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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Sep 17. 2018

<그래비티>, 체험의 극한으로

가장 넓은 곳에서, 오직 한 인간을 얘기하다.

[커버 일러스트 by CineVet(myself)]


1. 영화 감상이 아닌, 체험을 하다.


"어떤 영화는 관람이 아니라 체험된다. 경이롭다."


이동진 평론가의 정말 공감되는 한줄평이다.


이 영화에서롱테이크1인칭 시점의 촬영
자주 사용하 관객과 영화의 호흡을 일치다.


심지어 편집점도 최소화하고,
시간의 비약도 최소화하여 그 효과를 증강한다.


, 주인공이 겪는 모든 것
관객이 동시에 겪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 영화의 몰입감은 극대화되고,
관객은 이 영화를 '체험'하게 된다.




2. 극장은 계속 존재해야만 한다.


각종 스트리밍 사이트가 대두되고,
극장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극장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는 영화들
계속 나오고 있다.


극장의 존재 의의를 증명하는 영화들이라 하면,

단순히 블록버스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블록버스터는
극장에서 볼 때 '더 재미있는' 영화이지,
그 가치의 차이가 발생하는 영화가 아니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그 영화의 감명이나 관람할 때 느끼는 쾌락이,

영화관에서 볼 때 질적인 차이가 발생하는 영화들을 말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블레이드 러너 2049>이다.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에 맞춘 장인의 영상미와,

극장이 아니면 즐길 수 없게 세팅된 사운드
이 영화가 극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또다른 대표적인 예시가 <라이프 오브 파이>이다.


처음에 필자가 이 영화를 집에서 봤을 때는
감흥이 전혀 없는, 그저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재개봉 당시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후
이 영화가 필자에게 주는 의미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다른 차원의 것이 되었다.


신적 존재의 은유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풀어낸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나서는,

필자가 믿는 종교에 대한 믿음이 깊어질 정도였다.


<그래비티>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그래비티를 핸드폰 화면으로 처음 봤을 때, 당시 이 영화 좀 심심한 영화였다.


하지만 이번에 재개봉을, 그것도 IMAX 재개봉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IMAX관 중 가장 좋은 설비를 갖춘  지점으로 예매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관람한,
아니 체험한 <그래비티>, 
전혀 다른 영화였다.


즉,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온전한 <그래비티>를 보지 않은 것이다.


3.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이 성장,
아니 탄생하다.


지금까지 영화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 영화 안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이 영화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이다.

근데 과연 그럴까?


다시 말한다. 이 영화의 장르는 '드라마'이다.


우주라는 공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가장 광활하고 공허한 고요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런 속성들은 고독과 이어진다.
그리고 그 지독한 고독의 공간에서
이 영화는 오직 한 사람,
라이언 스톤 박사에 집중한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영화 속에는 삶과 죽음의 은유가 상당히 많다.


ISS로 겨우 들어온 라이언이 웅크린 모습은 영락없는 자궁 속 태아이다.


또 극 중 맷의 대사에
갠지스 강이 언급되는 것 또한, 
아무 이유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또 우주 공간에 있으면서,
타인과의 연락의 유무
생사로 직결된다는 점 또한 눈여겨 볼 만하다.


다시 라이언 박사에게 돌아와보자.


그녀는 일련의 사고로 인해 혼자가 되고,
소유즈를 통해 중국의 우주정거장을 통해 귀환하려고 하지만,

소유즈의 연료가 고갈된 상태에서 그녀는 죽음을 직감한다.


그 시점에,
죽은 줄 알았던 맷
그녀가 탄 소유즈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녀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조언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그리고 나서, 홀연히 사라진다.


그녀는 방금 죽음의 경계를 잠시 다녀온 것이다.

앞서 말했던 삶과 죽음의 은유들의 가치가
이 장면에서 빛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라이언의 성장기,
아니 정확히 말하자
새로운 일대기가 시작된다.


그녀가 지구로 귀환하는 그 감격스런 장면에서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파편들의 모양은
흡사 난자를 향하는 정자들을 닮았다.


그러면 가장 빠르게 나아가는,
자와 수정을 하게 될,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정자는 무엇인가?


바로 라이언이 타고 있는 모듈이다.


(이 해석은 극중에서 지구를 Earth라 부르지 않고
Mother Earth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즉 새로운 생명 잉태의 시작이다.


지구의 호수 위로 떨어진 라이언 박사는
헤엄을 쳐 물가에 다다른다.


자궁 내 양수 속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온 아이처럼.


그리고 녀가 처음에는, 
기어서 땅에 다다른다.

이어서, 일어선다.

그리고, 걷기 시작한다.


마치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떼는 것처럼.


이 영화는 그녀의 탄생기이다.

새로운 일대기이다.


앞으로 그녀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지 궁금하고,
기대되고,
응원한다.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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