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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의 퇴사를 부르는 팀장) 홍보팀 정수영 팀장 2편

퍼블리 웹소설

by 권도연



#6. 아라의 집, 아라의 방, 밤


� 홍보팀 정수영 팀장 관련 보고서


작성자: 인사팀 조아라 팀장


마이크로 매니징으로 인한 업무 비효율성 확인. 이로 인해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업무 수행을 하지 못하고, 팀장의 지시만 기다리는 구조

팀원들에 대한 인신공격 및 감정적인 피드백 확인.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며, 업무에 대한 적극성이 현저히 감소될 것이 우려

소리 지르는 강압적인 태도 & 불안한 근무 환경 조성을 확인

특히 내부 기밀 정보(혹은 잘못된 정보) 외부 유출 확인. 이는 더블체크 필요


결론,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과 성과 중심적 업무 스타일로 단기적 실적 창출 능력은 뛰어나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직 운영과 내부 신뢰도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



� 추가 제안 사항


도움: 이소연 원장


첫째, 팀원들과 개별 면담 진행 필요. 정수영 팀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팀원 각자가 공개적으로 인식하는 절차 필요. 인사팀은 팀원들의 스트레스 수준과 구체적인 사례를 수집해 객관적인 데이터 확보 필요. 심리적 스트레스 평가(Workplace Psychological Evaluation)로 팀원들의 정신적 부담 체크 예정


둘째, 리더십 및 감정 조절 코칭 진행 예정. 정수영 팀장 스스로 본인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므로 감정적인 피드백을 줄이는 법, 효과적인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방식 교육 권고 예정


셋째, 업무 위임과 신뢰 구축 프로세스 마련 필요.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리더의 위임 방식 개선 권고 예정


넷째, 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 정수영 팀장의 성향은 단기간에 바뀌지 않으므로 장기적 모니터링과 피드백을 통해 변화 유도 필요. 본인 요청 시 정기적인 심리 상담 제공 및 스트레스 관리 지원 예정


아라가 정 팀장에 대한 보고서를 올린 바로 그때였다. 띠링.


'안녕하세요, 팀장님. 제가 사직을 하려 하는데요, 아직 저희 팀장님께는 말씀을 못 드렸는데 혹시 절차가 어찌 될까요? 당장 내일부터 출근을 안 하고 싶은데 가능한 건지 궁금합니다.'


홍보팀 김유진 사원의 메시지였다.


#7. 총무인사부 인사팀, 오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김유진 사원의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창백하게까지 보였다. 눈 밑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평소보다 굽은 어깨와 느릿한 걸음걸이에서 극도의 피로와 무거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우선 사직 절차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해줄게요. 사직서는 내규상 최소 1개월 전에는 신청을 해야 해요. 유진 씨가 가고 나면 누군가는 그 업무를 해야 하니 인수인계 기간이 필요한 거죠."

"아…."


김유진 사원의 표정에서 곤란함이 읽혔다. 그녀는 지금 이 자리도 당장 뜨고 싶은 표정이었다.


"힘들죠? 홍보팀에서 벌어지는 일들 제가 어제 다 보고 기록해 뒀어요.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정 팀장님에 대한 인사 조치도 제가 제언해 볼 생각이에요."


그러자 김 사원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뇨 아뇨. 전요, 내부에서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요. 이미 몇 번이나 문제를 제기해도 바뀌는 게 없었고… 제가 계속 버텨봐야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아요. 정말 더 이상은 같이 있고 싶지가 않아요."

"괜찮으면 이소연 원장님 한번 찾아가 볼래요? 가서 업무 관련 스트레스,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치료 필요 명목으로 진단서를 받아오면 병가 처리 도와줄게요. 그리고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절차도 고려해 보세요. 회사는 법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 의무가 있어요. 만약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 차원에서 조치가 이뤄질 수도 있어요."

"아뇨. 사실 저 홍보 업무 계속 하고 싶어요. 아시잖아요, 이 바닥 좁은 거. 괜히 정 팀장님 건드렸다가 나쁜 소문이라도 나면…."

"그럼 나 한 가지만 확인할게요. 솔직하게 말해 줄 수 있어요?"


아라는 김유진 사원에게 내부 피드백 자료 이야기를 꺼냈다. 있어야 할 것이 없다면 분명 누군가 의도적으로 감추려고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보통 그 자료가 누군가에게 불리할 때 일어나기 마련이었다.


"캠페인이나 프로젝트가 끝나면 성과 평가뿐만이 아니라 팀원들의 내부 평가도 의무적으로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거 알죠. 그런데 홍보팀은 단 한 번도 그 자료를 제출한 적이 없어요. 혹시 알아요?"

"네? 저희 다 작성해서 제출했어요. 심지어 이번에 신제품 론칭 캠페인을 정상적인 일정보다 2주나 빠르게 마감하라고 해서 야근하고 주말 근무까지 했거든요. 그때 대리님이랑 차장님들이 병이 나서 엄청 고생한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팀장님의 업무 스타일을 개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적어 낸 걸로 아는데…."

"아, 역시. 그럼 정수영 팀장이 중간에서 삭제했을 수도 있겠네요."

"어머. 그게 정 팀장님도 보실 수 있는 내용인가요? 팀원 평가는 비밀 유지가 되는 걸로 아는데, 어머 어떡해. 그래서 절 그렇게 괴롭힌 거였을까요."

"아뇨, 시스템상 팀장에게 권한은 없어요. 하지만 접근 권한이 있는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지울 순 있겠죠. 내가 알아볼게요. 얘기 줘서 고마워요."

"아, 어쩐지… 팀장님에 대한 팀 내 원성이 자자한테 하나도 바뀌는 게 없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팀원들은 팀장님이 일을 너무 잘하니까 회사에서 그냥 봐주나 보다 생각했어요."


#8.골든 크러스트 본사, IT팀, 오전


아라는 커피 한 잔을 들고 IT팀 사무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문을 열자 차가운 모니터 불빛과 함께 키보드 타건 소리가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여느 사무실과 달리 이 곳은 매우 조용했다. 전화벨 소리도 동료들끼리 주고받는 가벼운 농담도 없었다. 대신 벽을 따라 늘어선 서버 랙에서 미세한 기계음이 일정한 주기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라가 다가가자 이해진 IT 팀장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었다.


"인사팀장님이 직접 오시다니. 설레는데요?"


눈에 장난기가 어린 이 팀장이 웃으며 아라를 반겼다. 정장 차림의 인사팀과 달리 IT팀 직원들의 대부분은 편안한 후드티나 티셔츠 차림이었다. 이 팀장도 마찬가지였다. 이 팀장의 얼굴에서 고집과 여유가 동시에 흘러나왔다.


"홍보팀 사업 평가서에 포함되는 피드백 부분이 통째로 사라졌어요. 혹시 이거 IT팀에 삭제 요청이 있었을까요?"

"음… 제 기억으론 그런 요청은 없었는데. 파일이 삭제됐다면, 삭제 로그를 확인해 봐야겠네요."


이 팀장이 귀찮다는 듯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아라는 굴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걸 시작으로 지독한 죄책감을 조금은 덜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팀장이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며 서버 관리 시스템을 열었다. 그 순간, 옆자리 직원 한 명이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


"삭제된 파일이라면, 백업 서버에서 살릴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지운 게 아니라면요."


그러자 이 팀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사람이 흔적을 남겼을까?"


이 팀장의 키보드가 빠르게 타닥거렸다. 1분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 팀장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어라? 남기셨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라가 궁금한 듯 이 팀장을 재촉했다.


"백업 서버에 삭제 전 로그가 남아 있어요. 웃긴 건 완전히 삭제를 안 했어요. 마치 일부러 보란 듯이요."

"누가요?"

"음… 이걸 하려면 관리자 권한이 필요하거든요? 근데 홍보팀에 그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지 않나."


순간 아라의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홍보팀장을 적극 옹호하던 사람, 홍보팀의 성과를 자신의 공로로 치하하던 사람, 홍보팀뿐만 아니라 전 부서의 평가 기록을 모두 열람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아라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회사에서의 몇 안 되는 아군이었다.


"혹시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어요?"

"해당 IP를 보면 나오죠. 자, 내부 자료로 장난 친 분이 누구실까…"


이 팀장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클릭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찾았다. 바로 이 분이네요. 총무인사부 최.태.원 본부장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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