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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문철 Mar 19. 2022

기독교엔 공격도 있다

키르케고르, 기독교의 공격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공격자다.




01. 기독교는 위로가 전부는 아니다.

종교는 위로를 가져다준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래서 일반인이 종교를 긍정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신의 위로가 필요하고,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수 있으면 존중한다. 

물론 이 말에는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종교는 없어져도 좋다는 말도 포함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겨지는 종교는 위로를 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에 의하면 기독교는 위로의 종교는 맞으나 위로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을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공격은 물리적인 형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공격 받음을 말하지도 않는다. 키르케고르의 논리를 따르다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이야기에 고개를 절로 끄덕거릴 수밖에 없다. 


공격은 바로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이다. 

그 말은 자신의 죄가 용서받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서있을 때,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 더욱 강한 공격을 받는다. 그 사실은 자신은 씻을 수 없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죄의식은 단순하게 형이상학적이거나, 범죄나, 도덕적인 책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공격을 받는다고 표현한다. 


최고의 선은 하나님이시다. 

그렇기에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선다면 자신의 죄를 발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격이다. 

버틸 수 없는 자신의 죄의식을 발견하는 것, 그러나 그것만으로 끝난다면 기독교는 분명 좌절의 종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인간의 죄를 드러내는 것은 인간 자신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므로 오히려 제일 현실적이고, 가장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러한 죄의식은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는 사랑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에서 드러나는 공격은 은혜를 경험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자신에게 오는 수많은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기 합리화와 같다. 

그런 점에서 종교가 근본적으로 상상력이라던가, 피해의식에 의한 것이라는 관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다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공격에 있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공격하는 질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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