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 먹기, 따라 사기, 따라 보기

소소해서 소소한 이야기

by 권도연


* 동네 빵집에서 '그것'을 판다기에 요즘 유행이라더니 진짜네 하며 신기해했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겨울에는 붕어빵을 팔던 구멍가게에서도 문제의 ‘그것’을 팔길래 주인아저씨한테 "트렌드세터시다!" 했더니 부끄러워하셨다. 급기야 어젯밤, 동네 김밥집과 설렁탕집에서도 ‘그 걸’ 파는 걸 목격했다. 사장님은 "파리 날리는 가게를 그냥 놀릴 수 없어서"라며 민망해하시면서도 생각보다 잘 팔린다며 좋아하셨고.


이쯤 되면 그것의 정체는 누구나 짐작하리라.

두바이 쫀득 쿠키.

정작 두바이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른다는 그 정체불명의 쿠키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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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월급쟁이의 자괴감과 억울함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어제가 딱 그런 날이었다. 옛날에야 속상하고 기분 나쁘고 힘든 날에는 친구 하나 붙들고 술이나 퍼마시며 사표를 쓰네 마네 했지만

마흔이 넘어가면서는 누구에게 털어놓는 게 귀찮아져 그저 혼자 삭히고 혼자 홀짝이다 혼자 잠이 드는 날이 많아졌다.


퇴근길, 편의점에서 만원 하는 수입 맥주를 손 가득히 싸 들고 가는데 우연히 누군갈 만났다. 그녀는 동네에서 꽤 유명한, 지나가는 사람이 어디서 봤더라 하며 돌아볼 정도의 인지도, 같이 카페에 앉아 있으면 옆 테이블에서 수군대다가 저기 그.. 00 맞으시죠? 묻고 마는. 21세기 대한민국 신종 귀족이라는. 인. 플. 루. 언. 서.



그녀는 내 안색과 내 손에 든 맥주를 보더니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으며 따뜻한 붕어빵 하나를 건넸다. 감사하다며 받아먹다가 붕어값은 해야 할 거 같아서 (하얀) 거짓말을 했다. 별스타 잘 보고 있어요.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으셔요. 그러자 그녀는 어제 자신이 올린 공구 봤냐면서 10만 원짜리 콜라겐 젤리가 10분 만에 마감이 됐다는 둥, 자신을 통하면 나한테는 5만 원에 줄 수 있다는 둥 호탕하게 웃었다.


"5만 원도 비싸네요. 나 시간 당 얼마 받는 지 얘기하면 기절할걸?"

"언니, 요즘 누가 일해요. 아침에 정신 바짝 차려서 공모주만 해도 100만 원 금방 버는 세상이에요. 세상에서 제일 싼 게 노동임금이야. 우리 아파트 작년 보다 5억 올랐잖아. 책상에 앉아서 언제 5억 벌어."


속 터지는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팔로워가 10만이 넘어가자마자 광고비가 배로 오르더라. 사진 한 장은 얼마, 100자 이내의 상품 소개는 또 얼마. 손바닥으로 배경을 만들어 제품을 보여주는 액션 하나로 만든 5초짜리 영상 하나에는 수 백. 나는 그녀가 쏟아내는 숫자들의 향연에 놀라는 척 호응하며 좋겠다 소리를 연발했다.


척하고 호응을 했다고 표현한 것은 그녀의, 즉 신흥 귀족의 '무노동 고임금'의 민낯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로즐린 디퓨저를 내면서 인플루언서 광고 단가를 알아본 적이 있었다. 팔로워 수에 따른 광고비는 최소 100만 원에서 1,000만 원, 이름은 정확히 모르지만 어디서 봤더라 싶은 모델의 단가는 심지어 5,000만 원을 넘어섰다. 고작 사진 하나, 고작 멘트 하나, 고작 웃음 하나. 얼굴도 처음 보고 이름도 낯선 사람의 영향력에 대한 대가였다. (결국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포기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나 요즘엔 옷도 팔아. 내 이름으로 브랜드도 냈어. *브랜드에서 협업하자는 제안도 온 거 있지. 언니 사이즈는 뭐야? 요즘 잘 나가는 숏팬츠 하나 선물로 줄게.”


숏팬츠는 커녕 요란한 스타킹도 못 신는 고루한 회사에 다니는 내게 미니 스커트라니. 됐어요. 근데.

그녀는 얼마 전 성분이 불분명한 영양제를 공동 구매하다 식약처 경고까지 받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인플루언스’는 건재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 입고, 따라 먹고, 따라 산다. 그 맹목적인 추종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중고딩들의 교복이라는 패딩(부모 등골 브레이커), 벌집 아이스크림, 대만 카스테라, 허니버터칩, 탕후루, MBTI, 그리고 골프와 테니스. 이번에는 두바이쫀득쿠키고. 다음에는 또 무엇이려나.


하나가 가면 하나가 오는 세상이다. 아주 큰 쳇바퀴가 돌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올라타는 분위기다. 그 바퀴는 부지런하게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돈다. 그 트랙에 올라타지 않고 나는, 이번에도 가만히 관망만 해본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설마 나만, 안 탄 건가? 나만?


80년대에는 이 쳇바퀴 돌기를 ‘냄비 근성’이라고 했다. “빠르게 끓고 빠르게 식는다”는 비유를 통해 한국 문화의 급격한 관심 전환을 비꼬아 지적하던 게 주된 분위기였다.

최근 한 언론에서는 이 한국적 특징을 'Snack culture'라고 칭한 기사를 썼다. 스마트폰 중심의 짧은 시간 소비형 콘텐츠·트렌드를 즐기는 문화 현상. 깊은 몰입보다는 빠른 소비와 전환을 선호하는 우리 국민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국민성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왜 유독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지 구조적 관점에서 봐야 하지 않나. 이럴 때 가져올 수 있는 아이디어는 프랑스에 있다. 여덟 살 아이도 와인의 떫은맛과 신맛을 구분할 줄 안다는 취향과 감각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인 부르디외는 '문화자본' 얘기를 했었다.


문화자본이 풍부한 사회에서는 트렌드를 무작정 따라 하기보다 각자가 자신만의 취향·평가 기준을 개발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사회 전체 구성원이 문화 자본을 골고루 갖고 있지 않거나 구성원 간의 사회적 거리가 좁은 경우(완. 벽. 히. 한국의 상황)에는 공통의 인기 코드를 빠르게 모방하는 것이 사회적 인정과 소속감을 얻는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밖에 없다.


즉, 한국 사회의 빠른 유행 전환은 한국인의 기질적 문제가 아니라

정보 접근은 국도로 평준화된 반면, 그 정보를 해석하고 축적해 자기 취향으로 내면화하는 문화적 훈련의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구조적 현상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사회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보다 다원화된다면, 그러니까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고, 맛있어 보이는. 다시 말해 취향·전문성·완성도의 기준이 하나의 서열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축으로 인정된다면 이런 스낵 컬처 현상이 조금은 옅어질 수 있다.


‘나만 없어, 나만 안 해, 다른 사람들 빼고 나만! 나만!’이라는 공포를 조장하지 않는 상태. 대중적 성공과 무관한 것들이 존중받으며, “아직 잘 모른다”거나 “나의 관심은 다른 것”이라는 상태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조성되어야만 지금의 유행이 서로에게 '강박'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남들이 자기에게 원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을 원할 뿐이다."


존경해마지 않는 위대한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 (Erich Fromm)이 그랬다.

남들이 먹는다는 것, 남들이 입는다는 것, 남이 가졌을 때 나도 가져야 하는 느낌이 드는 것.

그 느낌적인 느낌. 그것은 아마도 나의 진짜 욕구가 아니라 남의 기대에 나를 맞추는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무작정 좇지 말자.

당신은 뒤쳐지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의 페이스대로, 당신의 취향대로, 당신의 시간대로 적당히, 알맞게, 맛있게, 예쁘게, 멋있게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인생에서 1등이란 없다.

당신의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많은 사람이 있다.

승리도 패배도 없는 인생 위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주인공일 뿐이다.



그러니 두쫀쿠. 안 먹어도 돼요. 괜찮아요.







당신이 따라그리는 그림이.. 사실은 원숭이의 그림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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