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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May 28. 2019

퀴리 부인과 피카소가 한 영화에?

예쁜 것이 능사는 아니다, <파리의 딜릴리>

 예쁜 영상미, 세련되고 아름다운 배경음악, 귀여운 주인공, 시대 흐름에 발맞춘 주제의식까지. 이 모든 게 다 들어가고도 묘하게 재미없는 영화, 바로 <파리의 딜릴리>이다(전체적인 후기에는 스포일러가 없으며, 감상의 간단한 요약은 마지막 문단에 있다).


▲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주)AUD

 단순히 예쁜 것이 능사는 아니다. 화면이 아무리 예뻐도 기본적인 서사가 뒷받침이 돼야 영화적인 재미를 갖출 수 있다. 호박에 아무리 줄을 그어도 호박은 호박이다. 일단 쓸데없이 과한 대사나, 인물들의 리액션이 너무 많고, 웃기지도 않은데 웃기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그렇다고 해서 서사가 깔끔한가? 그것도 아니다... 벨 에포크 시대의 유명 예술가들을 총망라하겠다고 주인공이 파리를 휘젓고 다니느라 영화의 구성이 체감상


메인 플롯
예술가 1
다시 메인 플롯
예술가 2
...
예술가 27
그러고 나서야 쭉 이어지는 (어이없는) 메인 플롯


대충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굉장히 짧은 시트콤 수십 개를 무리하게 한 영화 속에 때려 박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럴 바에 소개하는 예술가를 좀만 줄이고 좀 더 자연스럽게 주된 서사에 녹여넣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


▲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주)AUD

 그나마 주인공인 딜릴리는 귀엽고 인상적이고 매력 있지만 나머지 캐릭터들은 죄다 평면적이고, 입체적 캐릭터 한 명은 너무 뜬금없이 변하는데, 그 수준이 입체적이라기보다 한쪽 평면에서 다른 쪽 평면으로 점프하는 수준이다. 그나마 유일한 볼거리가 화려한 색감의 이쁜 장면들, 그리고 다채로운 배경음악 정도...? 그리고 여러 예술가들 나올 때 속으로 '나 저 사람/작품 알아!' 이러는 재미는 있다는 것 정도...


▲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주)AUD

 여러 예술가들을 비롯해, 역사적인 위인들의 향연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지점이자,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색이고, 동시에 서사를 난잡하게 만든 주원인이다. 당장 등장하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루이즈 미셸
파스퇴르
퀴리 부인
피카소
모네
르누아르
로댕
콜레트
에드워드 왕세자
로트레크
드가
드뷔시
...


반가운 것 까지는 좋은데, 너무 많다. 무슨 벨 에포크 교육 만화로 착각할 지경이다.


▲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주)AUD

 주제 의식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여성 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노골적으로 강조하다 보니 이질감이 느껴진다. 단순히 주제를 강하게 설파하는 것이 불편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영화가 정한 설정이나 흐름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고,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를 너무 동떨어지게 만든다. 서사에 적당히 버무려져야 영화가 맛깔날 텐데, 서사와 주제의식이 따로 논다. 심지어 캐릭터에도 녹아들지 않는다. 그나마 주인공 캐릭터에는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외의 캐릭터들은 일단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캐릭터들이라 그런지 주제의식이 빛을 발하지 못한다.


▲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주)AUD

 또 아쉬웠던 것은 주인공 '딜릴리'의 정체성이다. 딜릴리는 프랑스 식민지에서 태어난 혼혈 카나키인이다. 오프닝은 동물원 안에 있는 카나키인 가족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딜릴리는 그 안에서 '카나키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녀이다. 아마 벨 에포크 시대의 제국주의 문제를 조명하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이 장면 이후로 딜릴리의 카나키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간에 몇몇 사람이 '원숭이'라고 부르거나, "프랑스어를 할 줄 아냐"라고 묻는 것 이외에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딜릴리가 백인들과 어우러지는 몇 장면은 '샐러드 볼' 이론보다는, '용광로 이론'에 가깝게 여겨져 공감되지 않았다.


▲ <파리의 딜릴리> 스틸컷 ⓒ(주)AUD

 지난 프렌치 시네마 기획전 때 아는 분이 보다가 나오셨다 그랬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 영화. 꽤 궁금하고 기대했던지라 더욱 실망이다. 다행히 화려한 영상미, 듣기 좋은 배경 음악, 그리고 귀여운 주인공 '딜릴리'가 영화의 매력을 그나마 살렸다. 영화 속 여러 시도가 참 의미 있는데,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재료들로 맛없는 볶음밥 만들기
★★★(6/10)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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