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나 20대 초반에 자괴감이 한창 심했었는데, 작은 키, 볼품없는 외모, 최악의 패션센스, 수능성적 등이 주된 이유였다. 다시 말해 맘에 들지 않는 외모와 망한 수능 때문이었다. 사실 수능성적은 망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만큼 실력이 없었으니. 어찌 됐건 당시에는 그것들이 인생에 전부였고, 인생 가장 심각한 문제들이었다.
그래도 머리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수능이 가르쳐 주었고, 수능시험 결과는 헐벗은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착각이 깨끗하게 걷힌 후 마주한 나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더 작고 보잘것없었다. 저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사실은 나였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 존재는 분명히 나이건만, 나는 나와 함께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자신이 부끄러워 사람을 만나기를 거부했고,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여자가 미운 게 아니라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미웠다. 키 작고 볼품없게 태어난 게 원망스러웠고 자신의 외모 중 무엇 하나도 좋아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수능 시험 찍기 운이 하나도 없었던 게 미운 게 아니라 운 따위를 탓해야 하는 자신이 미웠다. 머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후회 없이 공부하지 않은 자신이 미웠다.
나 같은 게 정말 필요나 있을까..... 난 불량품임에 틀림없다..... 제발... 내가 내가 아니 었으면...
존재가치를 느끼지 못했기에 사라져 버리고 싶었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당시 나의 안식처는 PC방이었고, 아무 생각 없이 하루 평균 8시간 이상은 게임을 하며 지냈다.
어쩌라고 병신아 그냥 살아
당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고등학생 때 서로 얼굴을 디스 하며 친해졌던 친구인데, 나보다 못생겨서 그런지 참 위안이 되고 맘에 드는 친구였다. 그리고 그 친구도 날 만나면 고개를 저으며 '내 인생에 너 같은 인간이 있어서 참 위로가 된다'라는 말을 아직까지도 한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위안을 삼는 아주 소중한 관계이다.
당시 나는 대학교 입학을 했고 그 친구는 재수 중이었는데 중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술자리에서 나의 상황과 심정을 토로하며 우울한 기운을 마구 풍겼는데, 얘기를 듣다가 그 친구가 해 준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어쩌라고 병신아 그냥 살아. 이거 얼굴만 병신인 줄 알았는데 그냥 병신이네. 닥치고 그냥 마셔.'
그 말을 듣고 나는 꽤나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음에 약이 필요한 시기였는데 그 약이 친구의 쌍욕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덕분에 우울한 감정은 순간적으로 잊고 다시 힘내서 그 친구를 욕했다. 그리고 서로 욕하며 그날 밤을 지새웠다.
나는 사실 이 친구가 많이 부러웠다.
같이 있으면 '이 인간 참 생각 없이 산다' 생각을 하다가도 반면에 '내가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사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친구의 그런 '단순함'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사실 완벽하지도 않으면서 완벽한 척하려 애쓰는 완벽주의자'같은 나의 모습과는 확연히 대조가 되었다. 그 친구의 단순함은 간결하고 투명했던 반면 나의 완벽함은 복잡하고 가식적이었다. 그 친구의 단순함은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과정에 집중하는 반면, 나의 어설픈 완벽함은 현실을 부정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좀 더 단순하게 살아보기로 했다
그 친구와의 만남으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느니 그런 건 아니다. 살아온 인생과 성격이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나 역시 그러하다. 다만, 삶을 조금 더 단순하게 생각해 보기로 의식적으로 노력해 봤다. 삶에 대한 나의 태도를 조금씩 바꿔보려 한 것이다.
단순함과 완벽함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렇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A, 완벽함을 추구하는 B라는 사람이 각각 차를 몰고 대형마트를 가서 장을 보고, 인근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오기로 했다고 치자.
A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중간에 친구를 태워서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오는 게 계획의 끝이다.
반면 B는 출발하기 전 빨래와 집안 청소를 다 하고, 가는 길에는 세탁소에 옷을 잠깐 맡기고, 마트를 가서 장을 본 후, 오는 길에는 은행에 잠시 들려서 통장을 개설하고, 중간에 친구를 태우고 저녁 식사를 한 후 집에 복귀하는 계획을 짰다.
얼핏 보면 B의 계획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같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계획이 100% 실현될 가능성은 좀 낮으며 그 과정에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한 번에 많은 것을 할수록 그 중간에 변수가 생기거나 시간이 조금씩 연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거나, 은행에 도착하면 딱 업무 마감이 되었을 수도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B에게는 이런 결과가 엄청난 스트레스이며, 늦어지는 일정 때문에 차 타고 가면서 걸리는 신호 하나하나도 스트레스가 될 수가 있다.
나의 변화는 B라는 사람에서 A라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이었다. B의 계획에서 하나, 두 개의 일정을 빼거나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다. 혹은 B의 일정을 짜서 움직이되, 실행 중간에 시간이 애매하면 계획 중 하나를 생략해 버린다. 쉽게 얘기해서 안 되는 것에 미련을 버리고, 되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다.
되는 것에 좀 더 집중하며 살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잘하기 힘든 것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나는 더 잘생겨질 수 없으며, 키도 더 커질 수는 없다. 지능이 더 좋아지기도 힘들고, 싫다는 여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 외에도 내가 할 수 없거나 효율이 떨어지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내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는 것은 참 어렵지만, 현실을 좀 더 직시하고 되는 것에 좀 더 집중하며 살아 보았다. 예를 들어 나는 더 잘생겨질 수는 없지만 좀 더 단정하게 외모를 가꿀 수는 있었다. 지능이 더 좋아질 수는 없었지만 공부할 수 있는 시간에 후회 없이 공부했다. 여자를 만나는 건 거의 포기를 했었지만, 이런 과정 중에 운이 좋게도 평생 반려자도 만나게 되었다.
나의 20대는 하지 못하는 것에 미련을 버리고 할 수 있는 것에 좀 더 집중하는 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불량품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