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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Aug 04. 2019

기억해야 할 이름 석 자를 되새기며, <김복동>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보탬, 바로 '기억하기'.

 조금은 거칠게 잘린 단발, 수수하지만 단아한 한복, 드러나 있는 맨발, 강하게 움켜쥔 두 주먹, 그리고 정면을 담담하게, 올곧게 바라보고 있는 두 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의 상징이다.


 "좋은 영화는 세상을 구하는 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동진 평론가가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남긴 한줄평이다.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의 행적을, 그 행적이 낳은 파장을,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그 움직임을 차례로 담고 있다. 영화는 내내 우리에게 상황을 전달할 뿐, 직접적으로 참여를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에 질문을 던질 뿐이다. 함께 기억해주겠냐고.


 '기억'은 사소해 보이지만,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할 때, 그것은 기억 속에 실존한다. 결국 기억은 또 다른 형태의 기록이자, 보존이다. 기억은 정말 사소하고 간단하지만, 정말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그들은, 왜곡된 교육을 통해 그 기억을 애써 지우려 한다. 우리가 힘을 보태는 것의 시작은 개개인이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누군가가 남긴 발자취와 행적에는 그 사람의 기억과, 감정과, 가치관과, 목적이 담겨 있다. 영화는 김복동 할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우리에게 그 유산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 아픔과 그 투쟁의 역사를, 우리는 스크린에서 고스란히 보게 된다. '김복동 할머니' 한 분의 행적이, 과연 어떤 영향력이 있을까.


 우리는 종종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한다. 이 커다란 사회 속에서 개인 한 명이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한탄하며 말이다. 하지만, <김복동>은 '김복동' 할머니를 통해 우리 안의 그 잠재력을 비춘다. 결국 이 뜨거운 저항은 한 사람의 싸움이 아니다.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이, 그리고 뒤에서 할머니들을 지지하는 국민의 투쟁이 만들어낸 역사이다. 우리의 연대가 끼치는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지금껏 할머니들께서 흘리신 땀과 눈물에, 우리는 우리의 땀과 눈물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땀과 눈물이 모아 흐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흐름의 맥동으로 저 거짓들을 뒤집어엎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우리가 '김복동' 이름 석 자를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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