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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Oct 12. 2019

#5 야. 나 때는 말이야~ 그랬어 임마~

과연 '꼰대'란 무엇일까

"야, 나는 겨울에 보드 타러 강원도에 갔는데, 타기 직전에 회사 전화받고 바로 다시 복귀했어~."


"야, 나는 해외여행 갔다가 회사 전화받고 바로 귀국했다는 거 아니냐. 새벽에 귀국 비행기 발권한다고 진짜 고생했었다~."


  저는 정말 엄청난 과장님들을 모시고 있어요. 그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타의 추정을 불허하고, 전화 한 통 받으면 항상 회사에 복귀할 준비가 되어 있죠(참고로 우리 회사 과장급은 10년~15년 차 입니다).


 (전) 팀장님은 더 하셨죠.


"야. 나는 회사에 살았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선배들이랑 술 마시고~ 다시 들어와서 일하고 그랬어 ~"


"김대리, 원래 일이라는 건 타 부서 일이나 현장 일은 일과시간에 하고, 자기 일은 밤에 남아서 하면 되는 거야."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저는 울산 화학공장에 재직 중입니다. 80년 대 ~ 90년 대, 한창 우리나라가 발전하던 그 시기, 새로운 공정이 들어서고 새로운 설비가 놓아지던 시절이 있었겠죠. 공장을 짓고 설비를 새로 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예요. 설비를 놓는 기간이 2년이라면, 설비 정상화/최적화를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걸리죠. 시간이 엄청 걸리거나 설비가 작동이 안될 수도 있죠.


  이 정상화 과정에서 소위 '사람을 갈아 넣는다'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설비가 불안정하니 언제, 무엇이 터져 나갈지 모르는 상황인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즉시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퇴근하고 집에 가서 잠 좀 자려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일주일에 몇 번씩 설비가 터져나가는 상황이니 차라리 회사에서 자는 게 마음 편하겠죠.


그렇게 일생을 살아오신 (전) 팀장님께 회사라는 존재는 자신의 삶과 동일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과장님들도 그런 시기를 꽤 겪었을 것이고, 그런 경험이 그들에게 '꼬장꼬장'함을 심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꼬장꼬장'함은 국가와 회사 발전의 초석이었을 것이고, 그러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였을 것 같습니다.


  과연 그들의 꼬장꼬장함이 없이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꼬장꼬장함이 없는 우리 사회가 과연 잘 돌아갈까요? 우리가 '꼰대'를 논하려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말이 이해는 되지만 동의 하기는 어렵더라

  

  "야. 나 때는 말이야~ 그랬어 임마~."


  "아... 힘드셨겠네요."


  꼰대라고 불리는 분들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죠. 바로 할 말이 없다는 거예요.


  그들이 엄청나게 힘든 삶을 살아오셨다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저도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 동의하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들은 '삶=업'이라는 삶을 살아왔겠지만, 저에게 있어 '업'이라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업'으로 인해 가족과의 시간, 개인적인 시간 등 나의 '삶'이 침해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죠. 우리 세대 대부분 비슷한 사고를 가졌으리라 생각해요.


  '대화의 시작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말을 누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굉장히 공감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나와 다른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때, 대화가 단절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상호 배려 없는 대화는 지속될수록 괴리감만 낳을 뿐이죠. 시대가 바뀌고, 세대가 바꼈음에도 불구하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만 말하는 사람을 저는 꼰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타협선'이 아닐까요?

  1년 ~ 3년 차, 저는 팀에서 '관심병사'같은 신입이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불합리함을 얘기했고, 그 불합리함에 대해 설명을 듣거나 혹은 욕을 먹었죠. 시간이 지나며 과장님께서 말씀하신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고 반성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비 문제로 인한 새벽 출근이 있겠네요. 과장님 이상의 세대에선 새벽 출근을 '당연한 것'이라는 시선으로 보겠지만, 저는 '새벽 출근' 자체도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취부 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시선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타협선'이라고 생각해요.  


  과장님들이 보는 시선이 위고, 제가 보는 시선이 아래라면, 그 시선의 중간에 타협선을 함께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새벽 출근을 한 날은 조금 일찍 퇴근을 할 수 있게 하던지, 작은 보상을 해주던지, 서로 합의 가능한 선을 정하는 것이죠. 그 선을 함께 정하고 지켜나갈 수 있다면, 새벽 출근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고생한 일'이 될 거고,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수긍할 수는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서로의 생각을 편히 얘기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출근길이 좀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타협선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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