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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꿍꿍이 많은 직장인 Feb 20. 2020

#13. 바빠 죽는 회사생활 결말은 바빠서 죽음이다 1

그냥 시체가 되어갈 뿐

'지이이이이이잉 ~ '


새벽 2시 반, 한동안 잠잠하나 싶었더니 역시나... 새벽에 전화기가 울린다. 이 시각에 전화가 올 곳은 회사뿐이기에, 새벽잠을 빼앗긴 분노는 목구멍으로 삼키고 아무렇지 않은 척 전화를 받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억지로 삼킨 탓인지 쉬이 넘겨지지 않는 분노가 넘어가기를 눈을 감고 잠시 기다린다. 그리곤 삼켜버린 분노 대신 한 숨을 크게 내 뱉은 후, 출근 준비를 한다.


그렇게 새벽에 출근할 때는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그때의 새벽하늘 아래 나의 모습은 평소보다 더 외롭고, 이 세상에 나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듯한, 아주 작고, 또 서글픈, 그런 존재로 비춰지곤 한다.


내가 고생한 것은 나만 알고 있을 뿐


화학공정은 제품 생산이 멈추는 즉시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긴급상황은 응당 조치해야 하는 일이다. 설비 Trouble은 나의 시간과 장소를 배려해 주지 않기에 내가 언제, 어디에 있던 문제가 생기면 회사로 가야만 한다. 그게 새벽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내가 새벽에 고생한 것과는 별개로 하루 일과는 다시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밤새 고생했다는 것을 알 수가 없기에 쏟아지는 업무는 어제와 다르지 않다. 이미 새벽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터라 그 날은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지만 어쩔 수 없다. 먹고 싶어 먹은 스트레스가 아니건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과식해버린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내가 소화해야 할 몫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지친 하루가 지나고 집에 오면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미 내 모든 에너지는 스트레스를 소화하는데 다 쓰였으며, 집 까지 찾아와 준 것만으로도 기특한 내 몸뚱이를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등을 바닥에 뉘어주는 일뿐이다.


새벽 출근, 주말 출근, 야근으로 혹사된 내 몸과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당연한 히'해야 하는 것이기에 누구도 위로해 주지 않으며 '수고했다'는 싸구려 위로라도 받는다면 그 날은 그나마 운수 좋은 날이다. 


바빠 죽는 회사 생활의 결말은 바빠서 '죽음'이다.


바빠서 죽을 것 같은 날은 반 시체가 되어 집에 들어온다. 이런 일이 반되면 '죽겠다'는 말을 할 힘도 없다. 그냥 아무 생각도 없고 영혼 없는 말 그대로 시체 되어버리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힘을 내서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느니, 자신만의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느니,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느니 같은 말을 누군가가 한다면, 장담하건대 그 말은 99% 헛소리다(진짜로 그런 죽음의 일정 속에서도 의지력 만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극소수의 사람이 있기에 1%는 예외를 두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체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힘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쉬어야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철저하게 쉬어야 한다


그렇게 죽을 것 같이 힘들게 일을 하고 온 후, 건강관리를 위한 운동,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 등 뭔가를 더 하려 한다고 치자. 렇게 한 당신, 과연 성공한 적이 있는가?? 사실 나는 성공한 적 없다. 그리고 실패하는 순서는 항상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월 : 어찌 저찌 한다. 운동이든, 공부든 의지력을 가지고 한/두 시간 정도는 했다.


화 : 운동은 했다. 집에 와서 책 펴놓고 공부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폰만 한 시간 봤다.


수: 운동은 했지만 효율이 크게 떨어진 듯한다. 공부는 무슨, 그냥 뻗는다.


목: 뭔가라도 해야 되는데... 하며 약간의 죄책감이 엄습해 온다. 하지만 몸은 이미 누워있다.


금 : 금요일이다. 금요일 밤은 원래 아무것도 해서는 안되는 날이다.


토 ~ 일 : 눈감고 눈 뜨면 지나가 있다.

 

대충 이런 순서이다.


이렇게 의지력을 가지고 무언가를 행하는 것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은 최근에 나오는 자기 개발서를 보면 '사람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은 정해져 있다'라는 이론으로 소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으며, 그 에너지는 여러 가지 활동(일), 선택의 순간, 스트레스, 인내력 발현 등을 통해 소진된다. 과도한 일,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은 후 참았던 담배를 피는 것, 술이 먹고 싶어 지는 것, 분노 조절이 되지 않는 것,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현상 등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미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렸으므로 의지력을 발휘할 수 없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사된 몸을 쉬어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일도, 자기 계발도, 계획한 것도,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이어서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감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악순환처럼 반복된다. 안타깝지만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깨끗하게 쉬고, 다시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쉬기만 해서는 선순환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악순환은 막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쉬는 것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은 되겠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마음 편하게 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바빠 죽겠는 일상이 자신의 성장과 연관이 있다면 힘들더라도 보람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회사원은 고용된 사람이기에 일에 자신을 맞추는 수동적인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노동의 대가는 오롯이 회사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며, 자신의 노력이 회사의 성장은 될지언정 본인의 성장과 그 궤를 함께 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하긴, 회사도 그걸 알고 나에게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니 사실 할말은 없다.


다만, 가끔은(혹은 종종) 반 시체가 되어야 하는 나의 인생의 값이 그 임금으로 충분한가??라고 질문을 하면 조금은 씁쓸해지는 것 같다.




사진작가 : 정민호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ejmh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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