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처럼 살지 마>
회의실 문을 나서는 순간,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옆 부서 김 과장과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힌 탓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싸.웠.다. 프로젝트 일정 문제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서로의 업무 방식을 비난하는 말들로 변했고 결국 우리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계속 그 장면을 리플레이하며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김 과장의 붉어진 얼굴, 내 떨리는 목소리,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던 사람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일 출근하면 어떻게 마주쳐야 할까. 사과를 해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척 지나가야 할까.
집 앞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오늘은 빨리 씻고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들린 건 라라의 울음 소리였다.
"엄마!"
8살 딸아이가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순간, 내 피곤함 같은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왜?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인데 또. 라고 얘기하려다 또는 얼버무리며 마음을 추스린다.)
8살 정도가 되면 혼자 있을 때는 씩씩하다가도 부모가 나타나면 슬픈 것보다 더 슬프게 아픈 것보다 더 아프게 연기를 잘 한다. 그걸 알면서도 부모는, 모르는 척 넘어가주고. 특히 워킹맘은 '죄책감'이 기본심리 세팅이라 아이의 투정과 응석이 시작되면 '판단' 대신 '반응'만 하게 된다. (왜! 뭐가 문젠데?! 내가 가오가 없지 돈이 없냐?! 다 사 줄게. 뭐가 필요해?!)
"아진이가... 아진이가 현아랑 놀지 말래. 그래서 현아가 울었어. 근데 아진이는 현아한테는 또 나랑 놀지 말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황이 그려졌다. A에게는 B와 놀지 말라고 하고, B에게는 A와 놀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들어야만 친구 그룹에 포함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초등학교 저학년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생각보다 복잡한 권력 게임이다. 시쳇말로, '여왕벌' 놀이다.
"그래서 라라는 어떻게 했어?"
"나도... 나도 현아랑 안 논다고 했어."
라라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난 아진이가 그러든 말든 현아랑 같이 놀려고 했는데, 현아가 나를 배신했어. 아진이가 나랑 놀지 말랬다고 나랑 안 노는 거 있지."
내 품에 안긴 라라의 작은 어깨가 다시 들썩였다. 라라는 현아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자신도 똑같이 현아를 배신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현아와의 우정도, 아진이와의 우정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까지 들었을 테다.
소파에 앉아 딸을 무릎에 앉히면서, 나는 오늘 오후 회의실에서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어른인 나도 갈등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는데, 겨우 8살인 이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자꾸 싸우고 부딪히고 갈등을 겪을까.
심리학자들은 갈등이 왜 생기는지 여러 이론으로 설명한다. 그중 하나가 '욕구 불일치 이론'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욕구와 목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면 필연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 김 과장과의 갈등도 그랬다. 나는 프로젝트의 품질을 우선시했고 그는 일정 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둘 다 틀린 게 아니다. 다만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각자의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다가 감정싸움으로 번진 것이었다.
라라와 친구들의 경우는 어떨까. 발달심리학에서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를 '또래관계 형성의 결정적 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 아이들은 친구 관계를 통해 사회성을 배우고 자아정체성을 형성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와 더 친한가', '내가 이 그룹에 속해 있는가' 같은 문제들이 매우 중요해진다.
아진이 같은 아이가 여왕벌 놀이를 하는 이유,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고 통제력을 갖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물론 그 방식이 건강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그 아이 나름대로는 불안한 또래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라라가 현아를 두고 배신감을 느낀 것, 라라가 현아를 멀리한 것도, 모두 '나는 소중한 사람인가', '나는 버림받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에서 나온 반응이다.
갈등 연구의 권위자인 모턴 도이치(Morton Deutsch)는 갈등을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행동, 목표, 또는 생각들 사이의 불일치"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갈등 자체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갈등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갈등이 전혀 없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닐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났는데, 아무런 불일치도 없다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완전히 숨기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라라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라라야, 엄마도 어제 회사에서 싸웠어."
라라가 시리얼을 씹다 말고 나를 올려다봤다.
"엄마도?"
"응. 회사에서 일하는 방법이 달라서 다른 부서 사람이랑 크게 싸웠어. 목소리도 높이고."
"그래서 어떻게 할거야?"
"엄마도 모르겠어. 오늘 출근하면서 사과를 해야 할지, 그냥 모른 척해야 할지 고민 중이야."
심리학에서는 갈등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토마스-킬만 갈등 모드 이론(Thomas-Kilmann Conflict Mode Instrument)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쟁, 회피, 순응, 타협, 협력 중 하나의 방식을 선택한다.
*경쟁(Competing):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것에만 집중하고,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는 방식. 나와 김 과장이 회의실에서 보인 반응이 바로 이것이었다. "내 방식이 옳다", "네가 틀렸다"를 반복하며 이기려고만 했다.
*회피(Avoiding): 갈등 자체를 피하는 방식. 문제를 없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그 상황에서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빠져나간다. 오늘 아침 내가 김 과장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일찍 출근하거나, 다른 층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이 회피다.
*순응(Accommodating): 자신의 욕구는 포기하고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방식. 관계를 지키기 위해 항상 양보하는 것. 현아가 아진이의 말을 따라 라라와 놀지 않기로 한 것이 이 방식이다.
*타협(Compromising): 양쪽 모두 어느 정도 포기하고 중간 지점을 찾는 방식. 빠르지만 양쪽 모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할 수 있다.
*협력(Collaborating):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쪽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방법을 찾는 방식. 가장 건강하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이다.
이 다섯 가지 방식 중 어느 것도 절대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것은 없다.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면 회피가 현명할 수 있고, 응급 상황에서는 경쟁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관계에서 반복되는 갈등이라면, 우리는 협력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는 어제 싸움을 다시 떠올렸다. 이번에는 감정을 빼고, 사실만 정리해봤다.
사실1: 김 과장은 프로젝트 일정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사실2: 나는 품질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사실3: 우리는 서로의 우려를 경청하지 않았다.
감정1: 나는 김 과장이 내 전문성을 무시한다고 느꼈다.
감정2: 김 과장은 아마도 자신의 능력을 의심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감정3: 우리는 둘 다 방어적이 되었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를 창시한 마셜 로젠버그는 갈등을 해결하는 첫 단계는 관찰과 평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항상 일정만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평가이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당신은 일정을 세 번 강조했다"는 관찰이다.
감정에 휩싸이면 우리는 사실을 왜곡한다. "김 과장은 나를 무시해"가 아니라 "김 과장이 내 의견을 듣지 않았을 때 나는 무시당한다고 느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라라의 경우도 대입해볼까. "현아는 나쁜 아이야"가 아니라 "현아가 아진이의 말을 따라서 나랑 안 논다고 했을 때, 나는 배신당했다고 느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사실은 함께 확인할 수 있지만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낀 것은 사실이지만 김 과장이 나를 무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일이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김 과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과장님, 어제는 제가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오후에 커피 한잔하면서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답장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저도 죄송합니다. 3시에 1층 카페에서 뵙죠."
첫 단계를 넘었다.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한 선택이다.
그 다음. 심리학자들이 제안하는 건강한 갈등 해결의 단계는 이렇다.
1단계: 진정하기.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강한 감정을 느낄 때 우리의 편도체(amygdala)가 활성화되면서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이 저하된다. 즉, 생각하는 뇌가 작동을 멈추고 반응하는 뇌만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등 상황에서는 먼저 진정할 시간이 필요하다. 어제 싸우고 바로 해결하려 했다면 오히려 더 심한 말들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하루를 보내고 감정이 가라앉은 지금이 대화하기에 더 좋은 시점이다.
2단계: 경청하기.
진짜 경청은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시도다. 칼 로저스는 이것을 '공감적 이해(empathic understanding)'라고 불렀다.
오후 3시, 카페에서 김 과장을 만났을 때 나는 먼저 말을 꺼내며 커피를 내밀었다.
"어제 제가 과장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시 말씀해주시겠어요? 일정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어떤 우려가 있으셨는지."
김 과장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위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정말 중요하게 보고 있거든요. 일정을 못 지키면 제 평가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좀 급했어요."
아, 그랬구나. 그는 단순히 일정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이면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일정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해버렸다.
3단계: 자신의 욕구 명확히 하기.
나도 내 입장을 설명했다.
"저도 이해해요. 저는 이전 프로젝트에서 일정에 쫓겨 품질을 타협했다가 나중에 더 큰 문제가 생긴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제대로 하고 싶었어요. 제 자존심 같은 것도 있었고요."
우리 둘 다 틀리지 않았다. 다만 서로 다른 경험과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4단계: 함께 해결책 찾기
이제 우리는 대립이 아닌 협력의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일정도 지키고 품질도 보장할 방법이 있을까요?"
"핵심 기능은 일정 내에 완성하고, 부가 기능은 다음 단계로 미루는 건 어떨까요?"
"좋네요. 그럼 어떤 게 핵심이고 어떤 게 부가 기능인지 함께 정리해볼까요?"
40분 동안의 대화 끝에 우리는 합의점을 찾았다. 어제의 대립적 태도로는 절대 도달하지 못했을 결론이었다.
그날 저녁, 라라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물었다.
"라라야, 아진이와 현아에게 어떤 마음인지 엄마한테 이야기해줄래?"
라라는 포크를 내려놓더니 제법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진이는... 음, 화가 나. 왜 현아랑 나를 싸우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어. 현아는... 현아는 좀 서운해. 나보다 아진이 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아서."
"그렇구나. 라라가 서운하고 화가 났구나."
나의 말에 라라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우군을 얻었다는 안도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럼 현아는 어떤 마음이었을 것 같아?"
"모르겠어..."
"엄마가 현아라면, 아마도 무서웠을 것 같아. 아진이가 '내 말 안 들으면 너랑 안 놀아'라고 했을 때, 친구를 잃을까 봐 무서워서 아진이 말을 따른 거 아닐까?"
라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현아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것 같았다.
"아진이는?"
"아진이는... 음... 친구들이 자기 말을 들어야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느끼는 거 같아."
8살 아이가 이렇게까지 이해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라라는 놀랍도록 정확하게 아진이의 심리를 짚어냈다.
"훌륭해.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현아한테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 내가 왜 서운했는지."
"좋은 생각이야. 그런데 기억해. '너는 나쁜 애야'가 아니라 '나는 이럴 때 이런 기분이었어'라고 말하는 거야."
"응!"
"그리고 현아도 자기 마음을 이야기할 기회를 줘. 현아도 힘들었을 수 있어."
"아진이는?"
이건 더 어려운 질문이었다. 8살 아이에게 친구 그룹의 역학관계를 바꾸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경계선은 분명히 할 수 있다.
"아진이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 '나는 네가 다른 친구랑 놀지 말라고 하는 게 싫어. 그래서 나는 그렇게 안 할 거야.' 아진이가 라라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라라는 아진이와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할 수도 있어. 그건 나쁜 게 아니야."
몇 주가 지났다.
김 과장과 나는 이전보다 훨씬 편하게 대화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 갈등을 겪고 나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았다. 프로젝트도 우리가 함께 합의한 대로 진행되었고, 결과도 좋았다.
라라도 변화가 있었다. 현아와 대화를 나눴고, 서로 사과했다고 했다. 현아도 아진이가 하라는 대로 하기 싫었다며 이제는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진이와는 예전만큼 가깝지 않지만 그것도 괜찮다고 라라는 말했다.
"엄마, 아진이도 외로운 걸까?"
라라가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친구들을 조종해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외로운 거잖아."
"그래도 아진이가 하는 건 나쁜 거잖아?"
"맞아. 나쁜 행동이야. 그런데 사람은 복잡해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자기만의 이유와 아픔이 있을 수 있어. 그걸 이해한다고 해서 나쁜 행동을 허용하는 건 아니야. 라라가 아진에게 선을 긋는 것은 옳은 일이야. 아진이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너를 지키는 방법인거지."
갈등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갈등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도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같은 우선순위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부부 관계를 연구하면서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차이는 갈등의 유무가 아니었다. 행복한 부부도 싸운다. 차이는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불행한 부부는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경멸하고 방어적이 되고 담을 쌓았다. 가트맨은 이것을 '관계의 네 기수(Four Horsemen)'라고 불렀다.
반면 행복한 부부는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유지했다. 문제는 공격하되 사람은 공격하지 않았다. 감정을 표현하되 비난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해를 시도했다.
이 원리는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친구 관계, 동료 관계, 부모-자녀 관계 모두.
엄마가 오늘 너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갈등”에 관한 거야.
갈등은 어렵고 무서운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누군가와 마음이 부딪히는 일을 뜻해.
친구랑 싸웠을 때나, 서로 생각이 달라서 속상할 때 말이야.
엄마는 예전에 싸우는 게 너무 무서웠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그냥 참고 조용히 넘어갔지.
그런데 너무 참기만 하니까 마음이 점점 아파졌어. 그래서 이제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
“싸움은 나쁜 게 아니야. 서로 다르다는 신호일 뿐이야.”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느끼는 게 달라.
다른 건 틀린 게 아니야.
그러니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모두 잘 지내긴 힘들어. 가끔은 어떤 친구가 계속 너를 힘들게 할 수도 있거든. 그럴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괜찮아.
“나는 그런 말이 싫어.”, “나는 그런 놀이는 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이건 싸우자는 말이 아니라, 네 마음을 지키는 말이야.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지.
엄마는 갈등이 생겨도 피하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이기려고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야. 네 생각을 말해야 할 때도 있고, 친구의 말을 들어줘야 할때도 있고,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어야 할 때도 있어. 그걸 잘 알아가는 게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거야.
라라야, 언젠가 넌 엄마랑도 큰 갈등을 겪을 거야. 사춘기가 되면 엄마와 부딪힐 일이 많아질 테고 어른이 되면 엄마의 생각과 네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을 거야. 그때 기억해줘. 우리가 다르다는 것이 서로를 덜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엄마가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