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팀장'급'들이 모였다.
짬밥 10년 차 이상, 앞으로 구르고 봐도 뒤로 굴러 봐도 어엿한 중견급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서로 어색하게 얼굴을 마주한 모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팀의 장(짱)들이 한 자리에, 그것도 동시 간에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것이 조금 생소했다.
오늘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이 있는 날이었다.
비대면이었다.
코로나를 이유로 모든 회의, 모임 등이 지연 혹은 생략되었다.
재작년에는 강당에 모여 슬라이드를 보며 꾸벅꾸벅 졸던 차장들이, 올해는 팀장이 되어 ZOOM으로 모였다.
인사팀에서는 직급별로 그룹을 나눠 교육을 진행하였는데, (의도적인지 비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팀장들의 교육은 제일 나른한 시간, 오후 2시에 진행되었다.
교육이 시작되었다.
노트북 화면에 아주 앳되고 어린 강사가 나와 밝게 웃었다.
그 강사가 '팀장님들 안녕하세요.'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식곤증이 마악 밀려 올랑 말랑 하던 팀장들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
"자 한 번 손 흔들어 주세요~ 안녕하세요오~!!!!"
액션이라곤 손가락 까닥하는 키보드와 마우스만 두드릴 줄 알았던 팀장들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강사는 백만 볼트의 웃음 형광등을 남발하며 더욱더 환하게 웃었다. 그는 평소 헛기침만 하거나 무게를 잡을 것 같은 팀장이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응하는 것에 고무된 나머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던졌다.
"팀장님들! 바쁘실 테니 화면을 내리시고 업무를 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렇다. 모두가 예상하듯 팀장들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화면을 내려버렸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강사는 몰랐을 것이다.
고과와 인센티브, 성과급에 관계된 것 말고는 모든 삼라만상에 심드렁한 직장 생활 10년 차 이상의 팀장들의 집중력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가벼운 지를.
주식창 볼때나 터지는 집중력
나는 수 십 명의 팀장들이 화면을 꺼버린 광경을 목도한 강사가 앞으로 1시간이나 남았을 교육 시간에 써야 할 의지라도 상실했을까 염려하여 미처 화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애처롭게 바라봤더랬다. 마치 관객 1명을 앞에 두고 열심히 대사를 읊는 배우를 보듯. 아주 진지하게 경청하며.. (딴짓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팀장급들에게 필요한 교육이 성희롱 예방 교육일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는 권력과 위계를 이용한 성희롱이 행해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가이드라인을 주어야 하는 것에 성적인 부분만 있을까.
이제 앞으로 더 세밀하고 조심히 다뤄야 할 문제가 있는데.
지금도 내가 혹은 당신이 어느 누군가는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일지 모를
'직장 내 괴롭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이 시급하다는 생각.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전체 직장인의 70% 이상이라는 통계를 제시했다.
실제로도 불과 몇 달 사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수 명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럴 때마다 회사는, 언론은, 세상은
'법대로', '신고하라', 근로기준법, 형법, 민법 등을 들먹이며 왜 행동하지 않았냐고 채근한다.
또 어느 누구는 직장 그거 그만 두면 되지 무슨 목숨까지 끊을 일이냐고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해보면 안다.
직장 상사의 위계에 의한 괴롭힘은 아주 집요하고 교묘하게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당사자와 다시는 못보게 되는 상황이 와도 어느 날, 어느 순간 불쑥불쑥 떠오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분노는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로 향하는데 곱씹으면 씹을수록 내면으로 파고들어 자존감을 뭉개고 해결 방법을 찾아나갈 의지력까지 부순다.
나는 직장 내 괴롭힘의 당사자였고
나의 스무 해를 같이 한 친구는 어렵게 들어간 직장 안에서 상사의 괴롭힘에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게 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사회라는 공간은 매우 냉정하다.
회사라는 이유로, 선배와 후배란 이름으로 마주한 인간관계는 너무나 얄팍했고, 날카로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브런치에 적어내려 간 '리더의 오류' 목록들이다.
그들은
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다고 했다.
몰랐다고 했다.
그 행동을 했는지 기억에 없다고 했다.
나는 생각 없이, 모른 채로, 기억 없이.
누구의 귀한 딸이고 아들일, 소중한 아내이고 남편일,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일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나를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나의 말, 행동, 생각을 곱씹고 되물었다.
신입사원이 의전 방식을 찾고, 직장생활의 팁을 찾듯
10년 차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팀장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팀장들이여, 제발.
존경은 권리가 아니라 성취다.
늘 자신을 돌아보고 공부하자.
우리는 팀장일 뿐, 아직 그들에게 '선배'는 아니다.
선배로 가는 체크리스트
1. 나는 내 후배에게 그 일에 대한 피드백을 주었는가.
2. 나는 내 후배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귀중히 여기고 존중하였는가.
3. 나는 후배의 (일과 관계된) 갈등, 고민,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가
4. 나는 후배가 일을 잘 기획하고 조직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주었는가.
5. 나는 후배가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주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