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율을 낮추는 방안으로 3개월 인턴생활 후 정직원 전환하는 방식으로 회사 차원에서 시도한 것이다. 처음으로 시도해 본 방법이긴 하지만 우리 부서에 한해서는 완벽하게 망한 방식이 되었다. 인턴 2명 모두 기간이 끝나기 한 달 전부터 채용되어도 입사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나는 인턴 기간이 끝난 후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 보았고, 이 친구들이 우리 부서에 오지 않겠다고 한 이유는 크게 3가지였다.
1. 술 권하는 문화 2. 군대식 문화 3. 말을 상처 받게 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11. 나 쿨한 거 알잖아'의 주인공이다)
3가지 모두 내가 신입 때부터 혼자서 미친놈처럼 얘기했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입사했던 5년 전보다는 어느 정도 나아졌다. 하지만 뿌리 깊이 만연해 있는 이런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신입이 될지도 몰랐던 인턴 2명의 등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난 오늘 이 3가지 중 '1. 술 권하는 문화'에 대해 얘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 부서에는 아직 '술잔 돌리기' 문화가 남아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자신이 먹은 술잔을 상대에게 건네며 술을 따르고, 상대방은 그 술을 마시고 잔을 돌려주며 술을 채우는 문화다. 사람이 몇 명 없다면 그게 무슨 대수냐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많아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회식 자리에 10명만 있어도 술잔 돌리는 것만 10잔, 그 외에 개별적으로 마시고 함께 마시고 하는 것을 치면 20잔은 마셔야 하는 것이다. 40명 이상 모이는 부서 연말 회식에 참석하는 신입은 그날 죽었다고 생각하고 오는 것이 마음 편하다. 신입 때 나는 일부러 빨리 술잔을 돌리고, 소화되기 전에 바로 화장실 가서 토하고, 다시 돌리고 했던 기억이 있다.
술잔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선배들에게 인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입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 중에는 술잔 돌리지 않는 사람에게 눈치를 주는 분들이 꽤나 있다. 술잔 돌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하지 않는 아랫사람은 예의 없는 녀석이 되는 것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대다수의 부조리는 나름의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윗사람이 하던 것, 보고 들은 것, 좋은 의도라고 믿는 이런 문화를 계승하며 되풀이한다. 전통이니 관습이니 하는 명분 하에 행해지는 이러한 문화는 흑백논리로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함부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다가는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일상에서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로는 '제사상 차리기'가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제사상을 강요하는 이유는 며느리가 미워서가 아니다. 당신이 그렇게 살아오셨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예의이기에 당연한 것으로 믿고 계실 뿐이다. 술잔 돌리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퇴근 후 할 것이 마땅치 않았던 예전에는 동료들과 술 한잔 하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고, 고생한 서로를 위해 술 한잔 권하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었던 것이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은 이러한 '당연한 것', '원래 그런 것'들로부터 올 때가 많다. 기성세대에겐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해 젊은 세대는 '의문'을 가지거나 행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세대 눈에는 젊은 세대가 예의 없는 것들로 비칠 때가 많은 것이다.
당신이 나쁜 의도로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쁜 의도가 아니라고 해서 내가 당신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나쁜 의도로 당신의 의견에 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같은 문화를 반복해야 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너무 싫어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나는 당신의 술잔을 받으러 회사에 입사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회사도 술 마시게 하려고 나와 당신을 채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필요 이상으로 서로에게 강요하지는 말자. 상대를 존중한다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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