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별로지만 미소는 짓겠습니다
이미지 메이킹 1화
민지는 석사를 졸업하고 서른이란 늦은 나이에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글 쓰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소개서 따위'라는 마음가짐으로 총 5가지 이상의 각기 다른 버전의 서류를 준비했더랬다. 학점은 4.5만 점에 4.0. 토익 점수도 커트라인이라던 850점을 넘어선 상태였다.
하지만 민지는 오랜 시간 취직이 되지 않았다.
면접 탈락만 32번째
서류 통과가 문제가 아니었다.
민지는 늘 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정확하게 32번째 '안타깝게도 귀하는..'으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을 때서야 비로소 민지는, 자신의 문제점을 직시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내 얼굴이었구나!!!
아니나 다를까 취업을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구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가족들은 민지에게 진지하게 성형을 권했다.
하지만 민지는 외까풀의 눈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낮은 코 위에 실리콘이든 연골이든 넣어 높이는 건 더 싫었다.
'우리 할머니가 내 코를 보고 복코라고 했어!!!'
돌아가신 할머니를 핑계 댔더니 엄마 아빠도 금세 성형외과 추천론에서 발을 뺐다.
'그래 뭐 취직하겠다고 얼굴에 손대는 건 아닌 거 같아. 근데 우리 딸 면접에서 왜 떨어지는 거 같니?'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고요...
해결책 없는 고민에 며칠을 지새우던 민지는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교수님을 떠올렸다. 그녀는 기자 출신의 세련되고 화려한 이미지를 한 커뮤니케이션 교수였다.
"메일을 잘 받아봤고. 대학원 전공을 상의하고 싶다고?"
그랬다.
'제가 취직이 안돼서 그러는데 제 문제가 뭘까요?'라고 당당히 물어볼 수 없었던 민지는 교수님께 거짓말로 진로 상담을 요청했던 거다.
은은한 꽃향의 향수 냄새가 풍기는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그녀와 마주 앉으니 아, 뭔가 저 사람은 교수가 돼 모두에게 호감을 받고 있는데 자신은 나이 서른에 취직도 못하고 뭐하고 있는 건가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밝았고 민지는 어두웠다.
그녀는 웃었고 민지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감이 있었고 민지는 풀이 죽어 있었다.
민지가 한참을 교수님 밑에서 조교를 하고 싶고, 공부를 더 하고 싶고 하며 속에도 없는 거짓부렁을 계속하는데 교수님, 눈치 빠르게 한 마디 하신다.
"공부하기 싫네. 취직하고 싶은데 잘 안돼?"
"....."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터져버린 울음. 교수님은 민지의 억울하고 존심 상하고 슬픈 청춘의 한 많은 눈물을 기다려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면접에서 떨어진다는 건 면접관들이 보기에 딱 한가지야. 쟤가 우리 회사에서 월급만큼 일을 할까. 근데 그걸 어찌 알지? 길면 5분, 짧으면 2분 만에 그 사람들이 신이 아닌데 그걸 어찌? 결국 인상이야. 첫인상. 일 못해도 일 잘하는 척,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밝은 척, 아파도 건강한 척하면 돼. 내가 너 문 열고 들어왔을 때 어떤 얼굴이었는지 말해줄까?
당장 죽을 것 같은, 세상 살기 싫은 얼굴. 그리고 말하는 내내 표정 변화 하나 없더라. 쓸데없이 성형외과 갈 생각 말고, 거울보고 표정 연습부터 해. 그게 먼저야."
민지는 그녀의 말에 구원의 빛을 발견한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로 바로 다이소에 들려 이천 원짜리 스탠딩 거울을 샀다.
그리고 그다음 주 면접에 합격했다.
33번 만의 합격 통지였다.
수 천만 원의 성형 비용 대신 이 천 원으로 민지는 취업에 성공했다.
민지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표정 연습이었다.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양치질을 할 때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책상에 앉아 시사상식이나 자격증 공부를 할 때도 틈만 나면 거울을 쳐다봤다.
평소 스스로를 못생겼다 느껴왔던 민지는 그 과정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혹시나 자신을 보기나 할까 주위를 두리번 살피는 것도 매일의 일이 되었다. 가끔은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하는 현자 타임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했다. 나이 서른에 밥값이나 축내는 삼식이가 되고 싶진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그 해에 민지가 연습한 것은 '표정'이었다.
表(겉 표) + 情(뜻 정)
글자 그대로 마음속의 감정이나 정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표정이었다.
민지는 표정 중에서도 '미소'를 연습했다.
처음 며칠은 좌절했다. 민지는 미소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입가는 무수히 떨렸고 입꼬리는 제멋대로 움직였다.
그러니까 저 많은 근육으로 표정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늘 입을 꾹 다물고, 눈가에 힘을 풀었던 민지는 그간 조물주가 준 선물을 무시해가면서 그들을 퇴화시켰던 거다.
심지어 '표정이 썩었다, 표정이 굳었다, 낯빛이 어둡다, 안색이 좋지 않다'는 말을 늘 들으면서도 무엇을 바꿔야 할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민지는 취업용, 면접용 미소를 만들기에 돌입했다.
1. 입술 끝이 위로 당겨지면서
2. 두 눈은 안쪽으로 약간 모아지면서 눈가에 주름이 나타나게 하고
3. 두 뺨의 상반부가 올라가며 눈가의 괄약근이라 불리는 안륜근이 수축되며 눈꼬리가 내려오는
미소를 연습했다. 이것은 심리학자 폴 에크만이 진짜 미소라고 명명한 '뒤센 미소'의 공식이었다.
그리고 미소를 보여야 할 때는 최대한 긍정적이고 행복한 생각만 했다. 표정은 근육의 움직임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되면 긍정적인 근육들이 움직여서 결국 좋은 인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냥 뭐 잘 웃길래 저 녀석 성격은 좋겠다 생각했지."
입사 후 면접관으로 들어왔던 사수의 말이었다.
직장 생활에서는 미소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사회인에 걸맞는 고차원적인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