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또 야근하신 거야?"
"그런 듯. 아침에 와보니까 밤새 먹은 커피잔이 잔뜩 쌓여있던데."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너도 나도 모르는 일이 있는 거겠니? 또 스케줄을 정리하네, 협력업체 리스크 팔로 업하네 했겠지."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던 거야?"
"내 말이. 저 것도 병이지 싶다."
김 차장은 동기 박 차장과 얘기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부장은 부지런하고 꼼꼼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일처리에 빈틈이 없고 매사에 진중해 그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임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같이 일한 후배들의 평가는 매우 달랐다.
그는 매우 사소한 것에 집착했다. 보고서의 줄 간격, 오타 이런 문제가 아니었다.
자기가 생각한 일처리 순서대로 하지 않으면 크게 화를 냈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먼저 SBC에 전화를 하고 VTY에 전화를 하란 말이야. 왜 내가 하란대로 안 한 거지?"
"아.. SBC 홍보 담당자가 부재 중이어서요. 끝나고 하려 했습니다."
"아니지. 순서가 중요하다고 내가 얘기했잖아. VTY에 먼저 오퍼가 간 걸 알면 분명 말이 나올 거라고."
"그 둘이 오퍼를 받았다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구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김 차장은 그의 업무 스타일이 피곤하긴 했지만 어쩌면 자신이 챙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쌓인 경험치를 바탕으로 한 나름의 스타일일 수 있다고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며칠 후 김 차장은 박 부장의 이런 스타일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최부장은 매일 8시 32분에 자리에 앉았다. 앉으면 책상 위의 먼지를 털고 출근길에 사 온 신문을 꺼내 봤다. 이후 9시가 되면 탕비실로 들어가 믹스 커피를 타 자리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간 밤에 코로나로 인한 물류 창고의 인력 부족 이슈가 터져 새벽부터 난리가 났다. 최 부장의 팀원들 모두 출근길에 폰을 놓지 못하고 협력사에 연락하며 정신없이 일처리를 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돌아와 보니 최 부장이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신문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김 차장은 최 부장에게 현재의 긴급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장님. 아까 그 건이요..."
"...."
최 부장은 고개도 들지 않고 고개를 파묻은 채 신문을 들여다봤다.
"부장님. 그 건 중에 양주 물류 창고 건이 해결이 안 돼서.."
그러자 최 부장이 깊은 한 숨을 내쉬며 고개를 획 돌려 김 차장을 노려봤다.
"나 지금 신문 읽고 있는 거 안 보여? 그건 이따 9시에 대책 회의할 때 말하면 되잖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김 차장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 죄송합니다."
김 차장은 놀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돌아왔다. 이때 등 뒤에서 최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걸 다 읽어야 한다고. 읽어야 해."
김 차장은 그제야 깨달았다.
최 부장의 일상 루틴은 그 누구도 깨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 부장이 이처럼 화를 냈던 일은 또 있었다.
"어!!! 내 종이컵들 다 어디 있어?? 아니 내가 쌓아놓은 종이컵 어디 있냐고?"
난리가 났다. 최 부장에게는 평소에 믹스커피를 타 먹은 종이컵을 길게 쌓아두는 버릇이 있었다. 누가 봐도 다 쓴 종이컵이었다. 하지만 최 부장은 그 종이컵이 딱 10개가 되어야 휴지통에 버렸다.
그런데 하필 사무실을 청소를 담당하는 청소 아주머니가 바뀌면서 그의 '소중한 종이컵'이 10개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렬하게 버려진 것이었다.
"아니 다 쓴 종이컵이 잖아요. 제가 웬만하면 선생님들 물건은 안 건드려요. 근데 그건 딱 봐도 쓰레기..."
"아니 아줌마. 휴지통만 비우면 되지 그걸 왜 손대요?"
"한 여름에 밤새 그 단내 때문에 벌레가 끓는데 어찌 안 버려요."
"아니라고요. 10개가 되어야 버릴 수 있다고요."
최 부장의 고성이 사무실을 가득히 채웠다.
아마도 그의 사자후는 10분도 더 지속될 터였다.
그날 이후 그의 종이컵을 버린 아주머니는 다른 층으로 배정이 되었다고 했다. 새로 온 아주머니는 '무엇이든 버리지 말라'는 교육을 얼마나 단단히 받았던지 쓰레기통을 버리고 바닥을 청소하는 일 외에는 하지 않았다.
특징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들을 강박성 성격장애라 진단한다. 이들은 시간에 엄격하고, 규율에 철저하며, '루틴'에 강박적으로 얽매인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준, 규칙, 가치, 윤리, 도덕을 엄격히 지킨다.
-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심성이 많아서 신임을 받기도 하나 사소한 실수에도 낙심하는 스타일이다.
- 미완성이거나 애매모호한 것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완성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일을 불안과 우울을 느낀다.
- 성취해낼 수 없다고 판단되는 일은 아예 시도하려 들지 않는다.
- 버림받거나 소외, 무시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 조직의 공식적, 암묵적 규칙을 전부 인식하려 애쓴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관습과 권위에 대한 강한 의심을 품는다.
- 자신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다.
- 사회적 관습(나이, 학력, 직업)을 심하게 따지며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
- 순응하려는 태도 밑에 공격적인 성향을 품고 있어서 평소에는 온화하고 침착한 사람이지만 순간 돌변하여 비판적이고 분노에 찬 모습을 드러낸다.
-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몹시 예민하여 양심과 도덕에 집착하고 타인에게 지나치게 겸손하다.
- 타인에게 충성, 순응하려는 성향이 강하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을 비하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 타인이 자신에게 한 행동은 물론, 자신이 타인에게 한 행동도 곱씹어 보며 항상 그 행동을 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의심하고 유추하는데 집착한다.
- '만일 필요할 경우'를 가정해 쓸모없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
- 돈에 매우 인색하다. 비용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대중교통을 고집하는 식이다.
-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고 업무 성과도 매우 높다.
1. 정작 중요한 사안을 놓치기까지 세부 사항과 규칙, 목록, 순서, 구성, 일정에 집착한다.
2. 임무를 완수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완벽주의를 보인다. 본인의 엄격한 기준이 충족되지 못하면 프로젝트를 끝내지 못한다.
3. 일과 생산성을 위해 여가와 교우 관계를 희생할 만큼 필요 이상으로 헌신한다.
4. 문화적, 종교적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고 도덕과 윤리 혹은 가치관에서 지나치게 양심적이고 엄격하며 경직적이다.
5. 추억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낡거나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6. 남들이 자신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공동 작업을 맡거나 공동 작업에 참여하기를 주저한다.
7. 자신이나 남들에게 모두 인색하다. 돈은 미래의 재난에 대비해 비축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8. 엄격성과 경직성을 보인다.
-출처 : 내 주변의 사이코들, 두에인 L 도버트, 황소걸음
대하는 법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방식으로 모든 것을 통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도 요구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 편향되고 융통성 없는 성격 탓에 타인을 힘들게 한다.
이들과 지낼 때는 이들의 편향성과 경직성을 어느 정도 존중하는 대신 명확한 역할 분담과 한계를 정해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통제 욕구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완벽적 성향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많다. 이들의 가치관이 편향돼 있다는 것을 틈틈이 지적하며 도와주고, 다양성과 양면성의 실체를 공유하는 것이 이들과 공존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