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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Apr 01. 2021

이렇게 고백하면 '그 분'께는 완벽함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고백록에는 3대 서적이 있다. 흔히 알려진 내용이기도 한데, 톨스토이의 고백록과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이번 리뷰할 책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다.


사실 고백록은 기독교의 울타리 안에서 유명한 것이지 고백록과 비슷한 명상록이 더 유명하다. 특히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굳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다들 익히 알고 있는 것 같더라


사실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보다보면 머리가 어지러운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뭔가 죄책감이 느껴지거든.


그 이유는 아마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 이의 고백이 나보다 더 처절하기도 하고 나는 이정도로 삶을 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기독교인일거고 가슴 절절한 고백은 또한 나의 고백이 되지 않을 까 싶다.

결국 아우구스티누스도 기독교 정통 신앙에 맞추어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하시는 삶을 바라고 원했다.


근데 사람이라는게 자신이 말할 때는 눈이 똘망똘망하고 흥분하지만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지극히 피곤하고 지루하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이 책은 되게 지루하다. 모든 책이 그렇겠지만 작가만 열심히 말하거든.


때로는 책이라는게 작가와 독자의 상호교류라고 하던데 고전은 아무래도 시대가 옛날이라 그런가?

아무튼 소통이 안된다. 어케 소통하라는거지? 되게 의구심을 품으면서 그가 말하는 고백에 신학적 체계가 깊다는 것에 또한 놀라기도 한다.


이 고백록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시간에 관한 작가의 고백이 나타난다. 너무나도 유명해서 고백록을 읽지 않은 사람도 익히 알고있을 내용이다. 마음의 시간과 물리적인 시간은 다르다는 말이다.


물리적 시간은 단위로 나누지만 마음의 시간은 현재만 살고 과거는 추억으로 미래는 기대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이다. 아무튼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임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자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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