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문화에서도 큰 집이 있는 것처럼 약간 가톨릭이 아무튼 친척이라는 면에서 가족과도 같다.
물론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같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화해하기 힘들정도로 다른 지점도 많이 있다.
대부분 그런 것은 신학적 차이나 성경에 관한 해석법 차이인데, 예수가 한 명이듯 교회도 하나라는 교회 일치를 위한 움직임도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일치를 원하고 더불어 가톨릭은 이제 그리스 정교회 흔히 말하는 동방 정교회와의 일치를 추구한다면 기독교는 그야 말로 하나된 교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약간 뭐랄까 이제 친척으로서의 큰 집이 아니라, 그것도 이웃 종교로서가 아니라 어디 가문 무슨 종파 라고 말하는 것처럼 종파 단위의 차이가 있을 때 일치를 추구할 수 있을 까 의문이 든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의 민속종교인 유대교가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는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했다. 그렇게 기독교가 나타났다. 초대교회가 생겨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 발생하고 승승장구 하다가 동방과 서방의 분열이 발생했다. 분열의 이유는 많지만 동방은 자신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분열의 이유가 된 많은 논쟁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서방은 로마의 교구를 중심으로 베드로가 첫 교황이라는 정통성을 확보함으로 로마 가톨릭이 되었다. 로마 가톨릭도 역시 승승 장구하다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로 분열되었다. 기독교가 이런 역사를 가지는 와중에 무하마드라는 새로운 신의 선지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점에서 인정하였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했다고 보았다. 그렇게 이슬람교가 나왔다.
2. 세 종교의 같은 점
2.1. 유일신
어떤 면에서 본다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모태는 유대교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의 형성 과정은 곧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약의 내용과 동일하다. 물론 유대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구약이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뭐 생각하자면 자기네 이야기를 옛날 계약 취급한다면 좋게 보이진 않을 듯하다.
아무튼 이 세 종교는 뿌리가 동일하듯이 같은 점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바로 유일신 사상이라는 점이다. 다만 유일신을 부르는 명칭이 다른다. 유대교에서는 신을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한 "나는 나다"라는 말의 명칭을 그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호와에 관한 단어가 나올 땐 이들은 그것을 읽지 않고 '나의 주님'으로 칭한다. 그 명칭이 유명한 '아도나이'라는 말이다. 그에 비해서 기독교에서는 정직하게 말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또는 여호와라는 명칭이다. 이 명칭에 대해서도 한국 개신교와 가톨릭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전자는 하나님이라 호명하며 후자는 하느님이라 말한다. 이슬람에서는 '알라'라고 부른다. 분명 명칭은 다르지만 결국 의미하고자 하는 것은 동일하다.
코란에서는 알라가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신과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무슬림은 신에 대해서 말할 대 그 신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 예수의 하나님, 무함마드의 하나님이라 말한다. 그것은 구약에 나온 대로 (정확하게는 아브라함이지만) 유대인들이 고백하는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말을 의미한다.
2.2. 구약, 토라, 모세오경
여기서 구약성경은 세 종교 모두의 경전이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구약성경 중에서 코란과 상충되지 않는 모세오경과 다윗의 시편만을 경전으로 채택한다. 따라서 세 종교 모두 예루살렘을 성지로 여기며 유일신에 의한 창조, 종말, 최후의 심판, 영원한 내세라는 종교관도 일치한다.
오늘날 구약이라 불리는 이 경전은 세 종교 모두 동일하게 인정하고 있다. 유대교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직접 신과 계약을 맺은 것을 믿는 유대의 민족종교다. 반면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인 에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로 이를 받아들이면 누구나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 이보다 더 늦게 생긴 이슬람교는 예수를 구세주가 아닌 예언자로 인정하고 무함마드를 최후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보는 종교다. 뿌리가 같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이들 모두는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구약성경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기독교에서 특히나 개신교에서 말하는 구약은 총 39권이지만 이 모두를 세 종교가 동일하게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는 모세오경과 탈무드이며,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 이슬람교는 토라(모세오경)와 다윗의 시편, 예수의 복음서 그리고 코란이다. 다만 이슬람교는 코란을 제외한 나머지는 후대에 일부 내용이 변절되었다고 본다. 여기서 코란은 무함마드가 직접 저서한 경전을 의미한다.
2.3. 부활과 최후의 심판
유대교를 토대로 발생한 종교라는 점에서 볼 때 자연스럽게 부활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내용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죽은 다음의 내세를 강조한다. 유대교에서는 최후의 날, 즉 마지막 날이라 불리는 심판의 날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모든 민족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 본다.
기독교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개념을 더욱 발전시켜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에 최후의 심판이 발생한다고 본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기독교에서 심판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포함한다.
이슬람교에서도 이러한 개념이 많이 확대되었다. 이슬람교에서는 부활의 날, 심판의 날이 세상의 마지막 이전에 선행된다. 심판의 날은 이슬람교의 5대 신앙 중 하나다.
3. 세 종교의 다른 점
3.1. 예수에 관한 다른 관점
역시 이 세종교의 가장 큰 자이점을 고르자고 한다면 역시 그것은 "예수에 대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는 예수를 삼위일체설에 입각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그 자신,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유대교에서는 유대교의 어느 일파, 한 종파를 이끌다 순교한 선지자로 보고 있다. 예수에 대해 유대교는 탈무드의 '산해드린'에서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했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렇듯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지체로 보지 않는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이샤'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와 동일하게 삼위일체의 한 지체로 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사실과 기적을 보인 내용은 인정한다. 무슬림은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실제로 예수는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다. 예수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여러 기적을 보여줬다고 믿는다. 이슬람교는 "예수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요람에서 말을 했고, 죽은 자를 살렸으며, 흙으로 새를 빚어 숨결을 불어넣는 기적을 행했다. 예수는 '하나님 이외에는 숭배를 받을 존재가 없다'는 유일신 사상을 사람들에게 설파했다"라고 기록한다.
하지만 코란에 보면 에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사실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코란은 단적으로 예수의 죽음을 부정하고 잇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데리고 갔으며, 가롯 유다가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예수는 다시 지구로 재림한다는 것이 예수에 관한 이슬람교의 믿음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위대한 선지자로 이정하면서도 참 선지자는 바로 무함마드라고 보고 있다. 이슬람은 사라가 낳은 아들이 이삭이 아니라, 하갈이 낳은 맏아들 이스마엘이 적자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슬람교는 자신이야 말로 아브라함의 종교를 계승했다고 보며 이스마엘의 자손인 무함마드가 참 선지자라고 본다.
3.2. 구원에 대한 견해
기독교는 우리 대신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반면 유대교는 하나님이 준 율법을 지키고 선행을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선하고 바른 행동을 하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유대교는 '율법에 의한 구원'을 기독교는 '믿음에 의한 구원'을 이슬람교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강조한다. 이것은 어쩌면 각 종교가 태동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유대교가 창시된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는 지극히 현세적인 다신교의 우상숭배 사회로써 삶의 방향이나 지침이 없는 무질서한 사회였다. 그래서 하나님으 유대인을 선택해 그들에게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한 크고 작은 계명들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명에 의해 인간이 얽매이다 보니,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형식을 쫒게 되었다. 이를 바로 잡은 것이 바로 예수이며, 그렇게 기독교는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는 이제 구원을 유대인에게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넓혀 보편적인 종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기독교보다 약 600년 뒤에 탄생한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성경을 자기의 입맛대로 바꾸고 왜곡했다고 주장하며 무함마드가 하늘에 있는 성경 원본을 다시 내려주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다시는 종교가 왜곡되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이슬람교의 교리는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다. 이 간결한 교리를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3.3. 메시아에 관한 견해
세 종교는 메시아에 관한 견해도 다르다. 정통파 유대교에서는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성경에 예언된 메시아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반면 개혁파 유대교에서는 집단 메시아 사상을 신뢰한다. 이는 유대인 하나가, 곧 유대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일을 거들어 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사상이다. 유대민족 전체가 메시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본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재림 구주로 이 땅에 다시 온다고 본다. 말하자면 기독교에서는 재림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가장 큰 차이는 메시아 사상에 있다. 기독교는 구세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므로 구세주를 믿는 믿음이 구원을 얻는다고 본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구세주란 중재자가 없다. 누구나 알라를 믿고 선행을 쌓으며 진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본다.
3.4. 세 종교의 안식일 차이
세 종교는 안식일에 대한 견해도 차이가 있다. 금요일은 이슬람교, 토요일은 유대교, 일요일은 기독교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이란 개념을 만들 때,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를 의미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꿨다. 그 이유는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 이후에 일요일을 휴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하여 태양신을 숭배하는 자들과 기독교인 들은 주 1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유대인들과 달리 기독교인은 이것을 수용하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합의점을 찾은 것이다.
니케하 공의회 이후에 일요일을 부활절로 성수하도록 결의했다. 태양신을 믿은 로마인들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교회도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도록 명한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의 예배는 일요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그 위상을 떨칠 수 있었다.
이슬람교는 처음에 유대교를 존중하며 그들과 일치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무함마드의 사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서로 배척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무함마드가 예배를 금요일로 선정한 이유는 아마도 이전 아랍 사회에서 금요일이 장날로서, 흩어져 살던 부족들이 중심지역에 모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3.5. 종교마다 약간 다른 십계명, 구약성경
분명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계명은 하나다. 그리고 그것이 모세 율법의 핵심이다. 그러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십계명을 약간씩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왜냐면 이 계명을 분류할 때 다양하게 구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대교의 십계명은 기독교의 십계명과 1번이 다르다. 유대교는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시작한다. 그들의 사싱이 신과 계약이라는 점에서 첫번째도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 우선적으로 언급하며 강조한다. 반면 개신교는 "너는 나 이외의 신을 섬기지 말라"이다. 여기서도 가톨릭은 "하나이신 천주를 숭배하라"라고 나오며 이 역시 다른다.
구약성경은 토라를 비롯해서 역사서, 시서, 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되어 잇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을 모아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교는 구약성경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래된, 낡은 말씀임을 그들이 인정하지 않기 대문이다. 그들은 성경을 타나크라고 언급한다.
타나크는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구성되어 24권이다. 여기서서 타나크는 율법, 예언, 성문서의 한 글짜를 합성한 이름이다. 24권은 히브리어로 원문이 남아 있는 책들이다. 그리고 히브리 원문이 남아있지 않은 책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서 기독교는 가톨릭 46권, 개신교 39권으로 받아들인다. 더 늘어난 이유는 유대교에서는 합쳐져 있는 역사서나 사무엘서를 2권으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가톨릭에서 구약이 좀 더 많은 이유는 제 2경전으로 7권을 더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카베오서,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를 포함한다.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책들을 제 2경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으로 취급함으로 경전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슬람교는 여기서 모세오경과 다윗의 시편들만 인정한다.
4. 종교의 일치, 그러나 불가능한...
쓰다보니까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더욱 중심해서 쓴 것 같다.
분명 책 제목은 세 종교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설명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더 나아가 화해하자는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지만, 정작 그러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같은 점으로 서로 공감하고 대화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하지만 모든 종교학, 신학적의 맥락에서 더욱 자세하게 들어가게 된다면 이 구별과 차이점은 도저히 화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신교 안에서도 신학적 차이로 논쟁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가톨릭과 개신교도 다소 오해가 많고 서로 이단이라 말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긴 하지만, 서로를 이단이라 취급하고 그렇게 말하는 성도들도 몇 있다. 그들은 믿음과 신학적 해석의 차이로 인하여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본다.
개신교 안에서도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등 여러가지 교파가 존재한다. 이들 역시 한 뿌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역시나 신학적 해석의 차이와 시대적 상황, 방법론적인 차이로 인하여 갈라지게 되었다. 물론 교회 안에서도 신학적 일치 운동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마찬기자로 뿌리가 같은 세 종교라고 한다고 해도 이들이 서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종교 일치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 나아가 세 종교를 넘어서 아예 다른 종교와의 대화와 일치를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종교학적인 관점에서 신인론적인 형이상학을 넘어서 우주론적인 개념으로 서로 대화하자는 사상도 존재하기도 한다.
그것은 이제 종교의 한 부분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종교성을 중심으로 우주론적인, 불가지론 적인 개념을 통해서 서로 대화할 수 있고 결국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한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문제는 결국 각 종교의 독특성을 상실한다는 점에 있다.
다시 돌아와서 세 종교가 일치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근거는 분명 뿌리가 동일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그 일치는 너무나 문자적이다. 단순히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동일성으로 인해서 많이 떨어져 버린 이들을 대화시킬 수는 없을 듯하다.
뭐랄까 마치 종속과목강문게처럼 개신교끼리의 신학적 논쟁은 종의 문제이지만 속의 관점에서는 같은 뿌리이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논쟁은 그보다 상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논쟁은 속의 문제이지만 과의 관점에서는 같은 뿌리였고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이제 과의 문제이지만 목의 관점에서는 같은 뿌리로 여겨진다.
아무리 같은 목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과의 차원에서는 서로 다른 것이 사실이기에, 그리고 이들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고양이와 강아지는 모두 식육목이고 그것은 곧 먼 예전에 같은 조상을 지닌다는 뜻이지만, 서로는 너무 다르다. 고양이는 너무 귀엽지 않은가. 물론 저자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 종교간의 전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말하기 때문에 이는 분명 뼈 아픈 조언으로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