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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Aug 15. 2019

차세대 거장의 신작, <우리집>

<우리집>의 후기이자, 윤가은 감독님께 바치는 헌정사.

<우리집> 시사회가 끝난 후 흔쾌히 셀카 요청에 응해주신 윤가은 감독님(사랑합니다).

 윤가은 감독님은 역시나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단편 <콩나물>과 장편 <우리들> 두 편만으로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윤가은 감독님은 <우리집>이란 엄청난 신작을 새로 들고 오셨다. 무조건 올해 다섯 손가락 안에 뽑으리라 확신한다. <우리집>은 <우리들>과 무관하지 않은 ‘윤가은 유니버스’를 구축하면서, 동시에 감독님의 그 세계관을 확장한다. 예고편이나 포스터를 통해 섣불리 판단했을 때에는 동어반복이 될까 우려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 <우리집>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크게 '하나'와 '유미'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넉넉한 집에서 지내지만 부모님 간의 갈등이 심한 하나네와, 화목한 가정이지만 집세 낼 형편이 안돼 떠도는 유미네를 동시에 비추는데, 둘을 저울질하거나 경쟁시키지 않고 다만 병치한다. 하나와 유미는 서로를 알아가며 각자의 결핍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치유되기도 한다. 두 인물이 친밀해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집>은 연대의 목소리를 내비친다. 특히 영화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영화의 태도에 있다. 영화는 둘 중 어디에도 안일한 연민의 시선을 주지 않으며 고통의 전시로 전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나름의 희망을 놓지 않으며, 관객에게 조심스레 응원을 부탁할 뿐이다.


▲ <우리집>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번에도 발휘되는 윤가은 감독의 최대 장점은 '어린아이의 시선'이다. 철저하게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카메라, 어려운 사건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맞춰지는 초점은 굉장히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결국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조명하며 아픔과 사랑 모두, 가장 순수한 형태로 카메라 안에 담아낸다. 윤가은 감독은 이런 연출뿐 아니라 각본도 같이 담당하며 연출과 서사, 그리고 인물까지 모두가 조화롭게 작품을 구축하도록 만든다. 나아가 지극히 생활적이면서 자연스러운 대사로 <우리집>이란 영화를 우리의 일상에 밀착시키며 관객의 공감을 영리하게 이끌어낸다.


▲ 단편 <콩나물> 스틸컷

 윤가은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바로 ‘영화가 쉽다’는 데에 있다. 보통 우리가 ‘좋은 글’이라 말할 때 여러 조건이 있지만, 가장 기초적인 것이 ‘가독성이 좋다’, ‘이해하기 쉽다’ 아닌가. ‘영화’라는 예술이 ‘카메라로 써내려 간 글’이란 점에서, ‘좋은 영화’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모든 좋은 영화가 쉬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이는 여러 관점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윤가은 감독님의 영화들은 완성도도 훌륭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쉽게 다가오는 데에는 소재의 보편성과 일상적 특징이 큰 몫을 하고, 그중에서도 감독님 세계관의 중심에 위치한 ‘아이들’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아이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서,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의 능력은 경이롭다(이런 시선의 압축이 단편 <콩나물> 속에 담겨있다, 이 단편 자신 있게 추천한다). 윤가은 감독님은 차세대 거장이시다.


▲ <우리들> 스틸컷 ⓒ(주)엣나인필름

 전작인 <우리들>과의 비교는 불가피할 것 같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앞서 말했듯이 동어반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둘은 비슷한 시선으로, 비슷한 대상을 다루지만 각자 다른 매력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물론 각자의 결핍을 서로에게 찾으며 갈등이 생기거나, 뜻대로 되지 않으며 어긋나는 상황의 연속 등 극을 끌어가는 장치에 있어 <우리들>과 <우리집>에는 분명히 상당한 교집합이 있다. 또 두 작품에서 인물의 구성이나 배경이나 소소한 소재들 유사성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가치의 일맥상통함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에 있어 두 영화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 <우리집>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두 작품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화합’의 가치이다. <우리들>은 어린아이들 속에 반영된 어른 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비록 어린 나이지만, 그 사이 갈등의 구조나 원인, 대립 양상 등은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이 잔혹함으로 변질되는 그 지점을 영화는 우리에게 보여준다. ‘아이들’이란 이유만으로도 인물들의 고민은 더 크게 다가오고, 아픔은 더 진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안에서 주인공 ‘이선’의 동생인 ‘이윤’을 통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가치를 가장 순수한 목소리로 호소하고, 희망을 제시하는 방식이 <우리들>의 방식이다. 이를 통해 어른들은 <우리들> 속 ‘우리들(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어른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편 <우리집>의 경우, 인물들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연대를 통해 그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 <우리집>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력감'이다. <우리집>은 어른들을 <우리들>보다 조금 더 비중 있게 다루면서 영화 속 아이들의 세계도, 나아가 감독님 본인의 세계관도 확장한다. 이 험한 어른의 세상 속에서, 어리고 여린 아이들이 본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영화는 이런 무력감을 종종 비추고, 이는 사회 속 어른들로 이어진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할 것 없이 극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담이 "알아서 한다"와 "어떻게 알아서 하겠다는 건데"의 대립이란 점이 그 사실을 반증한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무력하고, 어른들은 사회 속에서 무력하다. 그리고 <우리집>은, 그 무력감을 '연대'를 통해 버틸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화 내내 아이들은 다양한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본질은 '연대를 향한 외침'에 있다.


▲ <우리집>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결국 하나네 '우리집(home)'이 분열되고, 유미네 '우리집(house)'이 침식당하며 아이들은 각자의 '우리집'에서 탈출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리집'을 부순 뒤, 누군가가 놔두고 간 텐트에서 '가짜 우리집'을 잠시 즐긴 뒤 현실로 돌아간다. 하지만 유미가 하나에게 "이사 가도 우리 언니 해줄 거지?"라고 물어보면서, 하나가 가족에게 "우리 같이 밥 먹자"라고 말하면서, 영화는 희망의 불씨를 남겨놓는다. 고통을 오락으로 소비하지 않으면서 마지막까지 연대의 목소리를 놓지 않는 영화의 결말은, 아프지만 희망적이다.


▲ <우리집>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종종 우리의 일상이 가진 힘을 간과한다. 흔히 우리가 보는 우리 스스로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그 평범함 속에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들이 가득한지, 이런 일상의 가치를 일깨울 줄 아는 감독이 바로 감독 윤가은이다. 윤가은 감독님의 영화는 ‘소소함의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윤가은 감독님을, 감독님의 작품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집(house)과 우리집(home)이 파괴될 때,
연대를 통해 피어나는 작은 희망
★★★★★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후기입니다※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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