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리스 May 13. 2024

참 정치적인 김미영 팀장(3)

김미영 팀장은 기가 막혔다.


박전무를 설득해 부서장의 직속 라인인 TF팀장이 되었고,

팀장으로서 일잘러 후배를 포함한 팀원들을 입맛대로 골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 부서장에게 신제품 아웃라인을 프레젠테이션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찰나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오류가 생겼다.

김미영 팀장은 몰랐다.

자신이 목표로 하고 있는 일, 일을 통한 성과 이전에

무엇을 살펴야 했는지를.



일잘러 후배.

1가지를 지시하면 10가지를 해오고

제일 먼저 출근해 제일 늦게 퇴근했으며

현재를 가르치면 미래까지 예측해 준비해 오던 녀석이

김미영 팀장을 찾아왔다.

그는 입을 떼기도 전에 고개부터 숙였다.

김미영 팀장은 그 순간 안된다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팀장님, 저 못하겠습니다. 죄송해요. 정말 죄송합니다."


김미영 팀장은 말문이 막혔다.


"TF, 알지? 태스크 포스!! 정해진 태스크만 잘 끝내면 바로 정상(頂上)이란 말이야. 바로 고속승진이라고. 근데 왜? 왜 못하는 건데?!!"

"제가요 팀장님..."

"부담스러워서 그래? 알잖아 내 스타일. 시키는 대로만 잘 따라오면 돼. 이미 아이디어 다 짜놨고 그대로 진행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제가요 팀장님. 저 다음 달에 무급 휴직합니다. 이제 좀 쉬고 싶어요."


일잘러 후배의 이야기는 이랬다.

이전 팀장을 따라 열심히 일해 인정받고 눈에 띄게 실적도 좋아져 처음엔 이를 동력 삼아 열심히 달렸단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고 했다. 이유는 몰랐다.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갑작스러운 그리움 때문일 수도, 매일마다  반복되는 출퇴근 길 속 역겨움과 지겨움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후배는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저 어느 날부터  아침에 눈 뜨기가 싫어졌다고 했다.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는데 이대로 떨어져 죽어버리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순간 덜컥 겁이 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김미영 팀장은 180 센티 키에 100킬로 그람이 넘는 커다란 성인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서럽게 울자 어쩌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김 팀장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녀도 후배처럼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두고 누구는 번아웃이 왔다고 했고 누구는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라고 했다. 매번 최고의 업무 성과를 내던 사람, 인사 시즌이 되면 그녀를 서로 데려가려 하던 선배들, 그녀와 친분을 쌓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모두 김미영 팀장을 마주치면 다시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갸우뚱했다. 두 눈을 의심했다. 두 눈이 초롱초롱하고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던 김미영 팀장의 모든 것이 변한 것이다. 한숨을 자주 쉬었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 했으며, 성과를 내는 대신 만년 부장의 보신주의에 물든 사람처럼 기초 작업만 하려 했다.


급기야 그녀가 이직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는 그 말에 반박할 의지도 여력도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보다 못한 김미영 팀장의 옛 사수가 다가왔다. 그녀는 김미영 팀장이 매우 가깝게 따르던 사람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이게 뭐랄까, 제가 뭘 위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월급 중요하죠. 근데 그것 말고요. 왜 제가 일해야 하는지, 이게 무슨 의미인지 갑자기 그게 현타가 오면서요."


갑자기는 아니었다.  그녀를 우울하게 한 트리거는 주변 친구들이었다. 최근 그녀의 단짝 친구는 잘 나가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로스쿨에 들어갔다. 노동법의 전문가가 되어 자신처럼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사람이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억울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의사가 돼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어느 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아프리카로 의료 봉사 활동을 하러 떠났다.

김미영 팀장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고민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해왔던 걸까. 고작 100밀리짜리 주름 없애는 세럼 한 병, 고기 냄새 잡는 섬유 향수 만드느라 날밤을 새고 내 30대를 고스란히 바쳤던 걸까. 코스메틱 회사에서 화장품이나 만드는 자신의 직업과 일이 너무 하찮게 느껴졌다. 그래서 사수에게 그랬지. 죽고 싶다고. 너무 인생이 허무하고 힘들고 지겨워서 다 놓고 떠나버리고 싶다고.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았는지 내 인생이 한심하고 보잘것 없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그때 내 사수가 그런 말을 했어. 내가 생각하는 가치의 기준이 뭐냐고. 불쌍한 아이들을 구제하거나 거리의 노숙자들을 돕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가치 있는 일이냐고. 그 가치는 누가 평가하는 거냐고.  누가 나보고 내 직업이 가치가 없다고 한 적이 있냐고. 성취감의 종류는 여러 가지고 의미라는 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했어. 내가 하는 일이 누구에게 해가 되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 더 큰 의미를 찾는 것에 미련이 남는다면 내가 하는 일에서 충분한 가치를 만들면 된다는 사수 말에 용기를 냈지. 그래서 한 게 뭔 줄 알아? 기억나지?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 걸고 만들었던 제품. 아토피 아이들을 위한 베이비 로션."


일잘러 후배는 김미영 팀장의 성공 스토리 뒷면에 감춰져 있던 어두운 이야기에 매우 크게 놀랐다. 그리고 매사 당당하고 에너제틱하던 그녀에게도 자신과 같은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김미영 팀장은 후배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그 의미 같이 찾자. 목표보다는 가치를 먼저 찾고 달리면 정상에 오르는 길도 그리 어렵지 않아. 내가 도와줄게. 마침 나도 매우 심심하고 따분하던 차였어!" 





참 정치적인 사람이 되는 법(3)


직장 내 정치는 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후배와의 관계는 인간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부사수, 후배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고 공감해 주며

방향 설정에 나침반에 되어주는 것.

그들에게 일의 목적의식을 심어주고 독려해 주는 것.


체온보다 높은 공감 온도를 가지는 것이 정치다.




매거진의 이전글 참 정치적인 김미영 팀장(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