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아이들은 금요일마다 책을 골라 집으로 가져간다. 주말 동안 부모님과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가정 연계 독서프로그램이다. 독서교육 중심 활동을 운영하는 유치원 선생님의 세심한 배려이다.
금요일 오후, 버스를 타러 가는 아이들의 가방이 눈에 띈다. 지퍼가 열려 있었고 책을 손에 들고 가는 아이도 있었다. 커다란 책에 아이들이 끌려가는 듯 불편해 보였다. 유치원용 작고 조그만 가방에 책을 넣으니 지퍼가 잠기지 않고 아예 들어가지도 않아서 그렇단다. 가방이 작기도 하거니와 어른들의 책에 비해 모양도 크기도 다양하다 보니 안 들어가는 것이다.
"선생님, 아이들 가을 선물로 좀 더 큰 가방 하나 사주면 어떨까요?" 유치원 선생님은 세련되고 예쁜 보조가방을 골랐다. 크기도 적당해서 웬만한 책은 다 들어간다 했다. 금요일이 되어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들 하교를 지켜보는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가방끈을 최대한 줄였어도 길이가 길어 아이들은 질질 끌리는 가방을 들고 어쩔 줄 몰라했다. 가방을 키우다 보니 유치원 아이들이 쓰기에 너무 길었던 것이다.
다음 날 유치원 보조가방을 하나 가져오게 했다. 가방끈 길이를 어떻게 줄여줄 수 있을지 검토해보았다. 학교에 있는 가정용 재봉틀은 너무 두꺼운 것은 박기 어려운지라 자신이 없었지만 실패하면 손으로 줄여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재봉틀을 준비했다.
"드르륵드르륵"
교장실에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이다. 긴 가방끈을 싹둑 잘라서 라이터로 끝을 지지고 돌돌 말아 바늘 사이에 올렸다. 드르륵 거리며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해보니 생각보다 잘 박혔다. 와우~대박이다. 간단하게 가방끈 두 개를 줄였다. 유치원에 가서 들려보니 딱 맞다.
그다음 주 금요일이 유치원 선생님은 7개의 가방을 교장실로 들고 왔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다. 아이들에게 딱 맞는 가방은 너무 작고 책을 넣을 수 있는 가방은 너무 길으니 줄여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이름표를 보고 아이들 키에 맞춰 적당한 길이로 잘라냈고 하나하나 재봉으로 줄여나갔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다. 마지막은 막내 금희의 가방이다. 금희 가방끈에는 예쁜 스카프가 감겨 있었다. 아이들마다 똑같은 가방이니 표시를 하려고 작은 스카프를 감았나 보다 생각했다. 스카프를 벗겨보니 속에는 비닐테이프가 덕지덕지 감겨 있었다. 아이가 추단을 못하니 끈을 돌돌 말아 테이프로 붙이고 스카프로 감아서 안 보이게 한 것이다. 집집마다 얼마나 난감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늦었지만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위안했다.
재봉틀을 다룰 줄 아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을 발휘할 줄 몰랐다. 옷을 만들 만큼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뒤로 직선 박기만 할 줄 알 뿐인데 말이다. 어설픈 실력이지만 아이들의 어깨를 한껏 키워준 것 같아 내 어깨도 으쓱해진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사 주는 것만큼이나 그것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는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일이다. 동화책 한 권이 생각난다. 아기의 손을 잡고 외출에 나선 엄마는 도시의 멋진 곳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정작 아이가 본 것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른들의 다리와 신발뿐이었던 슬픈 이야기다. 교육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른들의 눈에 보기 좋다고 비싸고 좋은 것이라고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선생님에게 좋은 것인지 부모 마음에 드는 것인지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