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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Vet Jul 20. 2019

힐링물이라는게 과연 농담일까: <미드소마>

"불쾌와 불안으로 쌓아 올린 서사의 파괴력"

※ 스포일러가 없는 청정글입니다 ※

▲ <미드소마> 스틸컷 ⓒ찬란

 영화의 수위와 상관없이, 불쾌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영화가 있다. 먼저 전제 조건은 이런 영화가 던지는 화두가 '현실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들은 영화 바깥에서 '관람'중인 관객을 지속적으로 그 경계 안쪽으로 끌어들이며 영화 내의 불안을 관객에게 전이시킨다. 현실 감각 없이 사람을 찢어발기는 영화를 즐기는 건 불쾌 이전에 고통의 포르노적 소비일 뿐이다.




▲ <미드소마> 스틸컷 ⓒ찬란

 그런 점에서 <미드소마>는 수난을 유흥으로 소비하지 않는, 불쾌감과 안도감 사이에서 미묘하게 줄을 타며 관객을 기만하는, 그래서 천재적인 영화이다. 사실 여러모로 <유전>이 더 낫다. 전반적인 완성도, 서사의 깔끔함, 그리고 대중성까지 전체적으로 <유전>이 우위를 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의 소재나 고유한 매력은 <미드소마>의 편을 들고 싶다(아담 맥케이의 <빅쇼트>와 <바이스>를 비교하는 느낌이랄까, 근데 이건 매력도 <빅쇼트>가 우위잖아?)




▲ 카메라를 든 남자가 감독 '아리 에스터' ⓒ찬란

 아리 에스터 감독은 탁월한 설계자이다. 서사를, 화면을, 음향을, 편집을 정말 영리하게 구성할 줄 아는 감독이다. <미드소마>는 '호르가'라는 토착 공동체를 다루고 있다(사이비라고 하기엔 원형이 될만한 종교가 없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모든 단계를 특수한 의식에 따라 계획하며, 공동체에 융화된 삶을 살아간다. 그 공동체에 주인공 '대니'를 비롯한 인물들이 방문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미드소마>는 결국 대니의 힐링물로 귀결된다.




▲ <미드소마> 스틸컷 ⓒ찬란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의 치유 과정이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점, 동시에 관객에게 정신적인 핍박을 준다는 점, 그리고 이야기를 담아내는 형식(미장센)이 온화하고 아름답다는 부조화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주인공의 측면에선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일종의 반어법인 것이다.




▲ <미드소마> 스틸컷 ⓒ찬란

 여기서 우리는 "왜 이렇게 불쾌한, 피폐해지는 영화를 보는가"의 질문으로 회귀한다. 이런 '피폐한' 장르(?) 영화들의 공통점은, 인물들이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영화 내의 인물은, 크고 작은 상황 속에서 발악을 하든, 체념한 채로 의지를 포기하든 결국 무기력한 존재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극한 속에서 인물들은 숭고한 얼굴을 드러내고, 그 모든 고난을 승화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우리가 이런 피폐한 장르에 끌리는 것은 그 숭고함의 순수성 때문에, 나아가 그 고통의 상황에 우리가 이입하며 발생하는 동질감 때문이다. 특히 이 동질감은 이런 피폐함을 치유로, 불쾌감을 쾌감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미드소마>는 결국 핍박을 주면서도 관객에게도 '힐링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앞에서와 말이 다르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원래 한국말은 뒤가 중요하다).




 올해 여름 최고의 힐링물은 역시 <미드소마>다. 대니의 그 미소를 보셨습니까?




- CineV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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