니면

존경심이나 소속감, 성취감 등 감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사무실 내 빌런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그와 멀어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분석이다.


1. 누구를 자주 만나는지(통화하는지)

2. 공개적으로 꺼내는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누구의 승진인지, 이직인지, 주식이나 부동산인지)



하나하나 분석하며 관찰한다....


그다음은 나에 대한 분석이다.



1. 나는 그 빌런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2.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그 빌런은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었다.

그 타인이라 함은 인사권을 가졌거나 높은 위치에 있거나 소위 말발 세고 사내 권력이 강한 사람에만 국한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빌런을 팀장으로 둔 팀원들은 '인정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철저히 무시당했다.


팀원들은 빌런이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온갖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보고를 위한 보고서

보고를 위한 데이터

보고를 위한 물품


그래서 팀원들은

보고를 위해 야근을 했고

보고를 위해 주말근무를 했고

보고를 위해 실시간 카톡에 시달렸다.


일을 위하거나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닌

오직 빌런의 영달을 위한 업무가 주가 되었다.

문제는 업무의 목적이 '사람의 인정'에 달려있다 보니

모든 것이 감정적으로 처리된다는 것에 있었다.


업무 프로세스나 마감 일정이 아닌

보고 일정에 맞추느라 팀원들은 아주 자주 채근을 당했고

빌런의 이해를 위해 불필요한 업무들까지 추가되어 업무에 로드가 걸렸다.


어느 날인가부터 빌런은 팀원 하나를 타깃 삼아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 시간을 타이트하게 잡아 자신이 급하게 뛰어갔고 그 바람에 숨이 차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다는 것이 빌런의 주장이었다.


"일 똑바로 안 해?!"


로 시작된 괴롭힘은 '게으름'을 이유로 팀원의 복장과 밥 먹는 태도에 대한 비아냥으로까지 번져갔다.


보고를 받는 권력자에게 원하는 대답, '고생했어요'라든지 '당신이 최고야'와 같은 칭찬을 받지 못한 날이면 빌런은 더 심하게 팀원을 몰아세웠다.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거 같아."


착하고 말이 없던 그 팀원은 난생처음 동기에게 술 약속을 청했다. 팀원은 또 난생처음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가 변해야 한다.

대신 들키지 않게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는 가장 먼저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부터 뒤졌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저 방송반 15기 김태윤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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