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6.4.3) -
하는 일이 매우 예민한 데다 일하는 곳이 아주 시끄러운 곳이라, 보통은 소명이려니 나의 팔자려니 하며 감내해야 한다고 여겼다. 워낙 이벤트도 잦은 곳이라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여러 루트를 통해 하소연도 해보고 글로도 써봤지만, 늘 한계가 있었다.
근 두 달간 주요 메이저 신문사에 기고하는 데 애를 썼다.
A사에는 총 네 번, B사에는 두 번 메일을 보냈다.
A사는 내가 하도 실어달라 보채니, 투고자에게 형식적으로 발송하는 답 메일에서
'선정이 되면 연락을 드립니다'와
'연락이 없으면 선정에서 탈락한 것입니다'
라는 문장에 볼드(bold)를 치고 밑줄까지 두 번이나 그어 보내왔다.
나는 그것이 마치
그만 좀 보내!!! 우리 언론사에 실리는 기고문을 좀 볼래? 장관이거나 차관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기관 대표 정도 되어야지. 작은 중소기업의 부장 따위가 말이야!!!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 살짝 부끄러웠다.
어쨌거나 A사는 그 이후로도 한숨을 쉬듯 검토한다는 답 메일을 보내왔고,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메일 보내기를 누르던 나는
킬하는 건 데스크인데 애꿎은 막내 인턴 기자가 욕을 보는 거 같아
방향을 돌렸다. 그러니까 다른 언론사에 메일을 보냈다는 말이다.
이 언론사는 기고나 투고를 받는다고 명시도 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그냥, 안되면 뭐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마음은 그러하지만 메일에는 간절함과 진정성을 담아
제가 ~~란 책도 냈고요, 요즘 이게 화두인데 이에 대한 글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구구절절 써냈다.
그랬더니 일 주일만에 답이 왔다.
그리고 오늘, 기사가 실렸다.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클릭하면 커다란 얼굴이 팝업처럼 튀어나와서 내 얼굴인데도 내가 놀랐다.
이렇게 크게 나올 줄 알았으면 좀 줄여서 보낼걸.
무튼. 기고는 했고, 하고 싶은 말도 했으니
이제라도 나의 일을 바라보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바뀌길 기대한다.
(지만 글 하나에 바뀔리가. 그래도 나는 계속 얘기하고 계속 떠들 것이다.)
지면에 한계가 있어서인지 편집국에서 글을 많이 줄였다.
심지어 내가 지은 제목-호갱-이 너무 '없어 보였는지' 과감히 수정되었다.

근데 오히려 좋다. 나는 여론조사를 하는 사람이지 신문에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니까.
지면에 어울리는 글과 형식은 기자들이 제일 잘 알고, 그들이 전문 가니까.
원본을 올린다. 여긴 내 브런치니까.
기록용이자 내 기억용이다.
며칠 전부터 전화기가 시끄럽다. ‘여론조사로 의심되는 스팸 전화입니다’
스팸이라는 데 뭘 망설이나. 거절. 나도, 옆에 앉은 지인도, 모두 거절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왔다. 이미 여의도에는 누군가의 ‘거절 스와이프(swipe)'로 낙선과 당선의 명운이 갈렸다.
22대 총선에는 공개된 여론조사만 1,200건이 넘었다. 눈앞이 혼탁할수록 명징한 것에 대한 수요는 배가 되는 법. 뉴스마다 자칭타칭 ‘전문가’가 나와 바닥 민심이니 샤이층이니 떠드는 동안 ‘전문’으로 수치를 만지는 실무자들의 속은 타들어만 간다. 높아진 사전투표율로 유권자의 마음 읽기는 더 까다로워졌고 전화 응답률은 이미 바닥이다. 그런데도 다들 눈을 부릅뜨며 ‘몇 대 몇’이냐고 물으니 선거가 끝나면 ‘맞았는지 틀렸는지’에 대한 반성문부터 써내야 한다. 신내림이라도 받아야 할까. 데이터의 재료인 ‘응답’이 사라졌는데 ‘정확한 결과’를 내놓으라는 요구는, 용한 점쟁이라도 들어주기 힘든 억지다.
그러나 선거철마다 여의도에 판을 까는 떴다방 업자들은 결과를 맞히겠다는 장담도 모자라 이기게 해 준다고 광을 판다. 싸고 빠르게 다이얼을 돌려 극적인 숫자를 만든 다음 점쟁이가 부적을 팔듯 돈을 요구한다. 접신을 했다면 차라리 이쪽이 아닐까.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판을 흔들어서 혹여나 중요 공직에 엉뚱한 사람이 앉기라도 하면 이것이 귀신이 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한 편으로는 좌판을 깔고 호객하는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싶다. 지난 선거에서 한 언론이 ‘A 후보 38%, B 후보 36%’ 여론조사에 ‘대이변’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오차범위는 ±3.10%p. 통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안다. 의미 있는 격차는 6.2%p 이상이어야 한다.
지방선거, 특히 기초단체장 선거는 더 심각하다. 500명 조사하면 오차범위는 ±4.38%p. 9% 이상 이겨야 승산이 있다. 최근에는 TK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4%p 앞질렀다고 했다. 대구에서 국민의힘 어느 누구를 붙여도 민주당 후보가 이긴다고도 했다. 뒤집혔다! 밀렸다! 급락! 비상! 헤드라인만 보면 재앙급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초라한 표본 크기(98명)와 광활한 오차 범위(±9.9%p)에 대한 지적은 없다. 대구의 국민의힘 지지도가 여전히 오차범위 밖에서 우위라는 언급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특정 후보를 ‘2~3%포인트 더 나오게 하겠다’며 여론조사를 주판알 튕기듯 조작한 로비스트까지 등장했다. 이 명(明)백한 자의 기만은 안 그래도 낮은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더욱 깊이 추락시켰고, 선관위 감시 같은 강력한 규제론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싸고 빠른' 불량품들이지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공들여 설계한 정통 조사가 아니다. 오히려 조사업계에는 과도한 제약보다 현실을 고려한 법적 허용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광역단체장 17곳, 기초단체장만 226곳이다. 이제 이 방대한 전장을 메울 숫자들은 어김없이 쏟아질 것이고, 언론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재촉할 것이다. 하나뿐인 투표권을 엉뚱한 데다 쓰는, 선거판 호갱이 되지 않으려면 차가운 눈으로 '가짜 숫자'의 유혹을 걷어내야 한다. 이른바 ‘서베이 리터러시(여론조사 문해력)’. 오차범위 밖의 소음과 의뭉스러운 설문은 과감히 음소거하시라.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로 이익을 보는 인간은 언제나 사기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