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디어스 빨간 문
충분히 열어도 된다
-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 안에는 그저 놀람만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영화를 누군가 본다면 그는 그저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만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나의 운명인 것을..-
여름은 공포영화의 계절.
극장에서도 공포영화가 실리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팝콘과 콜라를 곁들이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내 마음도 여름이 아닌 봄 처럼 두근거렸다.
이전부터 계속 광고하던 "인시디어스 빨간 문"였기에 당연히 재미있겠지 하고 보게 되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인시디어스가 시리지물 인지도 몰랐다. 더 나아가 이번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라 그냥 놀램영화다.
나는 무섭고 싶었지만 무섭게 만들기는 커녕 그냥 놀래키기만 한다.
공포영화를 볼 때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포함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공포라는 것은 무엇인가 로부터 시작하면서 개연성, 논리, 감동, 로맨스까지 다 알차게 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뭐랄까? 감독이 생각하는 무서움이라는 단어는 그저 놀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다. 키르케고르가 불안은 대상이 없으나 공포는 대상이 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 영화가 공포를 주고자 한다면 그 대상은 명확해야 한다. 대상이 있어야 무서움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영화는 모랄까 물론 대상은 있으나 그 대상의 용도는 그저 "엣쿵 깜짝아"하는 것에 그친다.
나는 그 부분이 화가 나는 것이다.
엣쿵 깜짝아? 용서할 수 없다. 자고로 계속해서 말하지만 나는 공포영화를 통해서 무서운 느낌을 받고 싶은거지 깜짝 놀라고싶은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잘 몰랐는데 인시디어스는 시리즈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보게 되었는데, 기존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사실 잘 모르긴 하지만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떤 어둠의 존재는 꿈속에서 나타난다.
현실과 꿈의 사이 속에서 어둠의 존재는 꿈을 꾸는 자에게 점차 현실적인 영향력을 보여준다.
현실과 꿈의 이동은 유체이탈로 설명한다. 사실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니긴 하지만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자주 나온 개념이라면 뭐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가장 이상한건 왜 빨간문일까 하는 의문이다.
아니 뭐 어떤 의도가 있을 수가 있고 어쩌면 없는 것일수도 있는데
그거 가지고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할 수도 있는데
아니 도대체 왜 빨간 문이지?
노란문 파란문 여름이니까 초록문도 좋잖아
진짜 피 때문에 빨간문이라고 하면 진짜 가만 안둔다